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는 같은 학교, 학년이라도 담임 선생님이 어떤 성향인가에 따라 생활은 물론, 수업도 다양하다. 어떤 반 선생님은 구구단을 자동적으로 술술 못 외우면 외울 때까지 재시험을 쳐서 친구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다고 했다. 큰 아이가 4학년 때 수학시간이 너무 재밌다고 해서 왜인지 들어보니 수학 개념을 영화장면으로 편집하고 자막과 효과를 넣어서 알려주는 방식 때문이라고 했다. 보물을 찾듯이 중간중간 힌트글자를 발견하면 정답이 완성되도록 해놓아서 중간에 한 눈 팔 수 없게 짜둔 선생님의 빅피쳐와 열정에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동일한 학습 목표를 어떻게 전달할 지야 원래 선생님 몫이지만 천편일률적이던 과거와 달리 개성적이고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초등학생이라면 당연하게 써야 하는 숙제, 일기장 검사의 모습도 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세 번 횟수도 다르다. 큰 아이가 2학년 때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방학 때 숙제목록에 있었지만 제출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이야기했다. 이런 반은 일기를 쓰지 않고도 일 년이 지나간다. 일기장 검사 역시 '참 잘했어요'도장을 찍기도 하고 구체적인 글쓰기 피드백을 남겨주시기도 한다. 공개하기 싫은 일기는 반 접어서 제출하면 내용을 보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는 분도 있다.
둘째 아이의 일기가 부쩍 재미있어진 것은 2학년 무렵이다. 그전에도 방학 때 1주일에 한 편씩 쓰는 숙제를 하거나 혼자 속마음을 적는 비밀일기를 가끔 쓰기도 했지만 매주 일기를 숙제로 써야 하니 진짜 일기다운 글과 생각이 나왔다. 게다가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일기 검사 후 내용에 대한 한 줄 코멘트를 남겨주셨다. '대단해!', '잘했어' 같은 판에 박힌 칭찬이 아니라 일기 내용에 공감을 던지고 호기심을 갖고 묻는 한 줄이었다. 가끔은 '참 잘했어요"도장이 찍힌 날도 있었다. 틀린 글자도 고쳐주시고 손글씨로 저마다 다른 내용을 적어주시던 정성 담긴 일기장 검사였다. 아이 일기내용에 무엇을 담았는지도 유심히 살펴주신다고 느껴지는 사건도 있었다. (다른 에피소드에 등장) 어느 날 아이는 일기장에 '선생님'이란 제목의 글을 남겼다. 알림장을 적고 담임 선생님께 제대로 잘 적었는지 확인 도장을 찍을 때 알림장에 그려진 아이의 그림을 보고 웃어주던 선생님얼굴이 좋았나 보다.
선생님 24년 9월 25일
난 일기를 쓰고 선생님이 답장해 주시는 게 많이 너무 좋다. 답장이 있으면 너무 좋고 없으면 실망스럽다. 엄마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답장을 기다렸다고 했다. " 선생님이 하나하나 해주는 건 힘들고 고마운 일이라고" 엄마가 그랬다. 그리고 난 선생님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웃겨서가 아니라. 그냥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내가 알림장에 알맞은 그림을 그리면 선생님이 웃어주고 나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난 사람들을 웃기는 게 정말 좋다. 개그우먼이 딱이겠지만 개그우먼이 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기분은 언제나 좋다. 어른도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아이 성향이 선생님께 스스럼없이 개인의 일상을 읊어댈 번죽 좋은 타입이 아니다. 내향적 기질을 가진 아이에게 일기장은 그런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선생님과 통하는 핫라인, 비밀편지, 창구, 싸인이었다. 아이 일기에 쓰인 '답장'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그대로 나타낸다. 검사가 아닌 답장!
어린이가 누구를 좋아하는데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나에게 다정하면 착한 사람, 사무적이면 무서운 사람, 부당한 대우를 하면 나쁜 사람이다. 친절한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은 두말할 필요 없이 좋다. 그게 내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라면 더 신이 나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것이다. 말로든 글이든.
웃기지 않지만 웃음이 나는 사람. 그래서 웃음으로 답장하고 싶은 아이. 마음이 오고 가는 일기와 일기장 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