엄마의 해우소

엄마의 마음을 외면하고 싶었던 내 마음

by 친절한다정씨



지난주 월요일, 엄마와 다퉜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툰 것도 아니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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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참아왔던 것들이 무너지고,
내 삶의 중요한 변화의 기회를 놓친 이후,
나는 요즘 문득문득 알 수 없는 분노와
버럭 튀어나오는 감정의 급발진을 겪는다.

평소엔 조용하다가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나답지 않게 확 터져버린다.
물론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귀엽게 보일 수도 있는 수준이지만,
내겐 낯설고, 무서운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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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그랬다.
며칠째 반복되던 엄마의 대화.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들.
남의 이야기를 듣고 와서
비난과 험담을 쏟아내는 말들.

결국 나는 터지고 말았다.

“엄마, 제발...
남 얘기 그렇게 하지 마. 지겨워.
듣고 싶지 않아.”

“… 그래…?
그럼… 내가 할 말이 없네.
끊는다.”

뚝.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당황했지만,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미움만이 가득했던 내 마음엔
엄마의 감정을 담을 그릇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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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몸이 아팠고,
주말엔 김장을 하다 체했고,
아이들과 공원에 다녀오고 나니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관계에도 타이밍이 있다.
감정을 묻어둔 채
며칠, 몇 주가 지나면
서로 끈을 놓아버린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된다.

별 것 아닌 일로 시작한 싸움이
서로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
그대로 끝나버리기도 한다.

오해는 얼음처럼 단단해지고,
그 두께만 더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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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아직도 화가 나 있었다.
나도 엄마의 마음에 공감할 준비가 안 된 채
“제가 너무했어요”라는 말조차 생략한 채
무의미한 일상 보고만 하다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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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
서로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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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에게 화가 난 건,
내 감정을 조금도 수용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상 전화를 먼저 끊는 건 엄마였고,
다시 전화를 걸어 비위를 맞추는 건 늘 나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엄마의 말이
나를 가시 돋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섯 형제 중 너만은
내게 그럴 줄 몰랐다…

넌 항상 엄마 편이었잖아.
엄마 마음을 알아주고,
엄마가 부르면 달려와주는 그런 딸이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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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전화로는 도무지 내 마음을 다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모르니까.
왜 내가 그렇게 질려하고,
왜 더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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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에 한 번,
이번 여름에 또 한 번.

엄마와의 다툼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에요.
서운하고, 화나고, 아프고, 슬퍼요.
왜 내 마음은 몰라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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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지긋지긋한 삶에서
드디어 큰 변화를 맞이하려다
물거품이 된 그 상실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한 나.

그 마음을
엄마에게 공감받고 싶었던 거다.

“그래, 힘들지?
괜찮아.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올 거야.”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한마디 공감.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마음만 들어 달라고만 했다.
어쩌면, 그게 너무 지겨워졌고,
그래서 그렇게 질려버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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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더 어른답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또
싸가지 없이 뱉어버렸다.

엄마는 여전히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고,
그 감정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오랜 시간 해우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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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엄마는 당신의 해우소를 잃어버렸다.
나는... 뭘 잃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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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그렇게 받고 싶어 하던
사랑과 관심을 달라고
애처럼 조르던 그 마음.
그걸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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