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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장녀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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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다 쓰다
Mar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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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죠?''
평생을 들어온 말이다.
''아니요. 막내인데요?''웃으면서 말하면 모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어릴 땐 몰랐는데 언젠가부터 이 말이 싫어졌다.
그 말의 느낌을 싫어했단 게 더 맞겠다.
왠지 동생들을 두루 잘 살필 것 같은 느낌,
살림밑천 같은 생활력,
귀여움보다는 진중함,
뭐 그런 것들...
칭찬으로 들리지만 그 말의 미묘한 느낌을 깨닫게 되었다.
몇 살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쯤부터 나는 막내 같다는 말을 듣는 게 부럽기 시작했다.
막내란 말을 가져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일단 나부터 보는 내 중심의 시선..
이것저것 재지 않고 떼쓰는 천진함..
한마디로 표현하면 대책 없는 귀여움 같은 거?
''우리 @@는 이해심이 많으니까 네가 이해해라..''
자라면서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
착한 딸이 내 인생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살았다.
이건 우리 집에서 하고 싶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늘 생각했다
''이게 배우고 싶다!''보다
''이건 돈이 많이 드나?''를 먼저 떠올렸다.
그렇게 미술 입시 같은 건 입 밖으로 내보지도 않고 자체 검열해서 잘라졌다.
뭐... 못하는 게 사무치게 속상하지도 않았다.
진짜
뛰어나면 배우지 않아도 잘해야 재능이 있다는 거니까.. 그것 내 것이 아닌가 봐.. 하고 자기 위안을 잘했었다.
잘할지 말지 하는 걸 배우는 것보다
못해준다고 말하는 엄마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 게 나에겐 더 중요했으니까.,
대학 입시에서도 여러 번의 원서접수 대신 한 번에 갈만한 대학을 택했다.
특출 난 점수도 아니었고 꼭 되고 싶은 것도 없었기에..
그렇게 담임 선생님의 실적을 채워주는 듯한 특차 지원 권유에 첫 원서를 넣고 합격했다.
그 과가 끌리지 않았지만 포기하면 그 해의 입시도 같이 포기.. 자동 재수였다.
나는 인생의 첫 관문, 대학 전공을 그렇게 선택해서 갔다.
말을 했다면 재수도 휴학도 못할 것도 어떻게든지 할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항상 나는 먼저 판단해버렸다.'아마 안될 거야...'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에 흥미를 잃고 학점은 바닥을 기었고 난 공부 대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채우는 것에 더 열의를 쏟았다.
왜? 나는 나보다 남이 우선이 삶을 살았나 고민을 해보니 실마리는 거기서 풀렸다.
학습된 성장배경..
결정장애에 하고 싶은 게 없는 삶의 후회가 많은 이유였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외부 때문인 것 같지만
핵심은
신경 쓰는 나
.
나에겐 수십 개의 페르소나가 있나 보다.
배려를 넘어서 상대의 마음에 감정이입을 해서 그 사람이 되어버린다.
저 사람 마음이 다치면 안 되니까.. 하면서 판단하고 선을 긋는다.
그리고 정작 나는 껍데기로 버려뒀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네가 양보해..', '너는 착한 아이..'같은 말이 나를 키워냈다.
엄마가 된 지금, 나는 나를 찾아 헤매는 중이다.
다 늙어 뭘 그리 자아를 찾는 건지 우스웠는데
말이 키워낸 나 말고 진짜 나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말에 갇히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고..
아무도 가둔 적 없는데 혼자 갇혀서는 답답하다고 소리치고 있던 꼴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의도하지 않아도 자꾸 말로 키우고 있는 내 모습이 느껴진다.
'언니는 언니답게..'란 말은 하지 않지만 대책 없는 싸움에서 누가 양보할지를 물으면 대개는 두 살 더 먹은 큰 아이가 '알았어.. 이거 너 해!' 해버린다.
작은 아이는 바닥에 발로 물장구를 쳐대며 떼를 써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가도 순식간에 살살 녹여버리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안다.
말로 가둬온 자아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임을 알기에 늘 조심하게 된다.
사람의 성격은 호수가 아니라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감상하기는 좋아도 잔잔하게 가두면 속은 이끼로 가득 차고 썩어버린다.
굽이굽이 힘들게 흘러가도 유량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강물처럼 흘러가고 싶다.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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