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의 집"에 왜 갔냐고 물으신다면..

by 맵다 쓰다

'아.... 아쉽다...'


두서너번 떠먹었는데 벌써 바닥을 보인다.

양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숟가락으로 작은 입에 몇 번 옮기지도 않았는데 흰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린다.


내 차례는 언제쯤 오나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살펴본다.

텅 빈 스프 접시를 올려두고 음식이 나오는 쪽만 연신 살피는 테이블 위 사람들이 보인다.


지금으로 치면 '맛집'이라 불릴만한 줄을 서서 먹는 곳.

우리 동네에서 경양식을 캐주얼화시킨 가게 이름도 참 노골적인 "돈까스의 집"이다.


경양식집보다는 저렴하지만 맛은 뒤지지 않아 '가성비 갑'인 이곳은 늘 사람들이 줄을 선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

어설프게 오른손엔 나이프, 왼손엔 포크를 들고 썰어내는 모습을 보다 못한 엄마는

"이리 내봐!'하고 한 번에 먹기 좋게 썰어서 내 앞에 밀어놓는다.


돈까스 한입. 새콤한 깍두기 한입 먹어가면서 금세 한 접시를 비운다.



그 집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장사를 하고 있다.


둘째를 가졌을 때 갑자기 그 돈까스가 먹고 싶어졌다.

임신이란 특권으로 친정 식구들과 내 입맛을 맞춘 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허름한 장소, 별 다를 것 없는 메뉴. 인스턴트 맛의 스프..


우리는 추억을 입맛 삼아 예전을 떠올리면 후한 점수를 주면서 먹었는데 딱 한 사람, 남편은 최저점을 주는 심사위원의 표정이다. 같은 장소의 추억을 공유하지 못해서였을까?



객관적으로 최고급 음식보다 못한 맛인걸 알지만, 나는 가끔 그런 음식들이 먹고 싶어 진다.

막상 먹어보면 별 거 없는 맛인데 그래도 그립다.

기억의 오류는 좋은 것만 기억하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사람들은 왜 추억의 맛을 갈망할까?

미식의 만족을 바라는 건 아닌것 같다.


그리운 옛 음식은 대부분 어떤 장면이 진하게 묻어있다.

먹는 순간은 그때의 나와 깊이 만나게 된다.


그저, 나와 과거가 만나는 접점, 그 매개체로 충분하다.





먹는다는 건 참 즉흥적인 것 같다.


배가 고파 먹고

배가 불러 그만먹고

먹고 싶어 먹고

먹기 싫어 먹지 않고


먹고 살려고 먹고

스트레스받아 먹고

빠른 쾌락을 주기위해 백해무익이라는 정제된 탄수화물을 먹는다.

그것도, 즉흥이란 말과 잘 어울리는 도파민을 통해서 만족을 하면서 말이다.





기꺼이 나는 돈을 지불하고 추억을 사 먹고 왔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던 둘째를 임신한 채 일하러 다니던 그때..


칠천원짜리 돈까스를 사먹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나를 위로했던 것 같다.

돈까스가 지상최고였던 꼬꼬마 시절로 잠시 떠나보는 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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