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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Nov 14. 2023

강원도 돼지표 감자로 만드는 쫀득한 감자채 볶음의 비밀

현직 반찬가게 사장의 음식 철학 _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만 차려냅니다


이것은 밥이 있었던 식판인가? 없었던 식판인가?

오늘도 식판을 깨끗이 비운 초등학교 2학년 먹선생 우리 딸.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감자채 볶음이 있으니 어찌 식판을 다 비우지 않을 수 있을 수 있으랴

든든하게 아침식사했으니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다정히 지내고 오너라.



워킹맘 시절,

어린이집 다니던 우리 아이는 눈 뜨자마자 어린이집으로 등원해야 하기에 옷 입으며 누룽지 먹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다행히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에는 죽으로 아침 간식을 준비해 주셔서 누룽지 먹이는 애미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

유치원 다니던 시절 우리 아이의 아침은 계란프라이 넣은 간장비빔밥 또는 미역국에 말아먹는 밥이었다. 이마저도 7시에 출근하며 차려두었기에 잘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워킹맘 퇴사 후,

아이의 아침밥을 차려 줄 수 있어 기쁘다. 싹 비워낸 아이의 식판을 바라보면 15년 동안 해온 좋아하던 일을 그만둔 아쉬운 마음에 위로를 얻는다. 그래도 매일 아침식사를 차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식사를 빠르게 차려내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아이가 좋아하는 밑반찬을 여러 개 준비해 두고 매일 다른 구성으로 차려낸다.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시금치나물, 브로콜리 데침과 같은 초록색 밑반찬은 준비하지 않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밑반찬은 감자채볶음, 감자조림, 메추리알장조림, 김자반볶음, 콩나물 무침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밑반찬을 기본으로 두고 국과 계란프라이 등을 하나만 곁들이면 아침식사 완성이다. 저녁식사는 조금 달라진다. 고기 위주의 메인 메뉴가 꼭 있어야만 하는 우리 먹선생다. 우리 먹선생이 좋아하는 삼겹살 구이, 간장불고기, 소불고기 등을 아이가 좋아하는 밑반찬과 함께 차려낸다. 이렇게 기본 밑반찬이 있으면 저녁식사 역시 수월하게 차려낼 수 있다.


저녁식사는 식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함께 먹는 큰 접시에 고기 중심의 메인 반찬을 식탁 가운데 올려두고, 아이가 좋아하는 감자채볶음, 메추리알 장조림, 콩나물무침 반찬그릇을 아이 앞으로 배치해 준다. 아이 밥공기에 밥 가득 한가득 담아 준다. 아이와 함께 하루의 기쁨과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교 상담실에 쓰레기를 주워가면 젤리를 주기에 후문 옆에서 쓰레기를 주어 상담실 가 젤리를 받았다는 아이, 아이는 학교 후문 옆에 가면 유독 쓰레기가 많기에 자주 후문옆으로 가본다고 한다. 시시콜콜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 동안의 아이 생활을 그려본다. 그렇게 하루의 이야기를 하며 저녁식사를 마친다.  




학대피해 아동을 상담하고 아동학대를 가한 가해자 교육을 하던 나는 종종 학대피해아동이 함께 사는 그룹홈에 파견을 갔다. 본드 부는 엄마와 함께 단둘이 살던 아이, 아빠로부터 성학대받던 아이, 저마다의 역사로 아이들은 그곳에 모였다.

아가씨 시절에 그룹홈 파견 갈 때엔 가장 어려운 것은 식사 준비였다. 지금은 준비된 식단이 있고, 두 명의 선생님이 함께 아이들을 돌보지만, 10년도 넘은 그 시절엔 20대의 내가 7명의 아이들 식사와 잠자리, 학교 보내기를 모두 책임져야 했다.

