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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Mar 08. 2020

A컷? B컷?

이건 A컷!!

선택받지 못한 수십, 수백 장의 사진 중 한 장.


A컷. B컷


그들만의 용어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지만 내가 알고 있을 정도면 보통 사람이 다 아는 말이 아닐까 싶다.



미세한 노이즈가 있거나, 의도한 느낌이 아쉽게 담아진 사진들이 가차 없이 걸러진다.

최고의 한 장을 위해 아주 작은 티끌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살핀다.

사실 측정 가능한 노이즈나 감도, 노출의 아쉬움은 오히려 골라내기 쉽지만 전문가가 찍은 사진에 그런 컷은 실수로 눌러진 몇 장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실체는 없지만 모두 알고 있는 그 말.

 "감"으로  "느낌"을 살리는 사진을 찾아야 하는 게 진짜 일이다.


그런 감이 좋은 디렉터가 사진도 잘 골라낸다는 말을 듣는다.

느낌을 가득 담은 순간을 잘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니까.


그런데. 그 감과 느낌?

좋고 나쁨의 기준은  누가 내리는 걸까?

포토그래퍼? 디렉터? 모델?




사진 잘 찍는 팁을 공개한 어느 인플루언서의 글을 보니 최고의 한 장을 위해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초고속 연사를 누르면서 다양하게 움직이면 된다고 적혀있었다.


가장 예쁘게, 날씬하게, 분위기 있게, 역동적으로....



사진인 듯 동영상인 듯 눌러대는 초고속 연사와 다양한 움직임이 답이라는 비결을 보고

'아... 거저 되는 건 없구나..'싶다가 도 '애쓴다'싶다.


하지만 그런 베스트 컷을 보고 사람들은 환호하긴 한다.



베스트 컷 한 장의 의미는 최고의 모습인 걸까?

그 사진으로 내 추억 속에 최고만 남기고 싶은 걸까? 사람들 기억 속에서 최상이 되고 싶은 걸까?

가끔, 아니 자주, 사진 속 나를  '나'라는 모델이 아니라 철저하게 대중 취향의 디렉터 시선으로 보곤 한다.


그때의 기분, 느낌보다 남들이 봐서 멋있게, 부럽게, 예쁘게.. 뭐 그렇게 말이다.

팔리는 사진이 되어야 하는 하등의 이유도 없는 일개 평범한 사람인데도 그렇다.


화면 밖은 쓰레기.. 이더라도 화면 속에 나는 언제나 최상의 나를 보여줘야 하는 그런 자기 검열의 시대..

그런 보편화된  자기 검열은 흑역사 따위는 인생에 없었으면..  최고, 최상의 상태만 남겨졌으면 하면서 기울어진 잣대로 자꾸 나를 본다.

그런 게 커지면 자기부정으로 쌓이기도 한다.


best? worst? 눈을 한쪽 감았던지 간에  그때의 사진 속에도 분명 내가 있었다.

만들어진 나는 찰나이고 그보다 더 많은 앞과 뒤의 시간들이 존재하는데도 의식도 하지 않는다.




살아온 인생의 반 정도를 사진을 인화해서 뽑았던 시절을 보냈었다.

기억해보면 디지털이란 매체로 사진을 기록하는 20년이 되지 않았다.


일명 '디카'가  처음 나왔을 때 그 당혹감을 잊을 수가 없다. 찍고 바로 확인을 한다니!  고민 없이 눈감아서 삭제, 흔들려서 삭제,

뚱뚱하게 나와서(실제로는 원래 모습) 삭제!

그 삭제의 시작이

기록과 추억이라는 사진의 의미에서  '찍기' 자체를 즐기는 행위로 변질될 줄...

그때는 알았을까?


필름 카메라, 현상, 인화..


코닥, 후지, 노랗고 초록색이 도배돼있는 벽면.

초고속 인화란 말이 최신 사진관의 척도이던 그때는 베스트 샷이란 게 사실 없었다.


36장의 기회를 잘 나누어야 하니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어떻게 찍을지 찍으면서도 고심을 했던 기억이 있다.

찍히는지 안 찍히는지도 알 수 없어 지금 생각해보면 답답하게 그지없지만 그땐 그게 당연했다.

셔터가 눌러지는 순간을 위해 모두가 기다려야 했기에 '하나 셋'을 외치고 '치-즈'하고 입꼬리를 멈췄다.



자연스럽게 수십 장 연사를 누르고 최고의 1장을 위해 서른 장쯤 주저 없이 지워버리고 

눌러지는 셔터가 사람의 A컷이 얻어걸리길 기다리는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떤 표정으로 사진 속에 서있는지...



수학여행에서 목에 걸고 다녔던 카메라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막상 인화를 해보니 빛이 들어가서 잘 못 나오거나, 올블랙으로 처리되거나..

찍어주었던 친구들 사진을 제외하니 눈을 게슴츠레 뜨고 몇 시간 차에서 시달린 얼굴이 남은 사진만 받게 된 경험이 있다.


이처럼 선물일지, 당혹감인지 모른 채 받게 되는 그때의 사진..


 


우리는 누구의 시선으로 내 삶의 A컷, B컷을 셀렉하는가?

인생에서 과연 B컷의 순간이란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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