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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Jul 16. 2021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쁜 년

아이들에게 새로 사준 전집이 집에 도착했다.

책더미에서 제일 처음 읽을 책을 고르는 눈빛이 진지하다. 그림만 보고도 기대가 되는지 이 책 저책을 들추다가 "이거!이거!" 한권을 골라내다.

제목이 "엄마 출입 금지"다.


매일 자기 전 책 읽어주는 시간, 아이들은 좀 덜 하겠지만 사실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읽어주는 것이 매일 즐겁지만은 않다. 그런 의미로도 엄마인 나도 새 책이 반갑다.


은  초등학교 3학년 딸과 엄마의 이야기다.읽어주다 보니 내용이 심상치 않다. 어린 나의 아이들과는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이야기라 계속 읽어줘야 하나 살짝 고민을 했다.

초등학생 딸과 대치하는 엄마는 화내는 괴물처럼 그려져있다.

엄마눈에 뻘겋게 불이 켜지고 드라큘라 처럼 송곳니가 자라고 뿔이 두개 솟은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슬며시 물었다.

"얘들아, 엄마도 이렇게 너희한테 화낸적 있니?"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답을 기다린다.

둘째가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한다.

"없어~"

사실 없진 않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 충격적인 장면은 없었구나 싶어 다행이다 싶다.


여덟살 큰 아이를 쳐다보면서 다시 묻자 조심스럽게 말한다.

"우리한테는 없는데...."

뒤 이어질 말에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떨린다.

"없는데?..."

내가 태연한듯 연기하면서 묻자

"오늘 아침,,할머니한테.."


'아.....'

아침에 나의 육아를 도와주시러 오는 친정엄마께 화를 냈다.

매번 같은 문제로 부딪혔기때문에 아침이란것도, 아이들앞이란것도 잊고 가시 돋힌 말을 쏟아냈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불만은 속으로 삭히면 없어지지 않고 어딘가에 숨어있다. 기회가 생기면  땅속의 감자처럼  더미져서 딸려나온다.


모두가 속상하게 아침이 시작되었다.

얼마전부터 의식적을 말하던 "좋은 하루보내~, 엄마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하던 인사도 당연히 없었다.

내가 망친아침이지만 문제 제공을 상대가 했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이 눈에 비친 엄마는 불에 불이 켜진 동화책 속 엄마같았던 것이다.

"엄마, 할머니 마음에 상처가 되서 얼마나 아팠겠어요?그러니까 내일 꼭 잘못했다고 이야기 하세요"


사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가 제일 어른이라면서요? 근데 엄마가 그러면 안되는거 아니예요?"


반박할수 없는 딸아이 말에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친정엄마는 아이들 등원을 도와주러 우리 집에 오셨고 바쁜 아침이 지나갔다.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손만 내밀면 닿는 거리의 전화기를 눈으로 쳐다만 봤다.

전화기를 보고 있자니 수십년전 일이 생각났다.



"딩동댕~" 쉬는 시간 종이 울린다.

우샤인 볼트말고 칼루이스처럼 자리에서 튀어나가서  공중전화 앞에 왔는데 벌써 줄이 길다.

다들 어디에 그렇게 전화를 하려고 줄을 서는지는 몰라도 십분 시간시간 동안 줄만 서다 돌아갈때도 있을 만큼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댔다.

길게 늘어선 전화 순서를 기다리면서 십원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리다보면 손에 땀이 난다.

손에 유난히 땀이 많아서 난건지,긴장이 된건지를 모르겠지만 한참을 기다려서 내 차례가 왔다.


"따르릉~" 연결음이 들리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린다.

" 여보세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끌어올려 불러본다.

"엄...마..?"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가 얼마나 가슴이 철렁한지 알리 없는 열일곱 철모르는 딸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아침에 짜증내고,화내고 와서 죄...송해요...."


웬만해서 집을 나서는 사람에게 나쁜 소리 안하는 성격인 엄마는 사춘기 딸이 폭격하듯 내 뱉은 짜증을 다 받아냈다.

시작은 사소한 잔소리였겠지만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말이 오갔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기억도 나지않을 사소한 것이였는데 학교에 와서도 상처받았을 엄마의 마음때문에 내 마음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밤늦게 갈때까지 엄마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수 없어 두시간도 못지나 용기를 내서 전화를 했다.


그렇게 내 사춘기 시절에 집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서 공중전화 줄을 몇번 더 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짧게 수신음이 들리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

아무렇지 않게 서로 필요한 대화를 했다.

아이들에 관해 공유해야할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는 말을 꺼냈다.

"어제 아침 아이들 있는데 화내서 잘..못했어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오랜만에 잘못했다는 표현을 했다.늘 죄송이나 미안하다고만 했었는데.이번에는 꼭 그렇게 말해야만했다.

잘못한거 같았기때문이다.


알면 되었다라고 말하는 대답뒤로 많은 말이 생략되어있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엄마는 말을 아끼고 나는 화에 못이겨 말을 한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시간은 달라져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대로이다.

어쩌면 변한건 나일지도 모른다.


단 하나 빼고..


딸년은 여전히 나쁘다란 그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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