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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Nov 28. 2023

초보사장의 비밀노트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사장님은 우리 동네 김혜자 선생님이세요"


 '네? 김혜자 선생님이요?'

왕년에, 그러니까 매직파마를 한 후 일주일간 감지 않은 머리를 참아내며 찰랑찰랑한 전지현 머리를 가지려고 애쓰던 22살 생기 넘치던 대학생 시절에 김형자 선생님을 닮았다는 순대씨의 놀림에 당황한 적은 있다만, 김혜자선생님은 처음이었다.


 이유인 즉슨, 손님댁 아이들이 우리 가게 미역국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해주셔서 미역국 배송일에 하나 더 챙겨 보내드렸더니 우리 동네 김혜자 선생님이라는 혜자로운 칭찬을 해주신 것이다.




 여전히 초보사장이지만 초초초초초보사장시절, 그러니까 전화로 주문받으며 다이어리에 기록해 두고 집에 와서 엑셀로 정리하던 시절, 주문자와 배송지 실수를 종종 했더랬다. 그런 날이면 내 실수로 저녁식사가 늦어진 손님께 죄송하고, 자책감에 기분도 한없이 가라앉아 손님께 치킨쿠폰 하나, 나에게도 치킨에 맥주를 주었다는 또 다소 뻔한 전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멍부(멍청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을 일컫는 말)에다가 초보 사장이었던 나는 노트를 펴 손님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곤 했다. 손님, 주소와 현관비밀번호, 주문일(매주 월, 수, 금인지 매주 월요일인지 등), 특징 등을 정리해 두고 배송이 나가는 전날 다시금 확인을 했다. 챗봇이 상담해 주는 스마트한 시대에 이렇게나 언스마트한 노트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노트에는 우리 가게의 역사가 담겨 있어 아주 소중하다. 우리 가게 첫 번째 손님의 성함, 우리 가게 통장에 처음 입금하신 손님의 성함, 유방암으로 인해 항암치료를 하고 계신다는 손님의 주문을 받을 때 '간을 싱겁게'라고 적어두었고, '남자 쌍둥이'라고 적어둔 쌍둥이 엄마 손님까지 우리 가게와 함께한 손님들의 이름과 주소, 주문일과 특징을 빼곡히 정리한 노트다.


지금은 손님이 많아져 수기로는 정리할 수 있는 양의 수준을 한참이나 넘어섰고, 홈페이지로 주문을 받고 있기에 노트에 수기 정리는 필요가 없어졌다. 손님 이름 한 자 한 자 적어가며 정성을 들이던 비밀 노트와는 이별하였으나 지금은 카카오톡 채널의 메모 기능이 비밀노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항암치료하고 계신 손님,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 미역국 좋아하는 손님, 감자채볶음 좋아하는 손님, 금요일에 친정어머니가 오셔서 같이 식사를 하신다는 손님의 정보를 카카오톡 채널 메모에 기록해서 항암치료를 하고 계신 손님댁 은 음식에 간을 하기 전 따로 포장을 해두고,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댁 음식은 견과류를 섞기 전 따로 포장을 해둔다. 남자아들쌍둥이가 있는 손님댁은 엄마 힘내시라고 엄마를 위한 샌드위치를 하나 더 넣어드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손님들은 감사인사를 꼭 잊지 않으신다. 김혜자선생님라며 유머도 잊지 않는 이렇게 다정한 손님들과 함께하니 인생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가게를 시작하며 읽은 경영서 중에 가장 감동을 받은 책은 '육일약국 갑시다'이다. 저자 김성오 사장님은 약사출신 경영자로 마산에서 4.5평 약국을 시작하여 메가스터디 부사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메가넥스트 대표이사로 계시다고 한다.

'육일약국 갑시다'에서 김성오 사장님은 손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조제실로 들어가면 수시로 차트를 들여가보며 이름을 암기했고 손님이 돌아간 후에도 40~50번씩 이름을 외우고, 그런 손님이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오면 이름을 기억해 내 "김영희 씨, 그래 지난번 편도선은 좀 어떻습니꺼?" 한다는 것이다. 그 뒷 이야기는 당연히 손님들이 손님들을 불러 모았다는 이야기다.


어떤 가게를 시작하든 단 한 명의 손님은 온다. 그 한 명을 귀하게 여겨 최선을 다하면 두 명이 되고, 어느새 두 명이 네 명으로 늘어난다. 이 기적을 낳는 기술이 김성오 사장님의 중요한 생존방식이자 경쟁력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김성오 사장님의 핵심 경쟁력이 가져온 성공 신화가 가슴 벅차기도 하지만 그전에 '손님' 아니 '사람'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에 내 마음이 동한다. 나도 너도 손님도 우리 모두가 귀하고 귀한 사람 아니던가.



그림 픽사베이,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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