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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Mar 10. 2020

동향 집에 삽니다.

"여보, 나는 이사 가면 절대 1층은 안 갈 거야!"


신혼집에서의 대화이다.

1년 365일 내내 24시간 불을 켜놓고 살아야 하는 40년 된 복도식 아파트 1층.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파트의 나이만큼 화단에 심어진 정원수는 밀림급으로 자라나 있었다.

 

숲에라도 온 듯  빽빽한 잎을 자랑하는 나무들을 뚫고 우리 집에게 배치될 햇빛은 한 줌도 없었던 집..


정남향이고 앞에 해를 가리는 아파트가 없었지만  나무의 높이도 잘 살펴야 함은 몰랐다.

어머니도,

어른들 말이면 그저 따랐던 나도...




2년을 그 집에서 보내 뒤, 나는 친정과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해야 했다.


세탁실 문  폭이 40년 전 기준으로 지어진 탓에  세탁기를 분해해 넣거나 못 넣는 오래된 첫 번째 집에 살다가 요즘 스타일로 설계된 신축빌라를 보니 어찌나 다 마음에 들던지..


내가 가동할 수 있는 돈이란 범위 내에 고를 수 있는 최고의 집이란 생각으로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동향집은 난방비가 많이 드는데?"

집을 정했다고 통화했을 때, 어머니의 반응이었다.


"남향도 안 들었는데요. 뭘..."


내 대답 소리가 작았지만 느낌상 설득해봐야 소용없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돈에 이 정도면 감안해야 한다는 내 말에     부모님들은 마음이  아려 더 말하지 못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뭐라 해도 좋았다. 적어도 아침에는 해가 들어올 거니까!






'5분만...'의 자비를 모르는 아침 태양이 유리창을 통해 내 얼굴을 때린다.

 맞다... 여기는 동향집이었지....


일요일 오전 티브이 시청은 햇빛이 정확히 내리 꽂히는 각도라서 커튼을 쳐야 하고 낮 동안 돌린 빨래는 서쪽으로 창이 난  방에 말려야 하는..


칸트의  인간미 없는 시간관념을 닮은  단 십 분의 덤도 없이 12시쯤이 되면 정확히  사라진다.


대낮이지만  그렇게 또 LED 등에 불을 밝혀야 한다.


여전히 축복받은 방위를 가진 집에서 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럭저럭 적응했다.

이쯤이 어디야.. 했다가..

눅눅한 빨래에 짜증이 치밀었다가..

뭐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어쩌다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고양이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일광욕 시간..

햇빛 쬐는 SNS 고양이 사진을 볼 때마다  유행하는 비싼 청바지를 못 사주는 부모의 마음이 든다.


동향집의  아침은 나름 충만하다.

창 가득 들어오는 햇빛에 이불 먼지를 떨어낸다.


환기한다고 열어둔 창문틀에 앉아 그렇게 온몸으로 햇빛을 받고 있는 뒷모습이 귀엽다.


'너도  이 집에서  햇빛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했구나...'



사람도 고양이도 동향집에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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