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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Apr 16. 2020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 같은 그 이름!

원래 첫정은 잊지 못한다고 했던가?


처음 내게 '작가'란 말을 붙여준 곳이 바로 이곳이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


누구누구님이란 흔한 이름도 없이 자동반사처럼 첨부해서 온 건조하기 짝이 없는 메일이었지만

그 안이 합격이란 소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귀한 존재였다.


주변에 메모가 가득 붙어있는 책상 모니터에 코를 대고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란 게 과장 없는 진심이다. 

태어나서 전자메일을 받고 그렇게 기뻤던 적이 또 있었을까? 

사무실이라 소리 없는  환호를 내 가슴속으로만 질러대고 한참을 서서 실실거렸다.



정확히 기억하면 일천구백구십팔 년도,

우리나라 미용업계에 큰 획을 그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3천만 곱슬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 있었다.(어떤 결과에 따르면 곱슬 과 반곱슬 머리 인구가 6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이름도 미라클 한,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숱 많고 반곱슬에 굵기까지 한 내 머리카락은 늘 묶지 않으면 부스스했다.

그래서 늘 찰랑이는 머릿결을 동경했다.

외모에 관심 많은 십 대의 나이라 엄마를 졸라서 미용실에서 머리를 찰랑이게 해 준다는 스트레이트 파마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핑크빛 플라스틱 판에 한 겹 한 겹 내 머리를 붙여 약을 바르고 종이를 덧붙이는 지루한 과정..

목이 아프게 그 판들을 받치고 앉아서 서너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색한 미용실에서의 시간도 나의 로망을 위해서라면 참아줄 수 있었다.

'약 한통이 모자라 돈을 더 받아야 한다', ' 숱이 많아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런 약속한 듯 똑같은  미용사의 타박을 뒤통수로 견디고 학생이라 그냥 해준다는 생색을  어색한 웃음으로 대응해줘야 만날 수 있는 그 머릿결!


파리도 미끄러질 내 머릿결이 신기해 집에 돌아와 연신 거울만 쳐다보며 천년만년 내 모습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곱슬의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흘쯤부터 본성을 드러내고 일주일 천하평정의 기간을 마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었다.



그런 나에게 매직 스트레이트 펌이란, 가져보지 못한 이미지를 가지게 해주고 들어보지 못한 말을 듣게 해 줬다.

미용기술의 발달은 본성을 뛰어넘을 만큼 내 머릿결을 평정해서 반곱슬인이라는 사실을 깜쪽같이 숨기고 생머리를 흩날리는 20대를 보낼 수 있게 해 줬다.


허리춤까지 길렀었던 내 머리를 뒤에 서있던 사람이 슬쩍 만지며

"머릿결 정말 좋으시네요.." 했던 순간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떠오른다.


그 생경한 느낌은 내 몸에 붙어있는 타인의 것을 그 사람과 내가 동시에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작가라는 이름이 들을 때마다, 볼 때마다 그랬다.

그렇게 좋았음은 잠시, 글 쓰기 좋으라고 하얗게 만든 창은 껌뻑이는 커서만 소리 없이 울어댔고,

날고 기는 출간 작가의 글은 나는 주눅 들게 했다.

위축에 글쓰기를 멈추었던 적이 잠시 있다. 


하지만 어찌 얻은 타이틀인데, '그래 너흰 멋진 글 써라! 나는 백일장에 써내는 거다..' 체면을 걸면서 체급 차이를 인정했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글을 썼다. 글에 높고 낮음이 어딨고, 좋고 나쁨이 어딨겠느냐 하면서..


그랬던 시간을 뒤로하고 지금은 브런치에서 글 좀 쓰는 작가로 스스로를 어디가면  소개하고 있다.

뻔뻔해 진건지 브런치에서 불러주는 작가라는 말이 내 마음에 미라클 하게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원래 글쟁이였던 것 마냥,  글이 막 쓰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고

들어보지 못했던  글이 좋다는 이야기도 듣게 한다.


마치, 스트레이트 파마 앞에 '매직'이란 단어만 붙였는데 나라는 사람의 속성이 바뀌어 보였듯이

내 이름 뒤에 '작가'란 말만 붙였는데 그런 정체성을 흉내 내고 있다.


작가의 궤적을 어설프게 따라가면서 혼자 만족하지만 그 끝은 어딜지 모른다며 

내게는 특별한 매직! 브런치 작가 라는 이름으로 또 글이 쓰고 싶어진다.



Photo by a befend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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