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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Nov 22. 2021

암끝검은표범나비

"아니 잡초를 먹고 산다고?"

입에서 거를 틈도 없이 '잡'초라는 말이 쏟아졌다.


"응, 근데 잡초가 아니라 들풀을 먹고사는 거지"

빙긋 웃으면 내 말에 답해주었다.


"아.. 들풀.."

그냥 풀도 아니고 잡초라고 내뱉은 입술에 탓을 해본다.


농사짓는 농부라도 돼서 농작물 말고 번식력 강한 풀들은 모두 잡초로 치부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모르는 풀이었기에 잡초였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잡초인가 싶어서 다 뽑아버리기도 하는데 그래도 드문드문 길가에 피어있네"

담장 벽과 바닥의 틈새로 삐죽 나온 풀들을 보면 그녀는 말했다.



우리 동네에서 지인과 만나기로 한 아침이었다.

지하철 역 인근으로 마중을 나갔다가 식사할 장소로 이동하는데 둘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어머!"

같은 탄성이긴 한데 다른 높낮이 었다.

나는 느낌표였고, 그녀는 물결이 붙었다면 상황이 느껴질까?

작용과 반작용처럼 나는 몸이 뒤로 흠칫했고 그녀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향했다.


우리의 발아래는 작지만 요란한 색깔의 벌레가 있었다. 무채색 빛 보도블록에서 눈길을 안 줄래야 안 줄 수 없는 검정과 형광 주황빛 무늬의 발이 여러 개 달린 듯한 벌레였다.


보는 순간 세포가 멈칫하듯 얼음이 되었던 나와 달리, 그녀는 재빨리 몸을 낮춰서 담벼락 옆 풀잎 위로 벌레를 올려뒀다.

"암 끝 검은 표범나비 애벌레야. 풀을 먹고 이렇게 길가로 지나다니다가 밟혀 죽기도 해"

설명도 행동도 범상치 않은 그녀는 숲해설가이다.( 가끔 꽃, 풀, 벌레 등 궁금한 것들이 생겨 사진 하나 전송해도 해박한 설명이 자동 재생된다.) 설명을 듣고 나니 조금은 덜 무서워지는 것도 같은데 다 컸는데 먹이 찾으러 가다가 밟혀 죽기도 해서 안타깝다는 뒷말이 참 생경하다.

단, 한 번도 그 생명을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내 생각이 들킨 것도 아닌데., 보이지 않는 내 그림자가 쭈러지는 기분이었다.

데려가서 먹이 잘 챙겨주고  나비로 날려줘 보라는 제안에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플라스틱 커피 컵을 들고 애벌레를 만났던 장소로 갔다.


그 짧은 사이에 작은 벌레가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잘도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들여다보다 포기해버리는 나와는 달리 풀들을 하나하나 젖혀가면서 진지하게 수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았는데 풀잎 사이, 콘크리트 담벼락 아래 틈에 있던 애벌레를 한 마리도 아니라 세 마리나 찾아냈다. 긴 카디건이 바닥에 닿는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그녀가 벌레를 찾는 옆으로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12시 한낮의 햇빛때문이였을까? 그녀만의 느린 시간 속에 내가 잠시 초대된 느낌이 들었다.



두 마리는 거의 다 자란 것 같고 한 마리는 아직 많이 키워야겠다고 했다. 애벌레가 수일 내로 번데기가 되고 나비로 우화 한다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풀잎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단단하게 당부를 듣고 집으로 애벌레 세 마리를 데려왔다.


초록똥을 누는 애벌레



하루에도 서너 번은 더 다니는 길목이었다. 보라색 꽃망울이 터졌던 어느 해 봄이었나 이런 담벼락에도 꽃이 피었네 하고 들여다본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먹여야겠다는 의무감에 길가를 지날 때마다 돈 잃어버린 어른처럼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응시한다. 아이에게도 이건 제비꽃이야 잎사귀 모양이 약간 하트 모양 같지 않니? 요건 더 키워서 나중에 뜯어가자. 하면서  담벼락의 풀이 우리 텃밭이라도 되는 양 작당모의를 한다.


제비꽃풀

아침에 자고 나서 풀이 더 자랐다더니 유치원을 다녀오는 길에는 더 자란 것 같다면서 아이다운 호들갑을 떤다.

어느 주택 집 뒷문 쪽엔 조금 5~7포기 정도 모여 자란 곳이 있는데 행여나 주인이 안 하던 작심을 하고 그 풀밭을 정리해버릴까 마음을 조리기도 한다.


제법 컸던 2마리가 번데기가 되기 직전이라 그런가 먹성 좋게 잎사귀를 먹어댔고, 원래 발견했던 제비꽃이 많은 길가로 저녁을 먹고 온 식구가 마실을 나갔다.

말이 좋아 마실이지 휴대폰 불빛을 비춰가면 이 풀인지, 저 풀인지 구분하기 바빴다.

남아있는 나비 애벌레가 있을까 봐 한 포기에 몇 잎사귀만 고심해서 뜯었다.

우리가 모조리 따와버리면 숨어서 자고 있는 벌레는 순식간에 식량창고 도난 사고일 테니까..


관심이 없을 때는 내 일상에 어떤 영향도 못 미치던, 벌레, 길가의 풀이 이름을 알게 되니 그 삶이 보이고 그 너머에 관심이 생긴다.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알고 싶어지고 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것.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어떤게 다른지 눈  여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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