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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Mar 30. 2020

 양말 한 짝의 온기

궁둥이 붙일 곳만 있다면 어디든 몸을 맞추어 넣는다.

엄연히 자기 집이 있지만 그 날의 기분에 따라  곳곳이 임시 거처가 된다.


소파 위 무릎담요를 차지하고 있거나, 커튼 자락에 숨어서 자기도 한다.

어떤 날은 살짝 열린 옷장 속에서 자고 있어 찾아 헤매기도 했다.

매일 한 곳에서 자면 질리기라도 하나? 여기저기 배회하면서 자꾸 새로운 장소를 발굴해낸다.


한참 동안 보이지 않으며 어디 갇혀서 못 나오나 싶어 궁금해진다.

가볼만한 장소를 찾아봤는데 웬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수색을 포기하고 물이나 한잔 마시려고 정수기 앞에 섰는데, 아이들 옷을 벗어두는 빨래통 용도의 작은 세숫대야 안에 쏙 들어가 잠을 자고 있다.


제법 커진 몸집이라 작은 대야에 꽉 차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꽉 끼인 엉덩이 밑으로 양말 한 짝과 작은 손 타월 한 장이 삐죽 보인다.

'그저, 천만 보이면 들이밀고 보는구나..'


털북숭이면서 뭘 그리 포근한 곳을 좋아하는지...

작은 양말의 포근함을 엉덩이로 느끼며 고요히 자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여기저기서 부르짖는 사회적 거리두기!!


거리를 두더라도 사람들의 배움의 열망은 멈출 수 없기에 온라인 소통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나도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zoom''으로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과 가치를 나눈 적이 있었다.


방 안에서 세계 각지의 사람을 만나는  초 연결 세상이 편리하지만 불편한 것도 있다.

바로, 정보는 옮길 수 있되 마음의 온도까지 전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정보와 감정 전달하기란  반응 없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말하기처럼 어렵다.

말이 좋아 "화상회. 의!"이지 쌍방향이 아닌 일방통행의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듣더라도 눈빛, 몸짓에서 전달자의 감정이 잘 수용되었는지를 뿜어낸다.


그런 답답함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아서 강의시간이 다가오자 몸에 긴장이 돋는다.


까맣게 닫힌 창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인사를 청했다.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도 사람이 만나는 일이니 얼굴을 한번 보여주며 인사하자고 말을 꺼냈다.

가로, 세로 2*3 정도 칸에 배당된 작은 얼굴이지만 그렇게라도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창이 하나둘 켜졌다.

늦은 밤 편한 차림, 자연스러운 꾸미지 않은 모습이지만 미소만은 가장 환하게 지으면 자기를 보여준다.


놓칠세라 면면히 내 눈에 담았는데 나의 떨리는 감정이 이상하게 일순간 편해졌다.



얼굴을 본다는 것..

바로 그런 것인 것 같다.


글로는 표현하고 알아차리기에는 어려운 그 순간의 느낌을 전하는 것!


그 잠시의 눈 맞춤은 고양이가 느끼는  천조각의 온기처럼  그렇게 내게 포근한 안정감을 줬다.

이 자리가 내가 비빌 자리야 하고 느끼게 하는 양말 한 짝처럼 보이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 같았다.

그 눈빛 전달 한번이 뭐라고 랜선을 타고 현실의 내 마음에 불씨를 당겨준다.


아날로그 감성을 가지고 디지털 세대가 되어보려고 애쓰는 나는 건조한 온라인에서도 양말 한 짝만큼의 온기를 늘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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