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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Jul 12. 2020

괜히 미역국을 끓였다.

열일곱에 미역국으로 치른 어른 신고식


어른스러운 아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나는 말을 참  듣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하지 마란 건 안 하고 그어준 선안에서 살고 따랐다.

'참~착해. 우리 @@(누구)는 이해심이 많지..' 하는 말에 나의 정체성을 일찌감치 그렇게 정의해버렸었다.


기대에 부흥하려는 마음은 나를 더 착한 딸로 길러냈다.


열일곱 살쯤 이였나? 그때는 97년도였다.

멀쩡했던 집보다 경제의 폭풍이 휘몰아치던 집이 더 많았던 시절.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빠의 회사도 직격탄을 맞았고 건강이 수시로 나빠져서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아빠와 

고단한 상황의 형편을 온몸으로 막아보려고 애썼던 엄마..

아무 힘 없이 그저 상황을 볼 수밖에 없는 열일곱 살의 나였다.


빨리 어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더운 여름 엄마가 태어나신 날이 돌아왔다. 엄마의 생신이었다.

'올해는 어떻게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릴까?' 나는 한 달 전부터 혼자만의 계획을 세웠다.

보통은 편지를 적거나 작은 선물을 사서 축하의 마음을 전하곤 했었다.

미리 엄마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정 주고 싶으면 편지나 한 장 써다오. 하고 아무것도 사지 말 것을 다짐받으려고 했다.

알겠다고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나는 그냥 넘어갈 딸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도 잊은 채 일했던 엄마..

활짝 핀 꽃처럼 환하게 웃는 엄마가 보고싶었다.

자상하게 말로 표현하진 않지만 "내가 너희 때문에 산다"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올해는 좀 다른 선물을 해야지 생각했다.


토요일 낮..

집에 제일 먼저 내가 돌아오는 날이다. 상황도 완벽한 날짜였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육점에 들렸다.


"저기, 아저씨... 소고기 좀 주세요.."

언제나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물건을 사는 건 긴장이 된다.

엄마와 몇 번 와본 곳이지만 어깨에 멘 책가방 끈을 쥔 손에는 땀이 배어났다.


"응? 뭐에 쓸 건데?"


"미역.. 국 끓이게요.."

뭔가에 이끌린 듯 정육점 아저씨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을 한다.

내가 뭘 할지 자세히 설명하진 않을 거지만. 내 대답 뒤로 무언가 더 많은 질문들이 쏟아질까 잠시 두려웠다.


"엄마가 얼마큼 사 오란 말은 안했냐? "

역시나다..

"네.. 제가 끓을 꺼라서,, 엄마 생신이라서.."

나오지 말아야 할 말이 나왔다..


"아! 그럼 이 정도만 하면 충분하겠네. 아이고 기특하네~'

그 뒤로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말들을 쏟아냈고 나는 빨리 시간이 지나가고 여기를 나갔으면 했다..

칭찬이라도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난 익숙하지 않았다.


휴..

손에 덜렁이는 검정 봉지를 들고 집 앞 슈퍼마켓에 들렸다.

늘 엄마가 사던 '옛날 미역'을 눈으로 쉽게 찾아서 집어 들었다.

이것저것 묻지 않고 계산해주는 슈퍼 아줌마가 고마웠다.



집에 와서 교복을 입은 채로 싱크대에 섰다.

 

미역 봉지를 돌려보니 기억대로 '미역국 끓이는 법'이 적혀있다.



재료.... 미역, 쇠고기, 마늘. 참기름. 국간장

조리법... 불린 미역을 물기를 빼서 준비한다.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준비된 재료를 넣고 3분간 살짝 볶는다.

물 5컵을 붓고 센 불에서 한 소금 끓인 뒤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약불에서 5분간 더 끓이면, 더욱 부드러운 미역 식감과 깊은 미역국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역시. 별거 없군...'

몇 줄 안 되는 조리법은 다시 읽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쉬워 보였다.

열일곱 살쯤 먹으니 몸도 어른. 

나는 그 정도야 쉽게 할 수 있는 고등학생이었다.


봉지 속 소고기를 꺼내놓았다.

달랑이면서 들고 집에 오는 동안 소고기는 핏물이 베어 나왔다.

이걸... 어떻게 씻어야 하지?...

엄마는 어떻게 했더라? 

기억을 뒤져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

가만있어봐.... 고기 구워 먹을 때.. 고기를 씻었던가?

그럼.. 이건 안 씻는 건가? 씻는 건가.. 손으로 하나씩 씻어야 하는 걸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도 고기를 들고 우왕좌왕이다.


