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 동생이 없었을 때로 돌아가면 좋겠어"
늘 셋이서 북적이면서 샤워를 하다가 먼저 잠든 동생을 빼고
나와 7살 딸아이만 씻다가 나눈 대화였다.
간지럽다며 화기애애하게 씻어주던 중 뜬금없는 말이라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려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대수롭게 않은 질문인 듯 가볍게 말했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이 '쿵'하고 떨어졌다.
잘 먹고 잘 자는 두 가지가 어렵기만 한 첫 아이였다.
감각이 예민하고 극도로 낯을 가리는 기질 덕에 13개월이 될 때까지 단, 10분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조금 크면서 나아지나 싶었더니 동생이 태어난 후 엄마 집착과 퇴행이 더 심해졌다.
동생이 싫다는 말을 달고 다니다 못해서 잠꼬대로도 OO(동생 이름) 싫어! 하고 외쳤던 아이다.
형제를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웬수를 만들어준 걸까?
아이와 아기의 엄마 쟁탈전은 내 육아의 시간을 폭풍으로 만들었다.
우는 두 아이를 앞과 뒤로 하나씩 업고 안고 나도 엉엉 울면서 보냈던 밤의 시간들은 지금 떠올려도 금방 눈물이 차오를 만큼 아프고 시렸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서 삼십 분에 한 번꼴로 싸우던 두 아이는 이제는 적당히 싸우고 화해도 할 줄 아는 어린이가 되었다.
지겨운 코로나도 둘만 있으면 재밌는 방학이 될 정도로 사이좋은 자매이자 친구가 된 모습을 보면서 '그래.. 이런 맛에 형제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한 거였지..'그때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없었을 때라니...
아이는" 동생이 없다면 사랑을 나만 받을 수 있잖아? "하고 답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양보하는 게 낫다는 걸 터득한 7살의 마음속 말이었다.
괜찮아서 괜찮은 게 아니었던 진짜 마음..
엄마 무릎은 내 자리, 밖에서도 '나는 엄마랑 같이'를 외치는 동생이 떠올랐다.
어느 날 외출해서 돌아오던 택시 안에서 둘 다 잠이 들었던 적이 있다.
큰 짐과 두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 짐을 어깨에 메고 작은 아이를 안고 큰 아이는 살짝 흔들어 깨웠다.
졸리다며 울먹이는 아이를 달래면서 집으로 겨우 들어왔다.
보통의 날이었다면 잠투정을 조금 하고 끝냈을 아이였는데 그날은 좀 달랐다.
현관문이 열렸는데 신발도 벗지 않고 털썩 앉아서 대성통곡을 했다.
"왜 맨날 엄마는 동생만 안고 들어오는데! 엉엉"
당시 3살인 동생과 5살인 아이..
잠귀가 밝은 큰 아이는 차가 멈추면 잘 깼고 아직 만 3살이 안된 동생을 안고 오는 선택은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동생은 아기이고,, 넌 언니니까..
언니라서 양보하란 말은 안 하고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는 수없이 보여줬던 것이었다.
"엄마가 미안해. 다음번에는 널 꼭 먼저 안아서 들어올게"하고 펑펑 우는 딸아이를 안아주는 것 말고는 해 줄 말이 없었다.
5살의 언니는 7살이 되었고
동생은 5살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선택을 한다.
분명 같은 나이인데 다른 5살의 무게를 요구당한다. 같은 나이인데 엄마는 늘 다 큰 것처럼 대하게 된다.
3살에 언니가 되었고
4살의 언니.
5살의 언니..
...
그리고 지금 7살의 언니가 되었다.
늘 언니의 나이만 있는 큰 아이..
아이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 만약에 동생이 없으면 엄마가 하나, 아빠가 하나 이렇게 사랑을 2개를 받을 수 있어.
그런데 동생이 있으니 너는 동생 사랑도 하나를 받아서 3개가 있는 거야.
그럼 넌 지금 동생이 없는 친구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어 그렇네? 그럼 더 좋은 거였네?"
나는 비겁하게 말을 돌려서 동생이 있는 건 결론적으로 좋은 거라고 아이가 이해하길 바랬다.
늘 똑같이, 더 많은 사랑을 주면 되지 엄마의 사랑에 총량이 있는 건 아니라고 믿었다.
매 번 온전히 채워주지 못한 미안함이 없었던 건 아니였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하지만 너도 그리고 나도 모른척 했지 느끼지 못한 건 아니였다.
아이의 잃어버린 5살같은 순간들...
되돌릴 수 없는 아이의 시간들이 잘 채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