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앙~ 억울해! 왜 내 것만 안 나는 거야!"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대성통곡을 한다.
며칠 전 일이다.
학교에서 무순을 심었다고 자랑하던 아이는 꽃이 피는 씨앗을 심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양이때문에 웬만하면 화분을 두지 않지만 다이소로 씨앗 쇼핑을 다녀왔다.
큰 아이는 나팔꽃, 작은 아이는 코스모스를 골랐다. 다른 성향처럼 꽃도 화분도 제각기 다르다.
나팔꽃에게는 불팔일(불끈 자라는 나팔꽃 정도의 의미다..아마도?)
코스모스에게는 불끈이 는 이름로 붙여주고 오매불망 싹이 나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역시 나팔꽃은 쉬이 자라지 않았다.
나팔꽃씨앗은 딱딱한 외피가 다른 씨앗보다 두텁게 둘러쌓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씨앗 봉투에는 심기전에 씨앗에 작은 상처를 내서 심는 게 좋다는 설명이 되어있었다.
씨앗의 종류에 따라 나오는 시기가 다르다고 설명해도 머리로는 이해가가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나보다.
"그러게 우리 딸이 얼마나 정성껏 물주고 애타게 기다렸는데, 씨앗이 나쁘네~"
어줍잖은 공감을 던지면 울음이 멈출까싶었더니 울음소리가 커진다.
"그런 말 하지마~ 씨앗이 듣고 더 안나오면 어떻해~으앙!!"
간신히 마음을 달래주고 다같이 소원을 빌고 잠이 들었다.
강제로 자라게 할 수도 없고 물을 너무 줘서 썩어버린거가, 원래부터 싹이 나지 않는 씨앗을
심은 건가 여러가지 생각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우리의 애타는 바램에도 무정한 씨앗은 다음 날도 미동도 없이 흙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눈뜨자마자 창가로 달려오던 아이는 옆의 동생화분의 코스코스가 쑥쑥 자라는걸 보고는 더 풀이 죽었다.
퇴근 후 돌아와서 보니 의심스러운 새싹이 자라있었다.
뭔가 맥락이 맞지 않게 키가 큰 새싹이었다.
"어? 네 새싹이 자랐네?그것 봐 기다리면 다 자란다고 했잖아~ "
자세히 살펴보니 아주 작은 새순도 흙 속에서 꾸물거리면서 올라오는 것도 보였다.
아이는 신나하면서 요기요기 해가면서 자신의 새싹을 설명했다.
주작(做作)
없는 사실을 꾸며 만듦.
주작의 기운이 느껴졌다.
한바탕 난리를 전해들은 할머니가 아이가 학교간 틈을 타서 동생 화분의 코스모스 하나를 옮겨 심은 것이다.
싹도 자라나게 하는 신의 손을 지닌 할머니는 몰래 눈을 찡긋거렸다.
그 몇시간 후 진짜 나팔꽃 새싹도 조금 자라게 되었다.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을 괜히 새싹을 옮겨심은 것 같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도 없게 되었다.
한 화분에서 자라있는 두 종류의 새싹이 내 눈에는 어색했지만 아이눈에 대수롭지 않아보이나 보다.
나팔꽃 싹을 살펴보니 딱딱한 씨앗의 껍질을 머리에 얹은 채 살포시 자라나있다.
그렇게 밤의 시간을 지나야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있다. 저런 껍질을 뚫고 나오느라고 그렇게 며칠간 조용했나보다.
나는 브런치 작가로 세상에 스스로 데뷔했다.
브런치 덕분에 누구에게도 말하기 부끄러운 내 꿈을 말할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내가 몇 개월 전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첫 종이책을 준비 중이다.
길지 않은 시간에 원고를 써내야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첫 책 계약을 알리면 축하받던 기쁨도 잠시,
주변의 응원과 관심이 부담으로 느껴져 물에 잠긴 씨앗처럼 힘을 잃을 것도 같았다.
시간은 흘러도 기계적인 생산품처럼 글이 재깍재깍 나와주지 않자
원래 내 씨앗은 썩은 씨앗이 아닐지 재능을 의심하게도 했다.
마음처럼 써지지 않으니 그냥 씨앗인 채로만 살 면 안될까..마음에도 없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이 딱딱한 껍질에 틈을 비집고 작은 새순을 뻗을 수 있는지 하는 감정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자라난 나팔꽃 새순을 보니 기다림이 필요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싹이 나올 때가 되면 나오는데 조급해하고 불안해하고 누군가는 다른 것으로 대신하려고도 한다.
고요하고 미동도 없어도 흙속에서도 열심히 발길질하고 있었을 것이다.그런 시간을 온전히 지나야만 씨앗 속 작은 새순이 있어야만 싹이 얼굴을 내밀수 있다.
"엄마 내 씨앗에 뭐하는거야?"
씨앗에 가위로 상처를 내주던 내 모습을 보고 아이가 화들짝 놀래서 물었었다.
나팔꽃처럼 약간의 도움을 받아 틈을 만들수는 있지만 싹을 틔우는 건 온전히 씨앗의 몫이다.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준 출판사가 있었지만 내 벽을 깨고 도전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고요 속 외침같은 시간은 씨앗처럼 홀로 보내야할 통과의례같은 시간이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건너뛸 수도 없는 과정이다.
역시 과정은 어렵다. 그리고 지루하다.
하지만 과정이 없이 결과는 없다.
나에게 4월은 과정의 달로 기억 될것같다.
씨앗심기 좋은 날이 따로 있을까?
'시도'란 씨앗은 파종시기가 없다. 내가 마음 먹은 그때가 적기다.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나머지 씨앗도 나도 껍질을 뚫기 위한 시간 4월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