파견 첫날, 반찬을 할 줄 모르던 20대의 나는 삼겹살 구이로 저녁식탁을 화려하게 차려냈다. 밥공기에 밥 가득 퍼주고, 그룹홈 선생님께서 준비해 두고 가신 된장찌개와 김치로 한 식탁에 모여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밑반찬은 준비하지 못했지만 5살 아이부터 고등학생 언니까지 모두가 만족하는 식사였다.

"선생님, 여기에서 밥 먹으면서 좋은 게 뭔 줄 알아요?"

"뭔데?"

"식판에 밥 안 먹는 거요"

대규모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던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을 했는데, 그곳에서 학대가 발생하여 우리 그룹홈으로 온 아이였다.


아동복지시설에서 먹는 아침식사는 식판에 나온다고 했다.

학교에서 먹는 점심식사도 식판에 나온다고 했다.

아동복지시설에서 먹는 저녁식사도 식판에 나온다고 했다.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면 추가 배식을 받으러 나가야 하는데, 빨리 나가지 않으면 음식이 다 떨어져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또 싫어하는 반찬을 다 먹어야만 좋아하는 반찬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삼겹살이 더 있느냐며 묻는다. 저녁식사를 다하고 나서는 같이 팽이 접기를 하자고 했다. 학교에 팽이를 잘 접는 친구가 있는데, 팽이를 잘 접어서 내일 그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해맑게 웃으며 삼겹살을 먹는 아이 앞에서 목이 메어 더 이상 밥을 먹지 못했다.


그날, 그룹홈에서 아이들과 함께 잠들며 '아이들이 싫어하는 반찬을 다 먹지 않아도 좋아하는 반찬을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밥상을 차려주겠다.', '식판이 아니라 밥공기에 밥을 한가득 퍼 담아주겠다.', '아이들을 돕는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 다짐했다.



10년 전 다짐을 지키지 못한 나는 반찬가게를 운영한다.

우리 반찬가게 인기반찬은 단연코 아이들 반찬이다. 찜닭, 돼지갈비, 수제 돈가스, 수제 동그랑땡, 감자채볶음, 메추리알 장조림은 추가 주문을 할 정도로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우리 가게 돈가스를 먹은 뒤로는 냉동 돈가스를 먹지 않게 되었다는 꼬마 손님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꼭 돈가스를 튀긴다. 우리 가게 감자채볶음만 찾는다는 꼬마손님 덕분에 그 집 엄마, 아빠는 감자채볶음 맛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초록색 반찬을 좋아하는 어른 손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리 가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위주로 식사를 구성한다. 그게 우리 가게의 인기비결이라면 비결이다.


10년 전의 다짐을 지키지 못한 나는 먹선생 따님과 우리 가게 꼬마 손님들이 좋아하는 쫀득한 감자채 볶음을 맛있게 해 주기 위해 오늘새벽에도 강원도 산 돼지표 감자를 구하러 농수산물 도매시장에 간다. 강원도 산 돼지표 감자는 그 집에서만 구할 수 있어 꼭 시간을 낸다.


아이들아

먹고 싶은 음식은 언제나 더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싫어하는 음식은 싫어한다고 이야기하고

따뜻한 밥상에서 하루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와 함께 재미있었던 일, 새롭게 배운 것들에 대해 들려주렴.

그게 고단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너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야.



여기서 잠깐!

현직 반찬가게 사장님의 쫀득한 감자채 볶음의 비밀(꿀팁) 나갑니다.

1. 분이 일어나지 않는 감자를 구합니다(시장에 충청도 감자가 많이 나오는데, 충청도 감자는 분이 많이 일어나서 포슬포슬한 느낌은 나는데 쫀득한 식감은 별로 나지 않습니다. 쫀득한 감자채 볶음 만드시려면 강원도 감자를 구하시면 좋습니다. 돼지표가 제일 좋고요!)

2. 감자채를 썰어 볶기 전 소금물에 30분 동안 절여둡니다.

3.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감자채를 볶습니다.




나이 마흔에 찐하게 겪은 진로고민을 브런치에 담습니다.

인스타에서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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