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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Oct 07. 2022

허리가 안 아픈 의외의 방법

인생은. 쓰다

만화 속 장면에서 들릴법한 소리가 들렸다.

‘뿌드득!’

“뻑!”

의자에서 일어서려는데 잠시 우주의 공간이 보이는 듯 번쩍하면서 효과음이 들린다.

바로 내 허리에서!


그런 증상을 몇 번 경험하고 병원에 갔더니, 나이에 비해 노화된 디스크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잘 관리하면서 살아가라며 의사들은 내게 'good luck!'을 빌어줬다.


일단 삐끗하면 너무 아팠다. 일상생활 불가였다.

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뜸도 떴다. 허리가 벌집이 되는 것 같은 두려움을 참고 다녔다.

전기치료, 마사지, 적외선 치료 같은 물리치료 종합 세트를 수 십일을 했다.

물리치료사가 하는 도수치료가 좋다고 해서 사람이 직접 근막을 자극하고 이완해주는 치료도 받아봤다.


어떤 치료를 하든 즉각 좋아지는 방법은 없었다.

 일주일쯤 치료하면 또 괜찮아지던 패턴은, 치료기간은 길어지고  괜찮은 기간은 짧아지는 주기로 바뀌어 갔다.

늘 미세하게 허리 통증이 느껴지고, 삐끗 하면 재채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도 왔다.

이번에 낫고 나면 꼭 허리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해야지 하는 헛된 다짐을 다섯 번은 하고야 운동을 시작했다.


너무 숨만 쉬면서 살아와서 인지 운동을 하기 위한 체력도 없었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허리 통증에 효과가 있다는  필라테스를 하기로 했다. 늘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위한 운동쯤으로 알았는데 나에게는 재활 운동이나 다름없었다.

생각보다 내 몸은 내 말을 안 들었고, 운동을 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일대일 레슨과 그룹레슨을 수십 차례 하고야 갈비뼈를 닫는 게 어떤 느낌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역시 운동이다. 아프지않고 조금씩 괜찮은 기간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일이 있어서 운동을 쉬면 여지없이 허리가 아팠다.

허리가 아파서 동작을 못하던 어느 날,  필라테스 코치님이 물었다.

"주로 어떤 자세할 때 통증이 많으세요?"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차에서 내릴 때, 화장실에서 일어날 때, 쪼그려 앉았다 섰을 때?"


생각해보니 통증을 촉발시키는 자세는 일어날 때였다.

자연스럽게 생활한다 생각하고 일어나기를 시켜보더니 내 자세는 척추가 바로 펴지지도 않았는데 고개부터 들고 일어다고 했다. 그 자세는 허리에 더 부하를 주게 되니 의식해서 필라테스할 때 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켜보라고 했다.


운동하면서  수십 번은 했던 동작이었는데 실생활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습관으로 살고 있었다.

말이 쉽지 생활하면서 앉았다 일어나는 횟수는 셀 수 없이 많다. 급작스럽고 바쁜 일과를 보내면서 일어나는 방법까지 머릿속에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궁한 건 내 몸이었다.


엉덩이에서 발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골반부터 세운다. 등을 둥글게 말아서 상체를 들어 올리고 고개를 가장 마지막에 든다. 이런 순서로 천천히 일어나면 마치 좀비가 몸을 일으키는 것 같은 모양새이다.


이게 전부였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습관만 연습했는데 일어날 때마다 아프던 허리 통증이 점차 사라진 것이다.

완벽하게 통증이 없던 적이 몇 달 전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말이다.

그때 나는 코치님에게 명의가 따로 없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왜 병원에서는 통증 이후는 환자에게 맡겨버릴까? 그냥 다시 아프면 찾아오라고 한다.

봉침이니 체외충격파 치료이니 통증을 다스리는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치료말고, 통증을 제어하려면 무엇을 하면 되는지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병원도, 나도...


 이만큼 운동했으면 아프지 않을 때도 되었는데 "무엇이 자꾸 아프게 할까?"라는 질문으로 물리치료사 출신인  필라테스 코치님 덕에 통증을 가중시키고 악화시키는 원인을 찾아낸 것이다.


통증의학과나 한의원을 전전하면서 그때마다 생기는 통증을 다스리기에 급급했다. 나는 왜 운동을 하고 있지? 무엇이 불편하지? 같은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냥 아프니 병원 가고, 운동을 하라니 했다.

제대로 한다는 것은  ‘똑바로 서는 순서’처럼  오히려  기본을 잘 세운다는 거다.



예전에는 기막힌 플루트의 소설, 글 읽는 재미가 있는 에세이, 위트가 넘치는 글,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글귀 같은 것을 볼 때마다 나도 써볼까 생각했다.

좋아 보이는 것이라면 저렇게 쓸 수 있겠다. 써보자는 식이었다.  '좋은 글을 쓰자'가 먼저가 아니라 ' 어떤 좋은 글'을 쓰고 싶은지가 먼저인데 말이다.


글을 쓸 때도 무엇을 담고 싶은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이다.

처음에는 ‘꽃은 피었다’라고 썼다가 며칠을 고심 후에 “꽃이 피었다’로 고쳐 썼다고 한다.

조사하나 가 바뀌면서 전달되는 의미가 달라지는데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니,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지기 때문이란다.

‘은’과 ‘이’ 같은 조사로도 전해질 의미까지 염두해본다는 일화는 나는 문장 요소에 얼마나 제대로, 적확하게 쓰고 있는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김훈 작가는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의 이 문장도 덧붙였다.


<패전 소식을 듣고 이순신 장군은 썼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나. 는. 밤. 새. 혼. 자. 앉. 아. 있. 있. 다 ' 11자의 문장 하나로 이순신의 상황, 마음, 전하고 싶은 분위기까지 전달하는 문장이라고 평했다.

.

내가 쓴다면  ‘군사를 잃어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패전의 소식을 듣고 처량하게 앉아있다’ 정도로 상황을 전하기 위해 급급했을 것 같은데 듣고 보니 다르다.


문장은 어떤 의미를 담을지, 정하고 담아낼 그릇이다.

단정한 느낌을 주는 그릇 일지, 우아한 느낌이나 화려한 느낌을 주는 그릇 일지  만드는 사람이 의도가 있어야 한다. 일단 아무렇게나 그릇을 빚어놓고 이걸 담을까? 저걸 담을까? 덜었다 담았다를 하다가는 넘치거나 모자라는 그릇이 되고 만다.


일단 써보자 하면서 쓸 때는 정말 아무 말이나 써 내려갔다.

어떤 말을 전할까 하면서 쓸 때는 문장에 그 의미를 어.떻.게 담을지 고민하면서 쓴다.

전하고 싶은 바가 분명한 문장일수록 문장이 가볍다. 여러 번 덧칠한 선이 아니라서 깔끔하지만 힘이 생긴다.

생각은 깊게 하고 문장은 가볍게 쓰자!


똑바로 일어서는 방법을 의식하며 일어나듯, 무엇을 담을지 생각하면서 쓰자.


생각없이 일어나면  디스크에 부하가 생기고,

생각없이 쓰면 문장에 부조화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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