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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Jul 17. 2020

아이에게 절대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말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을 바쁜 걸음으로 내려온다. 저 아래에서 여자아이와 엄마가 막 계단을 걸어 올라오고 있다.

어른에게는 별 것도 아닌 한 칸의 계단 높이지만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무릎을 들어 올려야 한 칸 한 칸 올라오는 게 보인다.

어느 엄마도 그렇겠지만 혼자서 밖에서 마주치는 내 아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그냥 지나가는 배경처럼 보이지 않고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는 올라오고 나는 내려가면서 가까워질 무렵 그들의 대화가 들린다.

그들의 대화라고 해봐야 엄마 혼자만의 대화이긴 하다.

아이 엄마는 한 칸 한 칸 올라오면서 하나, 둘, 세엣. 넷~ 숫자를 붙여가면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몇 번 하고 끝낼 줄 았았는데 열둘, 열셋..... 계속 이어진다.

계단을 다 내려와서 아직도  숫자 세기가 계속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끄러미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끝까지 오르도록 이어지는 말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마도 숫자는 계속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아이가 듣는지 마는지, 흥미가 있는지는 크게 상관은 없이 엄마의 집요한 숫자 세기 의식 속의 계단 오르기를 보니 '피식'웃음이 났다.

'놀이를 가장한 숫자 교육이 하고 싶구나,, 저 엄마..'



내가 첫 아이를 키우던 때가 생각났다.

나도 육아서를 섭렵하고 에서 시킨 대로만 아이를 키우려고 했다.

오감놀이, 동화구연처럼 책 읽어주기, 아이와 있을 때 수다쟁이 엄마 되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에게 많은 걸 주입하고 싶어 했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직무를 유기하는 엄마가 되는 것처럼,  나는  좋은 엄마라는 프레임을 비뚤어지게 가지고  있었다.


자꾸만 아이에게 설명하고 정보를 줘야 할  같았다.


사실, 그때는 뭔가에 잘못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우리 아기 오늘은 꽃무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을까? 와~ 꽃냄새가 참 좋지?"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말을 시작하기 전까지 수없이 설명하고 표현해줬다.

'엄마의 언어가 곧 아이의 언어다.'

어떤 아동 교육학 박사가 말하는 것처럼 내가 좀 힘들어서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감수하는 게 나의 소임을 잘해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와~ 이건 뭐야? 예쁜아? 빨~간 색이네! 딸기같이 맛있는 빠알간색~~"하면서 늘 놀이를 가장한 정보를 슬쩍 끼워 넣었다.

우리 아이는  둘 다 '유아어'를 건너뛰고 바로 말을 했다.

아이라고 밥을 '맘마'로 먼저 알려줄 필요가 없다는 책을 보고 얼마나 신경 써서 알려줬는지 첫째는 15개월에 '할머니'란 단어를 구사했다. 할~, 도 '할미'도 아닌 '할머니'부터 나오는 빨라도 너무 빠른 아이의 언어발달을 보면서 나의 '육아서 육아'는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미소 지었다.


공부에 극성인 엄마는 아니고  인성, 감성, 창의력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거라고  세뇌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내 아이가 좀 남다르면 좋지 않을까? 검은 속내가  솔직히 있었음을 이제는 인정한다.


그런데 유별난 엄마의 시간도  길지 못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원초적 본능들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소위 말해서 멘탈이 탈탈 털렸다. 선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교육적 육아의  막'은 어이없게 내려졌지만 의외의 수혜자가 생겼다.

바로, 둘째...


둘째가 자라나는 걸 보면서 별 다른 걸 해주지도 않고 일부러 경험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때가 되면 다 하더라는 걸 조금은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야생의 거친 말처럼 부딪히고 배워 습득하는 근성이 더 있어 보였다.


육아(育兒)는 말 그대로 아이를 기르는 것인데 난 왜 교육(敎育) 아만  하려고만 애를 썼을까...



요즘 웬만하면 아이들에게 고쳐주지 않는 말들이 있다.

너무 예쁜 육아기에만 만날 수 있는 사랑스러운 말을 예고 없는 선물처럼 받을 때가 그렇다. 일부러 바른말로 알려주지 않고 그 소중한 추억을 남편에게 잘 싸서 퍼다 나르고 잊지 않으려고 기록해둔다.


아이만의 상상력이 잔뜩 묻은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너무 아쉬워졌기 때문이다.




"엄마, 눈에 이상한 게 있어!"

" 뭐가 있는데?"

"응, 눈밥인가 봐.."


이제 곧 눈곱도 신기한 그때가 금세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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