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2024년 4월 21일
아.... 내가 일기장을 잃어버렸다. 이 사건은 화요일과 수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아무튼 시작하겠다. 내가 일요일에 분명 일기를 썼는데 잃어버렸다. 월요일에 내가 일기장을 가방에 넣었는데 학교에 가서 봤는데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서랍을 뒤졌다. 그런데도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어쩔 수 없어"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음날 새 일기장을 샀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 일기장을 내려고 할 때 선생님이 일기장을 나누어 주셨다. 나는 집에 와서 어이가 없었다. 일기장을 사러 가는 길에도 언니는 언니의 친구랑만 착 붙어서 둘이 막 수다를 떨면서 가고 엄마가 화도 내고 엄청나게 속상했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이없어 잉? 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억울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일기를 쓰면 바로바로 탁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너무너무 속상한 일들이 많다. 난 방금도 울었고 금요일에도 울었고 목요일도 수요일도 화요일도 월요일도 울었다. 나는 요즘 하루하루 챙겨 먹는 것처럼 하루하루 운다. 그 말은 그만큼 울만한 일이 많다는 얘기다. 게다가 내편은 아무도 없다. 왜냐면 엄마는 매일 화내고 언니는 한 일주일에 5번 짜증 내고 화내는 건 기본이다. 멜로 우리 집 고양이는 나만 싫어하고 아빠도 화내면 무섭다. 엄마와 아빠가 화낼 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힝. 엄마도 엄마입으로 엄마 화나면 무서운 거 알지? 이렇게 말했으면서.....
(아이 일기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비문도 그대로 표현합니다.)
이 일기는 2학년 1학기때 10칸 노트 5페이지에 달하게 쓴 일기이다. 미처 맞춤법 확인을 못해주고 아이는 학교에 제출을 하게 되었다. 가끔 일기에 속상한 일을 쓰곤 했는데 아이는 슬픔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 이었다.
예를 들면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데 울고 있다."라던가, " 이게 다 꿈이었으면 한다." 같은 식이다. 새 학기에 친구들과 빨리 친해지지 않아서 어려웠던 4월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다.
혹시 아이의 일기장을 보셨냐는 이야기였다. 요즘 가정에서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물어보시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처한 가정환경을 조사하는 느낌이었다. 아홉 살 아이가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일주일 동안 매일 울고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고양이마저 자기편이 없다고 썼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마치 변명처럼 엄마인 저한테 혼이 나고 들어가서 쓴 일기라서 감정표현이 너무나 생생하게 써졌다는 설명을 하고 우리 집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나는 너무나 정상적인 엄마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 날 이후 일기장 맞춤법 검사가 생겨났다. 그리고 내용 검열도 함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언론의 자유가 있지만 엄마가 아동학대범이 될 수는 없다. 학대가정이 의심되면 신고해야 하는 신고 의무자인 담임선생님께 그런 혼란을 드릴 수는 없다. 언론의 자유마저 탄압하는 엄마라니! 역시 글로만 보면 무시무시한 엄마 같다. 아이의 일기 속에 엄마는 거의 신데렐라 계모, 콩지의 새엄마 급이다. 브런치 글을 함께 준비하면서 이 글을 넣겠다고 하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니 아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신데렐라가 어떻겠냐며 제안을 한다.
일기를 통해서 아이 마음속의 슬픔도 다시 보게 되었지만 매일 화내는 엄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유야 문제집 풀어라. 빨리 씻어라. 언니랑 싸우지 마라. 였지만 어쨌든 아이에게 맨날 화내는 엄마가 되었다는 거다. 웬만해서 화내지 않는 아빠가 어쩌다 한마디 하는 것도 아이한테는 믿을 구석이 없어지는 일이다. (고양이는 원래 가장 작은 막내를 만만하게 생각한다)
엄마한테 혼날 때의 마음이 세상에 내 편이 없는 것 같은 마음, 너무 속상해서 일기를 5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마음이 된다는 것을 새삼 떠올린다. 잘못하면 혼내는 게 당연하게 되어버린 어른 엄마는 더 이상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이에게 있는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크기게 작을 수도 모양이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아이만읜 온전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슬픔에도 이유가 있다. 아이가 작다고 마음까지 미숙한 것은 아니다. 어른은 작은 신호도 귀 기울여주고 존중해야 할 사람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