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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Nov 08. 2023

서울대 나온 백순대

인생의 답은 하나가 아니다.

 "서울대 나오면 뭐 하나? 백순데"

 백순대? 신림동 백순대가 아니라 서울대 나온 백순데라니.

 친척어른의 말씀에 실제 서울대 나온 백수, 우리 집 양반은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시할아버지 생신잔치에 모인 시어른 한분이 당시 수험생활을 하던 남편의 급소를 정확히 찾아내 찌른 진실의 어퍼컷이었다. 서울대 나온 백순대와 살고 있던 나는 당장에라도 집으로 가고 싶었으나, 시어른의 손자에게 매번 주던 5만 원의 용돈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시어른의 잔잔한 쨉날림.  

"지금 무슨 공부를 한다고?"

"그 시험은 붙을 자신이 있냐?"

"그 시험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

"애도 있는데 어쩌려고 그러냐?"


2018년, 서울대 나온 백순대 남편은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드디어 백순대에서 벗어나 시댁행사에 참여할 수 있음에 기뻤다. 남편이 수험생활을 마치자, 내가 대학원에 진학했다. 남편은 이번엔 내 차례라며, 대학원 다닐 때 메라며 MUJI에서 1,5천 원짜리 에코백을 사주었다. 회사 다니며,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에 다녀야 했기에 휴학, 복학을 반복했다. 퇴사 후, 작은 반찬가게 사장이 되어서도 대학원에 다녔다. 대학원에 왜 다니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보지 않았다.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그냥 하는 게 나였고, 대학원도 시작했으니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반찬가게하면서 대학원에 왜 계속 다니는 거야?"

"대학원 나와서 뭐 하려고?"

"요즘 대학원 학비 비싸지 않니?"


시댁에서 건물을 물려받은 친구에게 스타벅스 돌체라떼 벤티사이즈를 사주며 들을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학비가 걱정되거든 커피값은 네가 내지 그랬니?'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러게 말이야"

"지금까지 낸 학비가 아까우니 졸업장이라도 받아야지"하고 얼른 주제를 돌린다.


15년간 아동복지일을 했다. 한부모가정 아이들과 방과 후 프로그램을 했고, 학대피해 아이들과 상담을 했다. 아이를 학대한 부모를 만나 교육을 했고, 아이들이 따뜻한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랐다. 방과 후 프로그램에 늦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혼내다 지적장애 엄마와 단둘이 살던 아이가 바늘시계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서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술에 취해 초록색 술병을 깨부수는 아버지를 피해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 손을 잡고 전력질주하다 아이 손을 놓쳐 울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한 15년의 시간 동안 좀 더 아이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자 결심한 대학원 진학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며 월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돕는 일에 후원을 한다. 반찬을 만들며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예전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답은 하나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들을 잘 쓸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압박감이 사라진다. 어떤 일이든 그렇듯이 글을 쓸 때도 시작이 중요하다. 답이 하나가 아니기에, 나는 몇 개의 '시작'을 만든다. 이렇게 시작하는 습관을 들이면 시작이 꼭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라는 깨달음에까지 올라선다. 중간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걸 알면, 즉 굳이 처음부터 반드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 삶이 한결 단순해진다. _ 타이탄의 도구들(팀 페리스) P. 184


어떤 인생이 잘 사는 인생일까? 이 길이 맞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 헤매다 어느 날은 슬프고, 어느 날은 대견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지긋지긋한 고질병을 고치지 못해 슬픈 날이 더 많을지라도 답은 하나가 아니기에 몇 개의 시작을 만들어 본다.



당신이 낮에 들은 것, 경험한 것, 생각한 것, 계획한 것, 뭔가 실행에 옮긴 것 들 가운데 새벽 한 시가 됐는데도 여전히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 거리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당신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줄 것이다. 나아가 그것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당시늘 반박해 줄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을 제외한 모든 말은 다 헛소리다. _ 타이탄의 도구들(팀 페리스) P. 186


남편은 남자들의 유두를 보호해 줄 패드를 부착한 속옷에 대한 특허와 씨름 중이라고 한다. 특허심판을 잘하는 변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우리 가게 고기 삶는 방법에 대해 특허를 내달라고 했다. 정성 가득한 우리 가게 음식을 엄마들이 편하게 주문하고 먹일 수 있도록 스마트스토어를 시작했다고 말하고 오늘은 주문이 6개라며 떠들어 댄다. 우리 둘은 새벽 한 시가 됐는데도 여전히 이야기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 거린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답을 찾아가 본다.


자자, 남의 인생에 끼어들 거면 순대값 5천 원이라도 내고 끼어 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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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마흔에 겪은 찐한 진로고민을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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