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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Nov 15. 2023

흙수저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합니다.

마음이 급해졌어,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어(2)

흙수저 : 수저계급론에선 저소득층을 표현한다. 수저계급론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수저로, 한국에서는 서민층 또는 저소득층을 뜻하며, 가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언제까지나 어렸을 때부터 청년 시절까지 부모님이 받쳐주는 태생적인 부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본인이 노력해서 자수성가를 했어도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면 흙수저다. 앵겔 지수가 굉장히 높으며, 거의 높은 확률로 남편 또는 아내가 무직자이고, 인심도 물건이 풍부한 곳간에서 아무래도 더 나는 게 만국 공통이라 가정에 불화가 있는 경우가 많다. <나무위키>



본래 싫어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고, 항상 감사히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싫어하는 단어를 꼽자면 흙수저이다. 나이 마흔에 찐한 진로고민을 하고, 돈 공부를 시작하며 읽고 듣고 보는 책과, 강의, 유튜브에는 성공한 흙수저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저자 혹은 강연자는 흙수저가 성공했다며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그때마다 저자 또는 강연자의 부모님이 저 장면을 보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움츠려든다.


1996년 중학교 입학식.

14세이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들어는 보았는가? IMF. 외환위기가 꿈틀대던 시기.

그 시절 중학교에 입학 한 나는 첫째 딸임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는 언니의 교복을 물려받아 입었다. 한참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이 대한민국을 휩쓸었을 때이다.


1999년 고등학교 입학식.

17세이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여전히 IMF 외환위기의 위기를 끝내지 못한 우리 집은 또다시 첫째 딸인 나에게 알지 못하는 언니의 교복을 물려주었다. 이내 컸는지 예전에는 느끼지 않았던 가난의 부끄러움으로 고등학교 3년 내내 교복 상의를 어떻게 하면 입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2015년 아이가 태어났다.

본래 아이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부터 출산휴가를 들어가기로 했다. 하루라도 태어난 아이와 더 있고 싶어 출산휴가를 미루고 미뤘다. 하지만 탯줄이 아이 목에 감겨 있다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말에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고 수술을 했다. 아이가 태어났고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모든 게 돈이었다. 결혼 후 한참 동안 남편은 일을 했지만 벌이가 없었고, 홀로 생활비를 부담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내가 벌이가 없었고 남편이 생활비를 부담했다. 두 명이던 가족이 세명으로 늘자, 생활비도 곱절로 늘었다. 신생아였던 아이는 기저귀, 물티슈, 철마다의 내복, 예방접종 비용을 필요로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결핵예방접종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결핵예방주사 BCG는 무료인 피내용과 유료인 경피용이 있다고 했다. 당연히 무료인 피내용을 맞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 오른쪽 어깨 위에는 30년 전 내가 맞았던 결핵예방주사와 동일한 불주사 자국이 선명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 묻는다.

"엄마! 친구들 어깨에는 뿅뿅뿅뿅 자국이 많은데, 나는 하나만 있더라. 이게 뭐야?"


'너는 무료 불주사를 맞았고, 친구들은 유료 불주사를 맞았어'라고 끝내 말하지 못하고, "결핵예방접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너와 친구들이 다른 종류의 주사를 맞은 거야"라고 답해준다. 그저 종류가 다를 뿐이고 가격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내 어깨 위에 선명한 불주사 자국을 보여주며, "엄마도 어릴 때 불주사 맞았는데, 너랑 나랑 불주사 자국도 닮았네"라고 이야기한다. 평소 아빠와 붕어빵인 딸아이는 아빠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싫어하는데, 불주사 자국이 엄마를 닮았다고 하니 까르르 웃는다. 아이가 웃자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아니, 돈을 잘 알지 못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저금도 적금, 예금만 있는 줄 알았다. 그 흔한 주식통장하나 없었다. 그저 평생 일하며 살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흙수저'라는 단어를 들으면 움찔했고, 움찔하던 내 마음으로 엄마 아빠에게 미안해지는 감정이 일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도 부모님이 이만큼 키워준 것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아이를 키우면서 '흙수저 부모'에 대해 고민해 본다. 아이가 나처럼 흙수저라는 단어에 움찔하며 미안한 감정을 가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못내 따라온다. 아이에게만큼은 깨끗한 교복을 사주고 싶다. 올드머니룩은 아니더라도 새 교복은 꼭 사주리라. 새 교복을 사주지 못하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


 

아이가 커 간다. 마음이 급해졌다.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는다. 돈 공부를 해본다. 내 아이와 우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엄마들의 아이들을 위해.



나무위키에서 엥겔지수가 높으면 흙수저라는데 우리 집은 어쩔 수 없는 흙수저인가? 엥겔지수가 너무 높다.

덧붙여 이 글을 사랑하는 최여사님이 보시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이 마흔에 겪은 찐한 진로고민을 글로 씁니다.

글로 쓰며 나와 엄마들을 위로, 응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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