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20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든다.
띠리리...
긴장감 묻은 연결음이 들리고 여보세요?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오늘은 어땠어?"
나와 친정엄마의 대화이다.
아이는 또 등원거부를 격렬히 했고 조손육아의 현타를 경험한 친정엄마는 바스러지는 낙엽같은 목소리로 아침 일을 전해줬다.
한숨으로 시작해 한숨을 끝나는 통화..
누구에게나 설레이고 특별한 단어가 있다.
바로,처음..
첫 사랑, 처음 가본 여행은 듣기만 해도 설레이기도 하고
입학,첫 월급..처럼 한 사람의 인생에 굵은 의미를 남기기도 한다.
두번째, 세번째보다 처음이 더 의미있는건 아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는 그 앞의 시간들이 더해져서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처음을 연속적으로 경험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건, 부모가 되어 내 아이의 첫번째 경험을 같이 할때이다.
내가 겪은 일들보다 더 떨리게 봐지는 아이의 모든 첫번째 경험들..
종잇장 같은 손톱을 땀을 뻘뻘흘려가면서 처음 잘라주던 순간, 의미없는 옹알이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찾아낸 순간, 도저히 직립보행이 불가능할 것같은 통통한 발바닥으로 첫 발을 떼서 걸음마의 순간까지..
그 작고 사소한 순간들 모두가 경이롭고 특별했다.
힘든줄도 모르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한땀한땀, 배냇저고리와 손싸개를 만들며 아이와 만나게 될 처음을 그리고 또 그렸다.
처음 어린이집에 갈때는 가방보다 더 작은 아이 어깨가 어찌나 애잔하고 마음이 복잡하게 만들었나 모른다.
내가 처음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맞는 것인지 생각하고 곱씹어 봤기 때문에 지금도 뇌리에 깊이 스며있는 것도 같다.
그렇게 어렵기도 했고 설레였던 시간들이 모여서 나는 부모됨의 처음 경험들을 채워나가고 있다.
운동이든 일이든 세상의 모든 일처럼 아이를 통한 부모경험도 처음과 두번째의 체감은 꽤 다르다.
처음은 두려움을 동반한 설레임을 두번째에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무엇이 올지 모르는 두려움은 있지만 강렬한 설레임이 있는 첫번째가 더 깊이 기억에 남는다.
대신 비슷한 경험이 내 안에 습득되어 있는 두번째는 약간의 설레임만 자리잡는다.
둘째가 유치원에 입학을 했다.
유치원을 보낼까? 어린집에 남을까? 수십일을 고민했던 첫째때와는 다르게 망설임없이 유치원으로 선택했다.
형제 우선 입학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고, 언니가 재원해있는 1년을 같이 다닐 수 있으니 동생에게도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보냈던 곳, 늘 타던 버스에 작은 아이만 딸려 보내는 것처럼 사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코로나로 입학식도 없이 그냥 일상이 시작되는 듯 입학을 했다.
나름은 케잌에 촛불을 불고 입학을 축하해주며 둘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줬다.
하지만, 약간이 설레임은 순전히 나만의 것이였다.
어째도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처음 큰 기관에서 생활하게 된 아이에게는 그냥 모든 게 두려움을 동반한 처음이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크게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였다.
또래 집단이 얼추 형성된 6세에 입학해서 1년간 유치원 적응기를 호되게 겪은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동생은 5세입학을 시켰으니 다 처음인 친구들일것이고 언니따라 몇번이나 방문해본 곳이라 쉽게 적응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등원전쟁이라니..
윗옷을 벗기면 바지를 벗고 등원버스앞에서 도망치고 단식투쟁하듯 모든 행동을 거부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부권 행사하는 둘째와 온 가족이 씨름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억지로 보내보기도 하고 달래보며 협상을 하기도 했다.
고작 3주가 지났는데 아침이면 도돌이표 되는 풍경에 내 마음에선 이런 소리가 들렸다.
' 아....왜 너마저..'
너라도 좀 편하자.. 왜 둘 다 이럴까?
지극히 내 중심적인 시선이 나왔다.
너라도란 해석자체가 아이에게 말도 안되는거였다.
울고 불고하는 큰 아이는 1년간 어르고 달랬으면서..둘째는 그정도했으면 잘 갈때도 되었다고 아이의 처음을
내 기준에서 재단하고 있었다.
늘 똑같이 대한다고 말로는 하면서 처음 에너지를 탈탈 털어 써버리고 나면 두번째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기운이 빠졌다.
지나간 시간들이 머릿속에 영상처럼 떠오르면서 어째 나는 하나도 쉬운게 없는건가..이런 푸념에 빠졌다.
내 인생에 하나라도 수월하게 넘어가길 바랬다.
하지만, 둘째도 처음만은 양보할 수 없었나보다.
첫 유치원 입성기도 언니에 이어서 또!가 아닌 나는 나로 봐달라고 아주 요란한 소리로 처음을 알리고 있었다.
아..그래..
너의 처음..
두번째란 이유로 스치듯 지나갈까 싶어 엄마의 뇌리에 너의 5살을 새겨두고 싶은거구나..
그러고 보니 ' 이제 좀 그만하지'의 시간은 첫째아이를 기다려준 시간이 슬며시 더해져 있던거였다.
자식을 기르면 인내와 사랑이 2배로 솟아나와야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9번 참다가 10번째 말하는 아이에게 폭발을 하기도 하고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덜 봐주는 경우도 생긴다.
나 역시 동생으로 커서 부모님의 오빠는 되고 나는 안되는 것들에 그토록 억울해 했으면서 부모가 되어 보니 별 수 없다.
이렇게 한번씩 관심을 추를 훅 당겨줘야 온몸의 방향이 그쪽으로 돌아간다.
다시 무게 중심을 찾으면서 균형을 유지하겠지만 그렇게 흔들리고 다시 제자리를 찾고 하면서 아이들도 부모도 커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