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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Dec 13. 2023

이런 내가 장사해도 될까요?

소심한 장사꾼도 장사를 할 수 있어요.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 가져오는 일, 니 할 수 있나?"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 빼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니 아나?"

"셈도 느리면서 장사는 무슨 장사나?"


30년간 사람들 앞에 서면 제 할 말도 잘 못하는 소심한 딸을 키워온 최여사님의 물음에, "해 봐야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로 답하고 어쩌다 반찬가게 사장이 된 사회복지사 김 씨. 결식아동 저녁급식, 도시락 배달 담당자로서 시청 보조금과 후원자님의 후원금을 알뜰살뜰 살림하며 프로그램 끝나고 집에 가는 아이들 주머니 속에 마이쮸를 채워주는 것이 행복인 사회복지사가 과연 어떻게 손님 주머니에서 돈 가져오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홈페이지에서 주문을 받아 홈페이지에서 카드 결제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지만, 초기에는 주문을 받고 손님에게 금액을 안내하고, 입금을 받고, 입금내역을 확인하고, 현금영수증을 발급하고, 손님께 감사인사와 함께 현금영수증 사진을 보내드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입금이 늦어지는 손님들이 계시기 마련인데, 입금을 해달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 주시겠지, 내일 주시겠지, 미루다 보면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가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입을 떼 입금 요청을 드리면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사과하며 즉각 입금해 주시는 손님들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떼인 돈 0원!


오르는 물가에 식사 금액을 올려야 하는 경우에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미루다 미루다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연신해 가며 금액 인상 안내를 드리면, "요새 물가가 심각하게 올라 금액을 올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매일 반찬 오는 날만 기다리는 집이에요.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는 손님들이다.


한 여름 무더운 날씨로 인해 음식이 상한 채 배송해 드린 날이었다. 배송이 끝나는 6시 무렵, 잡채 맛이 조금 이상하다며 매우 미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주신 손님, 당장 잡채를 먹어보니, 시금치가 상한 듯한 맛이었다. 즉각 전체 손님들께 잡채가 변질된 것 같으니, 절대 드시지 마시라고, 혹여 드신 경우라면, 몸에 이상이 있는지 잘 살펴보시고, 이상이 느껴지시면 바로 병원으로 가시고 꼭 연락 달라는 안내 메시지를 드렸다.  다행히 상해버린 잡채로 인해 아픈 손님들은 계시지 않았고 그렇게 조마조마한 시간들이 지나고, 정신을 차리고는 식사 비용을 환불 처리해 드리기로 했다. 이미 사용한 식재료 비용과 새벽부터 음식을 만드느라 들어간 직원들의 애씀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 호주머니에 이미 들어와 있는 돈도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보다도 상한 음식을 보내드렸다는 부끄러움과 죄송함이 컸다. 전체 손님들께 다시금 죄송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계좌번호를 여쭈자 반 이상의 손님이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때는 얼마나 계좌번호 독촉 메시지를 보냈는지, 한 손님은 그만 좀 물어보라며, 짜증이 섞였지만 애정 어린 답을 주셨다. 이때 많은 손님들이 '여름철이라 집에서도 음식이 상하니, 너무 크게 상심하지 마시라', '역시 무방부제 인증'이라며 오히려 장사꾼을 위로하고 응원해 주셨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아직까지 일명 '진상고객'을 만나 본 일이 없다. 오히려 장사꾼인 내 주머니를 걱정해 주시는 '감동 고객'을 많이 만나곤 한다. 그리고 '감동고객'들로부터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예의를 배운다. 세상이 이렇게나 따뜻한 곳이라는 것도 함께 느낀다.


여전히 '신메뉴가 나왔으니 주문주시라', '오늘까지 할인이니 빨리 주문하시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다.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전체 품절 예상, 이 기회 놓치지 마세요. 지금 전화하세요"라며 못 사게 될까 봐 불안으로 나를 몰고 가는 홈쇼핑 언니들을 멍 때리며 바라본다.


꼭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해야하나요? _ 마스다미리



손님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잘 빼와야 장사꾼일까? 그렇다면  '남는 거 없다'는 대한민국 3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장사꾼이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손님들께 돈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도, 오르는 물가에 가격인상을 미루고 미루어도, 장사꾼이 실수를 해도 오히려 장사꾼의 주머니를 챙겨주려는 손님들이 있기에 장사를 계속해 나간다. 그렇게 소심한 장사꾼은 손님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오는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로부터 세상이 이렇게나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배우며 그들과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장사한다고 그렇게 셈이 밝을 필요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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