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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Dec 15. 2023

어쩌다 반찬가게 사부님이 된 변리사 김 씨

자신의 쓸모에 대하여

"맛간장 기다려라! 유난 먹돌이가 간다!"



월, 화, 수, 목, 금하고도 토요일도 출근하는 변리사 김 씨, 늦깎이 변리사로 회사 내 똑똑하고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검은 머리 외국인(분명 한국인인데 영어를 외국인처럼 구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들과 일하다 보니, 출퇴근 시간에는 영어 공부 중이고, 일본 회사와의 업무가 많아 요샌 히라가나도 외우고 있다.


그렇게, 주 6일 일하는 변리사 김 씨는 일요일 반찬가게 사부님으로 변신한다. 어렸을 때부터 권여사님(시어머니)의 특출 난 음식솜씨를 맛보며 자라온 역사를 증명하듯 그는 절대 미각을 자랑한다. 유튜브 계정을 공유하는 사이인 우리는 서로의 관심사를 알 수밖에 없는 관계인데, 9살 딸아이를 피해 화장실에서 몰래 보는 그의 유튜브 목록의 대부분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부위별 특징과 맛에 대한 영상이다. 엊그제 먹으러 간 삼겹살집에서 삼겹살을 추가한 그는 "에이 사장님~ 자꾸 미추리쪽(비계많은 부분)만 주지 마시고 골고루 섞어 주세요"라며 삼겹살집 사장님께 보이지도 않는 눈웃음을 보낸다.


벚굴이라고 아는가? 벚굴은 일반 굴처럼 해안가에서 채취하지 않고, 섬진강 등에서 봄에만 나오는 특별한 굴이다. 크기도 크고 단단해서 망치로 깨야 먹을 수 있는 식재료인 벚굴은 먹기가 상당히 까다로운데, 그는 집안 공구함을 꺼내가며 벚굴 해체 작업 후 맛보는 바다냄새 가득한 시원한 굴 맛을 느끼며 흐뭇한 웃음을 띤다. 변리사 김 씨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만 찾아다며 먹는 음식 애호가이자, 절대 미각을 지닌 즉 '유난스러운 먹돌이'다.


그런 그에게 나의 반찬가게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무대와 같은 곳이다. 얼마 전 회식에서 먹었던 쓰끼야끼가 너무 맛있었다던 그는 레시피 연구를 통해 가족들에게 쓰끼야끼를 선보였고, 가족들의 높은 점수를 받은 쓰끼야끼는 다음 달 우리 가게의 신메뉴로 선보이게 되었다. 유난스러운 먹돌이가 레시피 연구를 통해 개발했으니 당연히 맛은 보장이다.




공기업에 다니던 그는 결혼 후 돌연 사표를 내고, 친구와 함께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그가 친구와 창업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주도권을 쥐는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앱 개발을 할 수 있는 친구를 믿고 자기 기술 없이 창업을 했다. 그가 원하는 방향의 아이디어가 있어도 앱 개발 기술이 없으니,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많이도 느꼈다고 한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의 얼굴은 항상 어두웠다. 어깨는 축 쳐져 있었고, 안 그래도 작은 눈이 빛을 잃어 더 작게만 보였다.

 

자신의 쓸모는 자존감에 큰 영향을 준다. 우리는 자신을 필요로 한 곳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특히 스스로가 나를 필요로 한 곳에서 내가 쓰이고 있구나,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아야 자기 가치를 느끼고 나아가 자기 삶에 만족을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쓸모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빛을 발할 때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가 앱 개발이라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을 때는 한없이 작았으나, 음식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도 높은 그가 식재료와 레시피를 연구하게 되니 타고난 재능에 날개를 단 셈이 되었다.

그렇기에 일요일, 반찬가게 사부님으로 레시피를 연구하러 가는 변리사 김 씨의 발걸음은 늘 경쾌하다. 그는 우리 가게에서 본인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자신의 쓸모를 인증해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다가온다. 2달간의 긴긴 겨울방학이 두려운 엄마들을 위해 겨울방학특집 상품을 개발 중이다. 특히 휘리릭 5분 만에 아이들 반찬을 만들 수 있는 맛간장을 개발하고 있다. 계란프라이 하나해서 맛간장 슬쩍 두르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면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계란간장밥을 만들 수 있고, 오뎅볶아 맛간장 한 숟가락 넣어 오뎅볶음 만들고, 포슬포슬 감자 삶아서 맛간장으로 조리면 감자조림으로 완성할 수 있는 엄마는 편하고, 아이들은 잘 먹는 맛간장말이다. 누가 만드냐고? 바로 유난 먹돌이, 변리사 김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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