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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Jan 16. 2023

속세적 인간의 도피처

나이 마흔에 진로 고민이라니 : 40세 아줌마 창업 성공기 #2

  12시 40분, 아이가 학교에서 끝나는 시각이다.

돌봄 교실을 보는 시선들이 불편해서 돌봄 교실을 신청할까 말까 고민도 했었지만 고민 끝에 신청한 돌봄 교실에서 탈락했다.

‘아니 18시에 유치원에서 끝나던 애를 12시 40분에 집에 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이럴 때 쓰는 말이 바로 할많하않이다. '내 새끼 누가 키워 내가 키워야지' 아무튼 오늘도 12시 40분 교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교문 앞, 몽클레어를 입고 웨이브 살짝 말린 긴 머리를 휘날리는 아가씨 같은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올여름, 휴직을 하고 처음 학교 앞으로 아이를 데리러 간 날, 엄마들 모자에 모두 나뭇잎이 달려 있어서 저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고, 집에 들어와 나뭇잎 모양 선캡을 한참이나 검색해 그게 바로 '헬렌카민스키'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곧장 헬렌카민스키 커스틴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이번엔 몽클레어냐. 어찌 되었든 또다시 네이버창에 검색해 본다. 몽클레어. 그러고는 조용히 네이버창을 닫는다. 내 심리적 가격기준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아이는 교문에서 나오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곧장 놀이터로 달려간다. 아이가 친구들과 놀 때 내는 숨 넘어가는 웃음소리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 순간을 위해 퇴사하지 않았던가. 평소 우아한 웃음기를 는 하얀 얼굴의 소율이 엄마가 혼자 있는 나를 부른다. 


“봄이 엄마 이리 와요”


 이미 공고히 맺어진 관계의 엄마들 무리에 감사히도 나를 넣어준다.      


“언니, 왜 전화 안 받았어. 이 언니 세라잠에서 잠들었네. 잠들었어”

“지난번에 에이프릴 레테 어떻게 되었어?”

“그거 sapling2 나와서 못 갈 거 같아. 우리 애만 초1이고 다들 4학년 이상이래. 그래서 그냥 다니던 학원이랑 영어과외 계속하려고”

“언니. 영어과외 샘 나도 좀 소개해주라. 시간당 얼마야?”

“시간당 6만 원인데, 그 샘 시간 안되실 거야. 한번 이야기해 볼게. 근데 자기 애기 과외 할 시간이 되나?”

“과외하려면 피겨 개인수업을 토요일로 옮겨야지 뭐”      


  그날 밤, 어김없이 초록창에 검색을 해본다. 세라젬 가격, 에이프릴어학원 레벨 단계, 초1 영어과외, 피겨 개인수업 얼마.     







"여보 아인이 있잖아. 봄이 친구 아인이. 집에 세라잼이 있데. 우리 나이 또래 집에 세라젬 있는 거는 처음 보네. 그리고 아인이 영어학원 다니는데 개인 과외도 하나 봐. 한 시간에 6만 원이라는데 주 1회만 해도 24만 원이고 학원도 다니는데 그럼 영어에만 60~70만 원이 들어가는 거잖아. 아인이는 영어 레벨이 엄청 높더라. 어쩐지 지난번에 놀이터에서 놀 때 영어노래 부르면서 놀더라. 우리 봄이는 지금 레테 보면 제일 기초반 나올 거야. 봄이도 영어과외 한번 시켜볼까? 그리고 유라는 피겨 개인수업 듣는다는데 피겨 개인수업은 얼마일까? 우리 봄이도 운동하나 더 시키면 좋을 것 같은데”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남편에게 이어지는 예상된 내 질문.     


“아인이 아빠, 유라 아빠는 무슨 일을 하실까?”


매일 밤 남편과의 대화의 귀결은 그 집 아빠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실까이다.  그럼 어김없이 남편은 “최소 의사다”로 답을 한다. 해맑은 웃음을 띠며.     


(아니 동네 아빠들이 다 의사냐고요. 여기가 무슨 스카이 캐슬이냐고)


“여보 우리 마라탕 시켜 먹을까?”

“아니 안 먹을래. 야식비 아껴서 봄이 피겨 개인수업 보낼래”

“그러지 말고 먹자. 내가 블랑 사 올게”

“그래. 그럼 먹자”



눈이 소복하게 쌓인 밤, 나를 위해 블랑 4캔을 사 오고 마라탕1단계로 주문해 주는 내 남자. 그러고는 블랑을 냉동실에 넣어 준다. 조금이라도 더 차갑게 마시라고.


 이런 남자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가. 그런데 이 남자, 내 말의 속뜻을 잘 못 알아듣고 해맑게 웃고 있다. 다행이다. 아니, 모르는 척한 것일 수도. 이렇게 천진난만하고 교활한 내 남자라니.      






  다음날부터 12시 40분에 교문 앞에서 보초 서지 않기로 했다. 아이에게 집으로 혼자 오는 연습을 해보라고 말해두었다. 그렇게 동네 엄마들과의 만남을 피해 본다. 사랑하는 내 남자와 내 아이를 비교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두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한참이나 속세적 인간이기에.    


  그럼 그 시간에 무엇을 할까? 내 가게로 출근을 한다. 가게 하길 참 잘했다.


네이버 블로그로 일상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 놀러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함께 소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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