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팝니다 #2
회사에서는 집에 가고 싶고, 집에서는 회사에서 다 못하고 온 일 때문에 밥이 안 넘어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온통 나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저녁엔 뭘 먹여야 하나’
회사에서는 틈틈이 쿠팡과 마켓컬리로 장을 봤고 퇴근하면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이 냉동볶음밥과 냉동돈가스, 시댁, 친정에서 언제 온 지 알 수 없는 반찬들로 아이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였다. 아이와 같이 밥을 먹을까 고민하는 사이에 아이는 밖에서 보낸 10시간을 보상이라도 해내라는 듯 짜증 섞인 말투로 재잘되었다.
“밥 먹기 싫어”
“유튜브 보여줘”
“유튜브 보여주면 밥 먹을게”
아이나 나나 밥맛이 없기는 매한가지. 맥주를 한 캔 깔까? 고민하다가 아이를 재우고 여유롭게 한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내 맥주를 냉동실로 옮겨 넣는다.
아이가 밥 먹는 동안 빨래 돌리고, 개고 그래도 빨래 산은 여기저기 우리 집을 점령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자 학원 숙제까지 더해졌다. 매일 너덜너덜한 기분으로 아이가 잠들기만을 바라던 나였다. 아이가 자면 조용히 홀로 빠져나와 맥주를 홀짝이던 그 맥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그 시절.
본래 꿈꾸던 저녁 시간은 어둑해진, 아니 너무 어둑한 느낌 말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 갈랑말랑하는 분홍빛이 약간 감도는 그 느낌의 이른 저녁, 가족 모두가 하루의 책임감을 모두 벗어 내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식탁에 둘러앉는 그 시간이다. 식탁은 꼭 따뜻한 색의 원목 식탁이어야 하고 그릇은 로열코펜하겐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가 흘린 반찬을 닦아내기에 용이한 세라믹 식탁과 시집올 때 엄마가 사주신 절대 깨지지 않는 코렐과 마주한다.
작은 반찬가게를 운영하며 내세운 가치는 '맛있는 저녁이 기다려지는 하루'다. 이건 내가 그런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하루 종일 밖에서 고생한 나와 우리 아이, 가족들 모두 '맛있는 저녁이 기다려지는 하루'를 생각하며 힘을 내기 바란 마음이었다.
고된 하루를 살아낸 나와 남편, 아이를 모두 위로하는 저녁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 소중한 시간을 기다리며 지치는 하루를 응원하고 싶었다.
설레는 퇴근길 후에 정성으로 준비된 음식을 데우고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식사를 하며, 오늘을 살아낸 이야기를 하는 저녁시간을 꿈꾸며 오늘도 정성을 들여 감자를 돌려 깎기 한다. "감자를 왜 돌려 깎기 하냐"라고 묻는다면 "돌려 깎은 감자에서 나를 위로해 줄 정성이 느껴지는 법이 거든요"라고 답해본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정성이 깃든 음식을 만드는 내가 되기를.
고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