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꼬마와 대치한 시간이 가져온 것

by 맵다 쓰다

" @@씨는 참 마음 넓은 엄마인가 봐요"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친구 남편이 말했다.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이가 화장실에서 한참을 물을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은 손 씻는 중이라지만 계단 발판을 딛고도 까치발을 해야 물이 틀어지는 세면대에 매달려 계속 양치컵으로 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이미 윗옷, 아래옷 할꺼없이 다 젖은 모습이 당연히 내게도 보였다.


"왜요? 전혀 아닌데요?"

이 대답에 쿨하게 아이 키우기로 유명한 친구 남편은

"지금 옷 다 젖었는데.... 하지 마란 소리 한 번을 안 하길래..."

진짜 자애로운 엄마를 생각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 어차피 하지 말래도 해요. 지가 다하면 나올 거예요"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100센티도 안 되는 땅꼬마랑 대치를 했는지 모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 잘 듣는 게 최고 진리라고 생각하고 자라왔다. 게다가 성격은 뭐든 빨리빨리, 느긋한 성격과 거리가 멀다.


그런 내 성향과 비슷한 첫째는 선을 벗어나지 않고 겁이 많은데, 둘째 아이는 호기심도 많고 도전을 즐긴다.


큰 아이는 12개월이 넘어서도 실내 미끄럼틀을 태우려면 울음을 터트렸었지만 둘째는 6개월에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는 신공을 보여줬다.

아마 두 살 터울이라는 인정하지 않고 눈으로 보는 언니의 행동을 모방했던 것 같다.


대소변도 못 가리는 17개월 아기가 추격전 끝에 겨우 기저귀를 채워놓으면 잠든 사이 스스로 벗고 자기를 반복했다. 초겨울 한강같이 젖은 이불 위 윗옷만 입고 자는 모습을 목격할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었다.

내 아이지만 인간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기저귀 전쟁이 얼마나 스트레스였으면 나는 18개월인 아이를 위해 천기저귀 세트를 거금을 들여 샀다.

그토록 아이가 기저귀가 싫은 이유가 혹시 잦은 기저귀 발진 때문인가 싶어서였다.

"네가 기저귀 하기 싫으면 쉬를 (키티) 변기통에 해봐!"란 나의 간절한 독백이 효과가 있었는지 십만 원이 넘는 bamboo기저귀 세트는 채 30일도 못쓰고 20개월에 스스로 기저귀를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싹이 보였던 "내가 내가~병"덕에 아이는 포크를 건너뛰고 바로 젓가락질부터 배웠고 뭐든 유심히 보고 자꾸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포크 없이 젓가락으로 적응하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도, 직접 물을 따르는 실수를 매번 참아줄 만큼 나는 자애롭지는 않았다. 그저 두 아이를 빨리 건사해놓고 앉. 아. 서. 믹스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 보통 엄마였다.

기상천외하게 장난쳐서 응급실에 소환되고 무한한 호기심이 불러오는 뒷수습 하다 보면 그나마 있던 인내도 금방 바닥을 보였다.


조금 더 무르익고 천천히 해도 되는데 이른 것 같은 수 없는 아이의 시도는 내게는 인고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하면 5분이면 할 설거지를 같이 하겠다고 3살짜리가 식탁의자를 밀고 와서 옷부터 바닥까지 물바다를 만든다.

그렇게 나는 순서를 지켜 차근히 할 때 되면 했음 싶었고 아이는 수십 번 부딪혀 끝까지 해보고 싶어 했다.



기질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은 "원래 그런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장미꽃은 가시는 '원래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 가시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평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출처 : 공감과 성장 ]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자마자 신청했던 부모교육에서 들은 말이다.

나만 육아가 이렇게 죽도록 힘든 이유는 나와 아이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첫 아이는 다른 힘든 점이 있었지만 기질은 비슷하기에 약간의 연민이 느껴지는데 둘째 아이는 내가 못 참아하는 포인트에서 자꾸 나와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다.


그냥 아이는 그렇게 타고난 것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육아서는 아이에게 자꾸 기회를 주라고 한다.

이론도 알겠고 기질도 알겠는데 보고 있는 반대의 기질인 나는 사실 편하지가 않았다.

그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괜찮아~"하는데 괜찮지 않은 것...

내 아이고 엄마이니 노력해야 하지만 상황이 즐거울 만큼 나는 어른이 아녔었다.




문구용 테이프가 또 어디로 갔는지 찾다 박스테이프로 가져와서 종이 붙이기를 하는데 잘 잘라지지 않아 도와준다고 하니 "내가~!" 한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아휴~너 어쩜 이렇게 야무지게 하니~"

물으니

"응~엄마, 자꾸 해보면 돼!"

라고 대답하면 웃는다.




그때는 미칠 것 같던 땅꼬마와 대치한 시간들은 나를 힘들게 하려고 지나온 것이 아니라는 게 지금에서야 보인다.


그래. 자꾸 해봐야 잘하지!


엄마도 자꾸 해보면 엄마로서의 그릇을 잘 지킬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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