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생긴 큰 일

by 맵다 쓰다

40대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용종, 갑자기 생긴 원형탈모, 파란색 일색인 주식창, 팔고 나니 오른 아파트

30대 회사에서 받은 부당한 요구, 직장 상사의 괴롭힘, 결혼할 수 있을까?

20대 펑크 난 학점, 연인과의 결별, 면접 탈락 문자

10대 절친의 배신, 따돌림, 성적, 부모님과 갈등


살아가면서 겪거나 지켜봤던 큰 일을 떠올려보면 연령에 따라 위기의 모습이 달라졌다. 천재지변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진짜 큰 일에 비할 수야 없지만 그 시간 속에 있을 때는 나에게 닥친 큰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길까?' 이런 말이 나온다.


큰 일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상은 작은 일도 얼마나 다양하게 벌어지는지 심심할 사이가 없다.

지난주에도 원데이 소프트렌즈를 개봉하다가 왼쪽을 찢어먹었다. 껴보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나의 렌즈 한 알이여! 딴생각을 하면서 설거지를 서두르다가 눈사람이 그려져 꼭 마음에 들던 강화유리컵을 깨 먹기도 했다. 이 차를 놓치면 지각인데 교통카드를 두고 온 건 지하철 입구에서 알아챘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날이면

'아 왜 되는 일이 없지?' 인생이 우울하게 느껴진다.


열 살 아이에게 큰 일은 무엇일까?




눈병 25년 7월 31일


나는 어제부터 왼쪽 눈이 빨갛다. 다음 날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눈병이라고 하셨다. 살짝 눈병이 유행한다고 하셨다. 쿠궁! 내 간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행복한 방학에는 아프기 싫다. 저번에는 열이 나고 이제는 눈병까지! 최악의 조합이다. 그래서 happy 한 방학은 두 걸음 물러섰다.(두 걸음 멀어졌다는 걸 표현) 그래서 오늘 밖에도 못 나가고 눈에 약이나 넣고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의사 선생님이 손을 자주 씻고2주 정도 있으면 괜찮아질 거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오라고 하셨다. 일주일에 0번 갔으면 좋겠다. 계산해 보면 하루에 7번이나 눈에 약을 넣어야 한다. 그래서 넣기 싫어서 까불다가 엄마 기분 나쁘게 해서 약을 넣는 신세가 됐다. 일주일 만에 눈병이 나았으면 좋겠다.


< 아이의 일기장에서 비문도 그대로 살려서 옮겨 담습니다>



겨울 방학이 끝나자마자 여름 방학을 기다리고 여름 방학이 끝나자마자 겨울 방학을 기다리는 게 아이들이다. 하루하루 아까운 방학인데 열이 나고 장염이 걸리고 눈병이 걸리니 아픈 것보다 놀지 못한다는 사실에 힘겨워한다. 바다와 수영장이 나를 부르는 여름 방학인데 눈에 약이나 넣는 신세가 되었다고 말한다. 열 살 인생에 오는 큰 일, 행복이 두 걸음 물러서는 일은 놀지 못하는 것이었다.


눈병은 의사 선생님의 예언대로 이 주일이 꼬박 흘러야 낫고 안약은 일주일을 더 넣어야 했다. 왜 하필 나에게! 주말에만! 이런 일이 생기냐고 비운의 주인공처럼 울부짖던 아이는 충혈된 왼쪽 눈이 점점 맑아지면서 다시 비 온 뒤 날씨처럼 밝아졌다. 큰 일에도 작은 일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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