일단 씻기로 결심하고 손을 댔는데 기름이 손에 그대로 들러붙는 느낌이 좋지 않다..

대충 씻어내고 이제 미역만 씻으면 되는구나.


미역 불리 기는 요리 준비하는 엄마의 등 뒤로 여러 번 본 적 있지.


분홍색 플라스틱 바가지를 꺼내서 미역을 후루룩 들이부었다.


'후후' 이제 좀 기다리면 되겠지

잠시 티브이 앞에 앉아서 불기만을 기다렸다.

불린 미역이라고만 했지 얼마나 불려야 하는 건지 모르는 나는 소파와 싱크대를 왕복하면서 

잘 불고 있는지 연신 손으로 건져 만져봤다.

'아직 딱딱하니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좀처럼 미역은 불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오시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티브이 앞에서  털썩 앉아 가요 프로그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 미역!"

후다닥 싱크대 앞으로 가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

분명 좀 전까지는 분홍색 플라스틱 바가지안에 잘 담겨있던 미역이..

바가지를 탈출했다.


살아있는 생물도 아니고 그럴 리가..

바가지를 넘어오다 못해 싱크대 한쪽 볼을 채워가고 있었다.


'뭐지? 왜 이렇지? 아.. 엄마는 미역을 씻던데..

씻어보자.'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인지했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미역은 한쪽 싱크대를 넘어서 반대쪽까지 넘실대면 손을 뻗쳐가고 있었다.

물을 붓으면 부을수록 미역은 검은손을 뻗었다.

'어떻게...... 어쩌지... 엄마..'


마음속에서 절로 엄마가 불러졌다...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는데 이제 무슨 일이냐고 혼이 날 것 같았다.


어른처럼 느꼈던 나 자신이 순식간에 일곱 살 아이처럼 느껴졌다.

"엄 마.."하고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엄마의 생신날.. 이대로 두면 안될 것 같았다.


검정 봉지를 가져와서 불어나는 미역을 쓸어 담았다. 물먹은 미역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봉지에 담는 와중에도 미역은 점점 세력을 넓혔다.

자가증식을 하는 건지...

섬뜩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미역과 싸우고 있었다.


괜히 미역국을 끓인다고 했다고 후회했다.

요리법만 읽어볼 때는 그렇게 쉬워 보였는데...

고작 3줄의 설명 말고 아무것도 없었던 주의 사항이나 손질 방법을 탓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눈물이 핑 돌만큼 난감했지만 시간은 지나고 있었기에 정신을 가다듬고 10% 정도의 양을 골라내 씻고 가위로 잘라서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시킨 대로 참기름에 고기와 같이 볶아다 센 불, 약한 불...


그런데 내가 알던 색깔이 아니라 뭔가 초록색이 돌았다.

간을 보니.. 참기름 맛과 바다 물맛이 났다.

"웩..."

가뜩이나 약한 비위가 상했다..



깊고 구수한 맛이 나야 하는데 여름방학 때 해변에서 튜브가 뒤집혀 맛보던 그 물맛이 났다.


소금을 넣고 간을 보고 또 물을 더 넣고 간을 봤다.

그렇게 서너 차례 물과 소금을 왕복했지만.. 맛은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고 그대로 뚜껑을 덮었다.




엄마는 퇴근을 하고 돌아왔다.

사고를 친 어린아이처럼 안절부절하면서 말을 꺼냈다.

"엄마....사실은...."


쭈뼛거리면서 말을 못하고 있으니 엄마는 코를 킁킁거렸다.

광대가 올라가면서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면서 싱크대 위 냄비쪽으로 다가갔다.


"세상에 이게 뭐야? 우리딸이 엄마 줄려고 끓인거야?"

뚜껑을 여는 걸 말리고 싶을만큼 처참한 맛이라서 얼른 말을 꺼냈다.


"근데. 아무리 해도 맛이 이상해...맛이 없어서 버려야할것같아.."


버리긴 왜 버리냐면서 숟가락을 꺼내 들어 맛을 보고 맛있다고 내게 말을 했다.


그리고, 사실 사고를 쳤노라 고백하며 싱크대 안 큰 검정봉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미역이 너무 불어나서 너무 무서웠다고 검정 봉지에 가둬놨다고 고해성사를 하니

엄마는 혼내기는 커녕 그 미역 한봉지를 다 넣은거냐고 엄청나게 크게 웃으면서 넘어갔다.


10배가 불어나는 마른 미역의 정체를 알리 없는 몸만 큰 열일곱살의 첫 미역국 도전기는 그렇게 처참하게 남은 46인분의 불은 미역과 함께 우리 가족 모두의 뇌리에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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