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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Feb 23. 2020

수제비가  맛있는 이유

눈을 뜨니 일요일 아침이다.


아침을 먹고 '점심은 뭐 먹지?' 하고

점심 먹고는 '저녁은?'


누구나 똑같은 걱정을 한다.



평일이라면 조금은 간단하게 때우겠지만 일요일 아침만은 상황이 다르다.

아침을 준비하면서 '아.. 점심은 뭐 먹지..'생각한다.

3끼 중 한 끼는 조금 가볍게 먹는 우리 가족의 입맛을 떠올리다가

점심 메뉴가 생각났다.


'그래! 수제비! 밀가루가 있나?.'


'마침, 밀가루가 있군!'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자마자 밀가루 반죽을 만들 준비를 한다.


가만히 있을 리 없는 아이들은 사탕 냄새 맡은 개미떼처럼 줄지어 온다.

밀가루 촉감 놀이하러 온 듯 신이 났다.


"엄마? 가루에 물은 왜 부어?"

"응. 밀가루랑 물이랑 섞어서 반죽을 만들거든~"


"너무 보드라워~"하며 신이 나서 시작하다가 가루에서 반죽이 되기 전의 상황..

손가락에 진득한 반죽이 들러붙고 스텐볼에 들러붙고 난리가 아니다.


"으.. 느낌이 이상해!"

보드라운 가루도 아니고 매끈한 반죽도 아닌 상태쯤 오자 인상을 찌푸린다.

자꾸만 손가락 사이사이에 달라붙은 반죽이 이상해서 못하겠단다.


왜 이렇게 이상하냐는 질문에


"이걸 지나야 반죽이 되는 거야. 쫄깃~쫄깃하게 씹어지게 만들려면!"

하고 웃으면서 대답을 해줬다.




'역시 정리는 나의 몫이지' 하면서 반죽을 치대고 서있는데


 내가 한 말이 턱 와서 걸린다.


'이걸 지나야 반죽이 되는 거야...'


그 말을 아이들이 알까? 싶었다.


맛있는 수제비 반죽조차 보기 싫고 참기 어려운 순간을 지나야지만 무엇인가 된다..


손가락 사이에서 밀가루를  떼어내면 또 달라붙고 반대 손으로 옮겨가고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언제까지 해야 해?' 하는 지루함이 드는 그 과정이 필요하다.


진창에 발이 빠진 듯, 무한 반복하고 있지만 그게 그다음을 위한 길이란 걸 말이다.



얼추 보기 좋게 만들어졌을 때에도 예외가 없다.

수십 번, 수백 번 몸을 내맡겨 매를 맞아야 한다.

흔히 말하는 맷집을 키워줘야 밀가루 속 단백질이 글루텐을 만든다.

그물 모양을 만들기 위해 맞으면서 단련한다.


이제는 끝인가 싶어 한숨 돌릴 때도 꼭 숙성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죽으로 그럴듯하게 뭉쳐졌지만 진짜 내 것이 되도록 자연스럽게 조화가 될 시간을 냉장고 안에서 기다린다.


비닐에 잘 싼 반죽을 냉장고안에 넣고 문을 닫으려는데 간편한 한 끼를 하겠다고 반죽을 생각 한 내가 우스웠다.

역시... 거저먹는 거 같은 한 끼란 없다.





밀가루 속에는  글리아딘(gliadin)과 글루테닌(glutenin)이란  단백질이 소량 들어있다.

비율로 따지면 약 10% 정도 된다.

가루로 있을 때는 연관 없는  두 개의 성분이 물을 조금 넣고 섞으면 만나서 뭉치게 된다.


물을 넣어서 생긴 게 아니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물을 넣어야만 글루텐이 만들어진다.




요즘엔 글루텐 프리(gluten free)를 트렌드 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밀가루 음식의 최고 매력은 쫄깃한 식감이 아닐까?

밀가루에게 강점을 만들어주는 건 그 10%의 성분이다.


내 안에도 밀가루 속 단백질처럼 소량의 어떤 것들이 개별적으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너무 작아서 있는지도 몰랐던 그런 것들...


스스로 물을 붓지 않았으면 시작도 되지 않다.

손에 들러붙고 난감한 진전 없는 시간을 버티지 않으면 안 된다.

몇 번 얻어맞았다고 여기서 그만 할래! 할 수 없다.


그렇게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


물을 찔끔 붓고, 멈추고를 반복하고 도무지 반죽은 언제 되나 제자리걸음 같이 느껴지는 답답함도 그저 꼭 필요한 과정 중에 있는 거라고 내게 힘을 주는 것 같다.


그렇게 수십 번 치대고 잘 숙성시킨 반죽으로 만든 수제비가 맛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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