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겨울의 피아노

작가의 벽

by 맵다 쓰다
이런 해석도 있고 저런 해석도 있네. 프로페셔널 피아니스트들이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해석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과는 달리 아마추어들에게는 원하는 해석을 따라 해 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물론 그걸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는 게 맹점이지만...
< 아무튼, 피아노>


'겨울 서점'으로 유명한 북 유튜버이자 작가인 김겨울은 어릴 적부터 피아노에 타고난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철학과를 선택했고 피아노는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았다.

살면서 피아노를 다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을 '지금 와서 친다고 전공자만큼 잘 칠 수 없잖아?' 하면서 애써 마음을 외면한다.

'제대로 이론도, 화성도 모르면서 피아노를 잘 치고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고민하던 작가는 피하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자꾸만 그 곁을 서성이게 된다.


결국, 피아노를 계속 마주하고, 원하는 대로 따라 하고 혼자 해석하고 배운다. 자유롭게 변심해 가면서 연습하면서 피아노를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인정한다.


무언가를 사랑할 때 꼭 방식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일도 아닌데, 어떤 것을 좋아하는 마음에 꼭 자격이 필요할까? (요즘엔 자격의 경계가 모호한 일이 더 많다.)

피아노를 치고 싶으면 그냥 치면 된다. 아무도 '기준 이하'라거나 '능력 부족' 도장을 찍어 탈락시키지 않는다. 가장 엄격하게 가로막는 심판관은 자신일 뿐이다. 게다가 심판관은 두터운 왜곡의 안경을 쓰고 있다. 그 안경을 통하면 내 것은 작게, 타인의 것은 크게 확대되어 비춘다.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오른손으로만 연습하다가 양손으로 칠 때의 순도 높은 뿌듯함은 대단한 기술을 습득한 것 같은 기분이다. 금방 어려운 곡도 모조리 칠 수 있게 되고 원하는 곡도 즉흥으로 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더 쳐보면 깨닫게 된다. 열 손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수많은 연습의 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라딘 ost'를 연주하고 싶지만, 당장은 '반짝반짝 작은 별'을 치고 있더라도 괜찮다.

한 곡, 한 곡 연주할 수 있는 곡 목록이 늘어나는 뿌듯함, 애쓰지 않아도 양손이 자유롭게 연주되는 과정들도 분명 즐겁다.

여전히 손가락을 짚을 때 음이탈이 나서 짜증도 나고 , 마음대로 연주가 되지 않아도 그 과정의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쌓아간다. 연주에는 1등, 2등이 있어도 과정에야 순위가 없지 않은가!


어린이들은 무언가를 배울 때, 프로처럼 잘해야 해!. 내가 그걸 배울 수 있는 사람인가?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런 질문을 가지고 시작한 다면 모두가 태권도 선수, 수영선수, 발레리나가 되어야 한다. 그때의 왜곡 없는 시선은 나이가 들수록 혼탁해지는 망막과 같이 노화되나 보다.

어른들은 '이제 와서 무슨..', ' 내가 뭐라고..' 같은 마음부터 품는 걸 보면 말이다.


나에게는 글 쓰는 일이 그랬다.

국문과나 문예 창작을 전공한 사람처럼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글 쓰는 업을 가지고 잔뼈가 굵은 사람들도 글 쓰는 삶이 어렵다는데 이제 시작해서 할 수 있을까?

둘러보면 문학적으로 해박한 작가, 문장이 아름다운 작가 특출 나고 대단한 글들이 많은데 나까지 글을 생산해야 할 의미가 있나?

하다못해 교정 전문가처럼 완벽한 띄어쓰기도 사실 모르지 않나? '맞춤법 검사기'에 의존하면서 글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글쓰기에 눈을 두고 있으면서 불쑥불쑥 이런 마음이 고개를 든다. 좋아하는 건 분명하지만 잘 해내지 못할 때의 핑계를 찾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는 게 맞나? 할 때도 있고 더 잘 쓴 문장을 위해 '글쓰기 책'도 들여다본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작가의 벽(writer’s block)을 만나기도 한다



심리학자 스콧 배리 우프만은 "작가의 벽을 만난다면, 그저 종이에 어떤 아이디어나 지식 등, 무엇이건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허용하는 것, 그리고 창조성은 비선형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작가의 벽을 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한다.


창조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방식의 비선형적인 과정이다. 음악이든, 문학이든, 글이든 어차피 정해진 과정이 없다면 조금은 아마추어스럽고, 날 것의 문장으로 과정을 써나가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김겨울 작가가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분의 글이다.

화성을 분석해보는 것은 바뀌는 호흡의 순서와 시점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느낌의 정체를 알아야 느낌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 악보 위에 B♭7, E♭, F7, B♭, F-7, B♭7+5, A♭△7, G7, Cm, F7 같은 것들을 쓰다가 혼자 약간 웃는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클래식 악보를 펴놓고 화성 분석을 하면서 △ 같은 기호를 적고 있자니 좀 이상하다. 이건 내가 재즈 피아노를 배우면서 훈련받은 방법이다. 클래식에서도 +5 같은 걸 쓰나? 아니 일단 클래식에서 화성 분석을 이렇게 하긴 하나? 전혀 모르겠다. 약간 끔찍한 혼종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어쨌든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열든 병따개로 병뚜껑을 열든 병을 열면 되는 거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이 문장은 명쾌한 답을 내려준다.

병뚜껑을 따는 일에 숟가락이든, 병따개든 상관이 있을까?

클래식 곡을 재즈 피아노 방식으로 분석해서 연주해도 잘 치기 위한 노력으로 연주를 무사히 해내면 된다.


어떤 글을 쓸까? 어떤 사람이 글을 써야 하나? 부족한 글이구나. 생각이 들 때면 '김겨울의 피아노'를 떠올린다. '어떤 방식이든 글을 사랑하는 나만의 과정이다'하면서 공모전이든, 사보에 실리는 글이든, 개인 브런치에 쓰는 글이든 써본다.


어떨 때는 뚜껑에 헛발질을 하기도 하고, '뻥' 하면서 경쾌하게 소리를 낸다.

병 따개나 숟가락, 나무젓가락이든 열고자 시도하면 어쨌든 뚜껑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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