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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Oct 03. 2022

802번 서가로 출근합니다.

인생은. 쓰다

자발적 관종이 되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누군가 볼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이런 것일까?

‘쓰기만 해도 좋다’ 할 때는 언제고  사람들이 봐줘야 흥이 오른단다.

'글쓰기에 금사빠'라고 떠들어놓고 남들 보는데 이래도 되나 체면을 차린다.


어쩌다 보니 책을 내고, 계속 글 쓰고 싶은 마음을 키우고 있다.

마음의 크기와 함께 쓰고 싶은 글의 형태가 또렷하게 드러날수록  ‘나의 쓰기’는 기름칠이 필요한 소리를 낸다.


수 백개의 임시저장 파일을 만들며 숨 쉬듯 글을 써 내려갔는데  다양한 이유로  ‘불량’ 도장을 찍어낸다.

패인 흠이 있어서, 색이 고르지 않아서, 싸구려 같아 보여서..

내 문장이 중국제 oem 생활용품처럼  조악해 보인다.


수줍은 짝사랑 고백 편지를 덜컥 보내 놓고 되찾아오고 싶은 마음으로 예전 글을 읽게 된다.

<토지>나 <태백산맥> 정도 써온 것도 아니기에 쓸 말이 떨어졌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나뭇꾼이 나무 하기 싫어서 도끼를 던졌는지, 진짜 손에서 미끄러진 건지 진상은 나뭇꾼만 안다.

어쩌다보니 도끼를 놓쳐서 더이상 나무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기엔 연못에 던져버린 나무도끼와 함께한 지난 시간이 진심이었다. 금도끼나 은도끼처럼 팔자를 고쳐준다는 보장은 없어도 내게 처음 생긴 나무 도끼를  놔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 연장 탓 안 하는 실력 있는 목수가 되면 되지 않을까?




초등 아닌 국민학교 시절, 일일 학습지가 유행이었다. 매일 한 장 푸는 학습지 하나쯤 안 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 < 공문 수학> 홍보 테이블이 차려지던 날, 커다란 장난감 사은품을 받으면 학습지를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도 푸는 내내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소롭게 쉬운 더하기, 빼기만 왜 자꾸 하는지, 똑같은 문제를 몇 번을 푸는 건지 손도 아프고, 도대체 이걸 하면 산수 점수를 잘 받을 수 있게 되긴 하는 거야? 의심이 들었다.

쉬운 것과 잘 해내는 것은 분명 다른 영역이었다. 쉬웠지만 자주 밀렸고, 정답지를 보고 베끼기도 했다.

하루에 두서너 장 계산하는 시간이 5분, 10분이면 가능했을 텐데, 그 시간을 내기엔 노느라 너무 바빴고, 엄마는 늘 일주일에 한 번 선생님이 오시기 전날에만 달을 했다.

자꾸 밀리면 학습지를 끊어버린다는 협박을 수십 번 듣고 나서야, 학습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때 연산의 기본기를 잘 닦아놓지 않아서였을까? 중학교까지 버티던 약발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고등학교 때는 수포자가 되었다.


쉽게 해내려면 쉬운 것을 잘 해내는 노력도 필요한 것이다. 이 간결한 명제는 비단 수학뿐 아니라 인생 어떤 것에도 통한다.

최근 역사책 모임에서  ‘역사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잘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수학도, 영어도, 역사도, 글쓰기까지....

내가 어렵다고 말한 그것들은 사실, 잘 모른다는 말이었다.


'어려워서 모르는 게 아니라, 몰라서 어렵다는 것!'


몰라서 어려운 역사를 알기위해 실록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는 것처럼 글쓰기도 모르는 지점을 넘면 쉬워지고 다시 재미있어질지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은유 같은 작가님들은 모르는 바겠지만 나는 그들의 문하생을 자처했다. 노골적인 글쓰기 연구에 들어간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나마 책 읽던 공력으로 써내던 글이 바닥이 났다는 걸 인정했다. 겸손이 아니라 측정된 근육량이 말해줬다. 빈약한 근육과 허영처럼 붙은 지방이 드러났으니 밑천을 채우며 기본기부터 다져가기로 다.

우연하게 글을 쓰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타고난 글쟁이였다는 극적인 스토리가 내 것일 리가 없으니 티셔츠에 소금이 베이게 뛰어야 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802번대 <수사학> 서가로 직진한다. 출간도 하고 글쓰기 모임도 하는 작가인데 하는 마음은 집에 두고 온다. “쓰는 법”,”구성하기” “작법”같은 책을 잔뜩 쌓아두고 읽는다.

쓰기와 관련한 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매 버튼을 누른다. 이상하게 비슷한데 자꾸만 나오는 책들이 진짜 다른지는 직접 확인해본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듯, 글 쓰는 마음을 다시 잡아나간다. 그러다  숨어있는 작가의 진짜 노하우를 건져올 때면 ‘심봤다’를 외친다.

쓰고, 읽고, 찾고, 다시 쓰는 ‘애씀의 무한고리’ 덕분인지 내  문장에서 조악함이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글쓰기의 원천 기술은 역시 쓰기이다.

‘글쓰기는 오로지 글쓰기로 나아질 수 있다’는 나탈리 골드버그(스승님)의 말이 역시 맞다.

오늘도 원천 기술 향상을 위해서 쓰다 말고, 어딘가 유출되었을 글쓰기 핵심기술을 찾으러 802번 서가로 향한다.



쓰기와 웬수진 나의 대출 목록들..

웬수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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