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맵다 쓰다 Oct 03. 2022

쓰잘 때 없는 관종의 탄생

인생은. 쓰다

나들이의 계절 가을이 왔다. 근처 공원에 가을을 즐기러 갔더니 민속예술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민속으로 묶을 수 있는 모든 것, 과거 일생생활 풍속, 전승 문화를 콘셉트로 하는 축제였다.

농악놀이, 동래학춤, 망깨 소리 같은 지역에서 전승되는 문화 공연이 많았다.  전통을 지키는 단체는 그냥 봐도 세련되고 숙련된 프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니 과거의 농악놀이도 그냥 보통사람들이 즐긴 것이니 이 보다 더 어울릴 수 없는 무대이다.

일부는 공연장을 둘러싸고 나머지는 멀리 잔디밭에 여유롭게 돗자리를 펴고 앉거나, 누워서 행사를 즐겼다.


축제하면 빠질 수 없는 시민노래자랑 무대가 마련되었다. 파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1번 아주머니는 노래자랑 참여를 위해서 새 한복을 맞췄다고 했다.

짧은 간주로 시작되는 노래에 한복 치맛자락이 가볍게 흔들린다.

곡 목은 신나는 노래의 전설’ 아모르파티’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쿵쿵 쿵쿵’ 템포가 빠르게 오르더니  올 것이 온다.


"아모르파티!"

 호우~  

**‘빠빠 빰 빠빰빠 빠빠 빰 빠빰빠,


허엇~

"아모르파티! "

후훗!



격렬한 한복 댄스와 찰진 추임새에 공연장은 말 그대로 축제가 되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 자신만의 아모르파티를 즐기는 참가자의 모습에 다들 무장해제가 되었다. 웃음이 터지고 박장대소를 하다가 옆자리 아주머니들과도 눈이 마주친다.

다들 오로지 그 순간을 즐기는 표정이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배꼽이 당기도록 웃었다. 귀가 쟁쟁하도록 큰 앰프 소리 덕에 목청도 높여 제대로 깔깔 웃으면 무대를 감상했다.

사실, 참가자들이  아버지, 어머니뻘이라 노래 선곡도 내가 즐거울 무대는 아니었다. 첫 번째 참가자는 무신경하게 멀찍이 앉아 구경꾼이었던 나를 무대와 일체 시켰다.


1초의 딴 생각도 할 수 없이 몰입했던 4분이 지나갔다. 물아일체의 경지에 빠진 이유는 의심할 수 없는 진실성의 힘이다. 불안정한 음정도, 회식 뒤풀이 같은 추임새도, 세련되지 않지만 가식이 없다. 가식 없는 진실의 무대에 나이나 취향, 교양은 잊고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실컷 웃고, 참가자의 혼신에 박수를 치고 나니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듯 개운한 마음이 든다.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 유명한 가수의 무대와는 다른 감동이 마음에 파고든다.

노래가 끝나자 ‘아이고 부끄러버라’(경상도 사투리)를 외치면 얼굴을 가리면 무대를 뛰어내려 갔다. 마지막까지 웃음을 줬던 아주머니 참가자는 월등한 노래실력의 2번 참가를 제치고 1등을 했다.


저마다의 세계에 진심인 사람들은 아름답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라틴어 ‘아모르파티(Amor fati)처럼 말이다. 체면도 뭐도 잊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한 1번 참가자와 근심을 잊은 듯 환호했던 다양한 연령은 관객들까지  즐기는 그 순간이 아름다웠다.

노래 제목까지 ‘아모르파티’였다는 건 우연이였을까?


나는 금방 사랑에 빠지는 편이다.  선반 위로 가방을 올려주던 선배 팔의 힘줄에 두근대는 순간 빠지고 정성담아 적어준 손 편지에 감동하는 것처럼  자주 마음의 종의 울린다.


책을 읽을 때도 자주 전기 신호가 온다. 이유도 만 이천 가지쯤 될 것이다.(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어떤 책이 좋아지거나 작가의 팬이 되는 것도 사소한 순간에 결정된다.


글 속에서 튀어나온 작가의 찰진 욕에 웃음을 뿜다가 팬이 되기로 선언한다.

아르바이트 없이 다행히 글로 먹고살고 있는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유머에 발을 구른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일을 한다는 천문학자의 고백에 대책 없이 빠지곤 한다.


페이지마다 명언이 넘쳐나거나, 168쇄를 찍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책에서는 좋은 글, 이득 되는 이야기를 내 안에 꼭꼭 담아서 써먹으려고 애쓴다. 애쓰는 게 맞다. 잊지 않으려 애쓰고 나를 더 윤택하게 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애쓴다는 건 적극적 쪽이 나라는 의미다.

반대로 대책 없이 무너질 때는 의외의 순간, 사소하지만 그 사람이 묻어나는 순간일 때, 치명적으로 빠져든다. 나는 애쓸 준비도 없는데 성큼성큼 마음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그럴 때 대단하지는 않지만 여운도 감동도 더 느낀다.

꽉 막힌 하수구에서 머리카락을 빼내다가 집안일의 숭고함을 느꼈다는 작가의 글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동질감을 느낀다.(물론, 첫 느낌은 그냥 재밌다)


어려운 말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해하기엔 내가 부족해서 일지도 모른다.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이해되는 순간을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게 재미를 넘어 감격스럽다.


글쓰기에 빠진 이유도 비슷한 것 같다.

억지스럽지 않게 인생의 의미를 하나씩 찾아가고  내가 찾은 이해와 감응의 지점을 공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매력을 알기에 몇 번째 서랍장 칸에 양말을 보관하는지? 설거지는 밥 먹고 바로 하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써낸다.


웬만해서 빠른 게 좋은 내가 만원에 4캔 맥주를 선택하는데 십 분도 넘게 걸린다는 사적인 이야기를 천사백 자에 걸쳐 쓴다. 이런 쓰잘 때 없는 이야기에서 읽는 누군가는 자기와 닮은 지점을 발견하면 좋겠다.

무용한 이야기에서 나만이 느끼는 유용함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읽는 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다. 이왕지사 내 사소하고 내밀한 일상을 까발리는 적극적 관종의 길을 택했다면 부끄러움은 모른척해두고  제대로 흥을 발산하는 거다!


‘인생은 지금이야!’ 호우!

작가의 이전글 그래서, 삼계탕 맛있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