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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Feb 26. 2020

아버지! 왜 가훈을 그렇게 정하셨어요?(1)

호랑이도 이겨먹을 법한 사장님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두서너 명을 일으켜 지금 이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을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벌어진 일이었다.

만화에서처럼 저 머리 뚜껑이 곧 열릴 것 같았다.


위탁계약형태로 다른 회사에 보내져서 실무만 하는 직원들을 불러서 너희도 알아야 한다고 난생처음 보는 개념들을 주입을 시키는 중이었다.

사장 본인이야 전부서의 실적과 계획까지 머릿속에 빅데이터처럼 완벽 입력이 되어있겠지만 우리는 사실 그렇지 않았다.우리 부서 현황파악하기에도 숨이 찰 지경...


회의실에 가득 채워놓고 처음 들어보는 지원부서의 실적과 시장의 예상 동향을 말하라니 관심있는 척 응시하고 있는 것만 해도 기특할 일이었다.

진짜 듣다가 장렬히 전사하기 딱 좋은 '전사회의'였다.


"진! 짜! 이거 이해한 사람 하나도 없어!"

자수성가로 중견기업을 이룬 사장님은 20대 여자가 가득한 우리 회사에서 호랑이 체육선생님 같은 느낌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다리가 떨리는..

그림자만 봐도 무서운 존재 말이다.

그러고도 너희가 4년제 대학 나와서  일하냐! 이따위로 해서 우리 회사가 내년에 어. 떡. 게. 상장을! 하겠냐고!! 막말의 폭격을 쏟아낸다.


말 그대로 혼이 났다.우리는 성인이지만,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실컷 쏟아내고는 릴랙스의 심호흡을 깊게 내뱉는다.

애써 부드러운척 하는 어조로 말했다.

" 그래~이거 내가 조금은 알겠다~하는 사람 손 들어봐!"


우리 뇌를 꼴뚜기,오징어 취급하는 그 말에 자존심이 구겨졌다.이 자리에 앉아있는 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들까말까 망설이다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오른손을 짧게 들었다. 그런데 사장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 사오십 명중 유일하게 나만 손을 든 것이다.


그렇게 손을 들고 대답을 했고 그게 그 시작이었던 걸, 나는 알았을까?




가성비..

갓 성비

요즘 사람들은 뭐 그렇게 효율을 좋아할까?


고백하자면 나도 가성비를 꽤 좋아한다.

용량 대비 가성비도 좋고 시간 대비 가성비는 더 좋다.

쉽게 말하면 성격이 급한 사람.


느릿느릿 일하는 것을 보면 일명 '속에서 천불'이 난다.

느린 게 나쁘고 빠른 게 좋고 나눌 수는 없지만 중간에서 빠른 쪽에 서있는 내가 느린 사람을 이해하기는 좀 간극이 크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일복도 많았던 것 같다.

그때는 왜 그렇게 나에게 일이 돌아오는 걸까? 자석처럼 내가 일을 끌어당기는 건가? 했는데

지금 좀 먼발치에 서서 그때 나를 바라보니 이해가 간다.


결과적으로 빨리 해치우니 자꾸 주변 일들이 내게 넘어왔다.

좀처럼 'help me!'를 외치지 않았던 성격은  넘치게 벅찬 일은.. 일단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궁리를 했다.


운이 좋아 해결하는 경우도 있고, 끙끙거리는 게 안쓰러워 의외의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놈의 가성비는 나의 숙명의 단어와 만나서 더 큰 시너지를 냈다.



"일단, 해보겠습니다.."



그게 직장인이 품어야 할 숙명의 단어인 줄 알았다.




어릴 때 아버지가 학교에서 가훈을 써오라면 나도 잘 모르는 가훈을 매해 똑같이 써줬었는데,


"근면, 성실, 정직"

새 학기마다에 적어냈던 그 단어를 십수 년 보다보니 그 가훈을 실천하지도 않았는데

뇌에 새겨졌나 보다.


이렇게 주입식 교육이 무섭다.

우리 아버지는 왜 하필..그런 가훈을 정했을까?




아주 사소하지만  종이 한 장 스테이플러로 집어서 정리하는 일 조차,

'왜 매번 저렇게 비효율적으로 하지?'

저렇게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하면 분명 더 효율적으로 할 것 같은데..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의식의 흐름대로 하는 게 시간이 아까워보였다.


뇌 속에 근면, 성실, 정직을 탑재한 나는 효율적인 인간이 '가성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

그들의 의도적 비효율이 그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 어렸으니까..


20대의 나는 뼛속까지 월급쟁이 인간의 극강 가성비를 탑재했었다.

자극을 주면 미친 듯이 자극을 받아주었고 온몸을 활활 태워 응답했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 진짜 잘하는 줄 알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난 것처럼 하루를 보냈다.


나라는 인간의 가성비.. 최대의 수혜자는 누구였을까?


사장님?


동료직원?


그 모든 게 경험으로 쌓였기에 나?








이미지 출처 :https://ovso.tistory.com/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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