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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Mar 04. 2020

1집가수와 목련의 공통점

"이쪽?저쪽?"


어떤 일말의 고민도 없다.

그저 기계처럼 계단을 내려와서 좌측으로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간다.


좌우를 살피고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음 모퉁이까지 어떤 음미나 망설임도 없이 길을 간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알아서 가는 길이라 아무 감흥도 없는 배경인데 나뭇가지  하나가 내 눈길을 잡아끈다.

송송난 솜털에 이른 아침의 이슬이 맺힌 그 모습으로...



목련이다!


며칠 전부터  그 상태이었는지 모르지만 오늘 문득, 올려다보니 어느새 봉오리가 생겼다.

목련이 피기 직전의모습, 꽃잎이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새파랗고 단단한 봉오리..


'아.. 참 여기 목련나무가 있었지..'


 기억 한 구석에서  작년 봄에도, 재작년 봄에도 이 길 언저리에서 늘 목련꽃을 봤던 게 떠오른다.

매 해  그 길가 담장에 핀 목련을 보면서

'봄이긴 봄이네..'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항상 다른 꽃보다 목련으로 봄이 온다는 걸 을 느꼈다.

아직은 쌀쌀한 냉기가 있는데 눈치 없이 먼저 피는 홍매화꽃보다

도심이라 잘 볼 수 없는 개나리. 진달래보다 

목련이 '나 여기 있소!' 하고 도저히 안 볼 수 없이 크고 흰 꽃을 화려하게 꽃 피우면서 활짝  존재감을 드러내면 그렇게 봄이 왔음을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저 투박하고 굵은 나뭇가지에서 쨍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우아하고 기품 있는 꽃이 피는 게 참 신기했다.

단 하루 사이에도 만개해서 숨 막히듯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있는 힘껏 일시에 활짝 피었다가 그 영광의 시절에 취할 틈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져버린다.


자고일어나보니  스타가 되었다는 어떤 연예인을 말처럼 목련도 그렇게 하룻밤 새 갑자기 핀다.


반짝하고 떴다가 사라지는 '1집 가수'처럼..

또 그렇게 진다.


목련만큼  보기 싫게 지는 꽃이 또 있을까?

영광과 쇠락이 너무 극명하다.

차라리 1집가수처럼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면 좋으련만, 목련은 뒷끝이 안좋기로(?) 유명하다.




언젠가부터 목련이 지는 게 마음이 쓰였다.

이상한 말이겠지만 그랬다.


한송이로 시선을 잡아끈다.

꽃잎이 큰만큼 무겁다.

무거운 만큼 떨어지기 시작하면  또 무섭게 줄줄이 낙하한다.


목련의 지는 모습은 노골적이다.

크고 탐스러운 화형만큼 큰 잎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나는 시들어간다'를  온 몸으로 표현했다.


한 잎, 두 잎 떨어져 바닥에 쌓이고 얇은 꽃잎과 달리  빨리 마르지 않아서 더 빨리 상한다.

진줏빛 잎은 금세 황톳빛으로, 황톳빛은  갈색으로 바뀌어갔고 내가 언제 꽃잎이였나 싶게 만화 속 바나나껍질처럼 바닥에 지뢰밭을 만든다.






어릴 때는 목련꽃이 좋았다.

나무에서  자라는 꽃들 중 제일 예쁘고 하얀 꽃이라 좋았다.


20대가 되니 또각 거리면 하이힐로  멋 내고 바삐 지나갈 때는 '미끄러우니 조심해야지!' 하면서

 그저  밟으면 잘 미끄러지는 나와는 상관없는 꽃잎 정도로 느껴졌다.


최근 몇 년은 찰나로 피었다 지는 목련이 애달팠다.

그 찰나가 너무 짧아서였을까? 

지고 난 후의 모습이 안타까워서였을까?


언젠가 별 거 있는 삶 일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벌써 절정이 끝나버린 것 같은  당시의 내 마음을 닮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마흔이 된 올해는 초록 봉오리가 눈에 들어온다.


보통은 꽃이 피고 나서야 피었구나! 했는데 피기 전부터 알아챈 건 올해가 처음이다.


안에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듯, 새파랗고 털이 송송 난 목련의 초록 봉오리..

낯설지만 눈이 간다.

언제 꽃잎이 나올까? 조금씩 잎을 틔우는 과정을 며칠 째 유심히 관찰한다.


나도 모르게 그 단단한 초록잎을 뚫고나올 순간을 응원한다.

또 나왔다.나의 감정이입...

요즘 청춘의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살고 있어서였을까?

이상하게 그 파란 봉오리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우리 기억속에 사라진 1집가수도 자기의 삶에서는 아마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꽃이 떨어졌다고 목련나무가 은행나무가 되는 것도 아닌데 꽃이 피고 지는 거에 그리 대단한 의미를 뒀나 싶다.



예전에는 꽃처럼 한 번 피고 져버리면 인생의 큰 낙도 즐거움도 없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하이힐을 신고 검정봉지를 들면 어울리지않는다고 생각하고

숨막히게 달라붙는 스키니바지를 안입고 바짓단이 너풀거리는 유행지난 바지를 입으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내 모습은 손에 검정 봉지를 주렁주렁 들어도 부끄럽지 않은 별거 없는 아줌마가 되었지만 지금 이대로의 삶도 나름 좋다.



꽃을 피우기 전에 있는 힘껏 에너지를 응축하는 저 초록봉오리의 시간도

화려하게 활짝 터져나오는 시간도,

속절없이 내려와야하는 때도

또,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겨울을 기다리는 것도



그 모든 모습이 연결되었기에 각각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각각의 시간들 모두! 그때의 모습이 절정이다 싶다.


졌다가 다시 피는 꽃처럼 인생에도 절정의 순간은 계속 다가오는 것 같다.

지면 또 어떤가..내년에 또 피면되지...




이미지출처Photo by Alex Ferde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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