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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Apr 19. 2024

혹시 당근이세요?

비움 기록

나는 미니멀라이프 지향자이다. 정확하게는 동경이 맞겠다. 지금은 많은 물건에 둘러싸였지만 언젠가는 여백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살길 꿈꾼다. 태생이 정리가 어렵고 작고 쓸모없이 귀엽기만 한 것도 좋아한다. 취미는 또 얼마나 다양한지 시간과 돈, 에너지의 한계가 없었다면 취미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에어컨 실외실에 앵글장을 짜 넣었다. 펜트리가 없는 집에서 시즌용 물건이나 잘 쓰지 않는 짐을 수납한다. 못 박을 일이 있어서 전동드릴을 꺼내려고 실외기문을 열다가 입구에서 물건을 가만히 둘러봤다. '언제 이렇게 물건이 가득 찼지?' 하나하나 눈으로 쫓아보니 다 내가 아는 것들이다. 자가 증식이 아니라면 내가 사 모은 거란 걸 안다. 이사할 때 들어와서 박스도 열지 않는 것들도 있다.


드릴가방을 꺼내다 옆에 한 뭉텅이 물건을 충동적으로 꺼냈다.

전동 드릴, 미니 톱, 망치, 펜치, 페인팅도구, 크고 작은 경첩이 4개씩 짝을 지어 나오고 이름도 이제 생각 안않는 꺽쇠류, 연결철물, 각종 스크루 꺼내도 꺼내고 계속 나온다.


2년 전 이사오면서 대부분 정리하고 비닐포장도 안 벗긴 새 물건과 최소한의 장비만 남겨왔다. 담아온 박스의 물건은 2년간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 이 물건을 내가 다시 쓸 일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아니요"


이 집은 따로 큰 베란다가 없다. 그 말은 작업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새 집을 톱밥과 먼지로 도배할 작정이 아니라면 별도 작업실이 없다면 목공을 하지 않을 거란 결론이 난다. 공간을 빌려서라도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만들고 싶냐면 그것도 아니다.. 나무로 된 모든 것을 다 만들어버리고 싶어서 인터넷카페를 들락거리던 십수 년 전과는 달라졌다. 눈으로 보기엔 "참 쉽죠~"하는 공정도 어마어마한 시간과 물리적 에너지가 드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만들 생각이 없지만 몇 년간 이 물건을 끌어안고 있는 이유는 뭘까?

본. 전. 마인드!

이 도구들, 장비들이 다 얼만데... 최소한 이 정도는 받아야지.....

그 마음이 쓰지도 않는데 팔지도 못하게 한다. 쓰지 않는 것은 이미 내게는 효용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샀을 때 가격만 떠올리니 본전을 생각하는 데 쓰지 않으면 내게는 0원의 가치이다.


물건도 에너지를 가져간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 뒀지만 언젠가 쓰이기를 기다리며 자리를 차지하던 물건은 알게 모르게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었을 것이다.


마음먹으니 일사천리로 사진 찍고 물건을 올렸다. 이미 시간이 10년도 지나 같은 모델은 없지만 비슷한 사양의 가격대를 검색해 보고 제품보다 1/3 가격으로 올렸다. 올린 지 되지도 않아서 구매문의가 온다.

사람들이 이런 물건을 기다리고 있었나? 가격을 너무 헐값으로 올렸나? 몇 년간 마음의 짐으로 쌓아둔 것이 허무할 만큼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당근 채팅창을 한참을 들여다보고 여러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할 때마다 느끼지만 참 번거로운 일이다. 서로 조율해야하니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맞춘다. 저녁을 급하게 먹고 나서서  거래를 했다.

깜빡이를 켜고 내 앞에 정차한 차는 차 문이 아닌 창문이 내려졌다.

"아줌마 혹시, 당근인교?"

60대는 넘어보이는 아저씨는 너무 가격이라서 미더웠는지 되는지는 재차 물었다.


"네. 전혀 문제없이 잘됩니다. 제가 이제는 필요가 없어져서 파는 거예요"


그 대답을 하면서  깨달았다.

필요가 없어지다.

물건을 처분하는 기준은 적당한 가격, 득템이나 아까운 가격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가였다.


필요한지와 필요없는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해야 하는 일과 그만하게 될 일을 알아야 정할 수 있다.


그 선택이 어려워서 물건을 껴안고 사는 가보다.


전동드릴과 각종 연결철물을 1/10 가격으로 덤핑거래를 하고 나서 2만 4천 원이 생겼다. 반나절을 당근당근 소리를 들으면서 시간을 조율하고 맞춘 것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홀가분하다.

본전 생각이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그  본전마인드 때문에 이고 지고 사느라 내 마음만 괴롭혔다 싶다.


이제 다음 정리 타깃은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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