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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노 Oct 04. 2024

EP 9. 나의 매니저는 학습지 빨간펜 선생님?

왜 보고서를 신문 칼럼처럼 못쓰니? 

나는 호주에서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미리 취업 합격을 받아 놓았던 IPG Mediabrands라는 글로벌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든 게 정말 꿈만 같았다. 대학원을 다닐 당시 과연 내가 졸업하고 호주에서 취업을 할 수 있을까? 괜히 한국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후회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등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결국 내가 다행히도 대학원 졸업 전에 호주에서 정직원으로 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취업한 곳은 Reprise Media라는 회사로 고객사들의 소셜미디어 및 구글 검색 마케팅의 전략이나 디지털 캠페인 실행 대행을 해주는 곳이었다. 내가 맡은 직무는 Social Media Executive였다. 그 당시 회사에서 Executive는 한국으로 치면 사원과 같은 제일 낮은 직책이었다. 구체적으로 나의 업무는 고객사의 브랜드 이미지 및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온라인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분석하고 그 고객사에게 조사한 내용을 내용을 바탕한 인싸이트 및 그에 향후 계획에 따른 제안도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인싸이트는 고객사의 브랜드 및 구매 캠페인 마케팅 향후 계획에 참고되었다. 


내가 처음 맡은 일은 어느 패션의류 브랜드사에 대한 온라인 고객들의 인식 및 반응 분석이었다. 나는 그 당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라오는 글을 자동으로 취합하고 사람들이 특정 브랜드에 대해서 갖는 정서나 인식을 분석해 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정말 신기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하나로 어떤 특정 브랜드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떤 말들을 하는지 빠르게 분석할 수 있고, 그 말들이 긍정적인지 아니면 부정적인지 쉽게 분류돼서 차트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사람들이 어떤 내용이나 키워드들을 주로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가 되는지 트렌드도 알 수 있었다. 업무상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도 잘 다뤄야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보고서 쓰기였다. 나에게는 Cam이라는 중년의 나이의 매니저가 있었다. Cam은 똑똑하고 글을 잘 쓰는 호주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글 쓰는 것에 대해서는 완벽함을 요구했다. 예를 들면, Cam은 내가 신문 칼럼의 글처럼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보고서를 쓰기 원했다. 하지만 사실 신문 칼럼들을 정말 글쟁이가 아니고서야 그 글쓰기 수준을 단기간에 따라가기가 힘들다. 게다가 보고서는 당연히 한글이 아닌 영어로 써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그때 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었다. 호주에서 정직원으로 회사에 취업했다고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은 때가 어그저께 같았는데, 내가 해야 하는 업무와 팀에서 기대하는 업무 수준을 알게 되고 나서는 너무 긴장이 돼서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아무리 힘들어도 먼 이국땅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뭐든 끝을 봐야는 게 이민생활의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힘들다고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돈이 소비됐다. 나는 까짓것 한번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다시 마음을 다 잡고 고객사의 보고서를 소신껏 썼다.  


나는 보고서를 다 쓰고 Cam에게 리뷰를 요청했다. 그런데 나의 첫 보고서를 받은 Cam의 얼굴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빨간 펜으로 계속 내 보고서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뭘 저렇게 오래 적을까? 피드백이면 저렇게 오래 적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Cam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불러서 나의 보고서를 다시 돌려주었다. 빨간펜으로 내가 쓴 보고서의 문장 하나하나의 문제점과 원어민이 읽었을 때 이상하게 느낄 표현들을 다시 제대로 쓰라고 적어줬다. 나는 정말 부끄러웠고 어디 쥐구멍에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무엇보다 많이 무척 실망한 표정의 매니저를 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와 매니저는 미팅을 개별적으로 가졌고 나는 다음부터 더 잘하겠다고 얘기하고 내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얼굴에 핏기가 없어져서 하얘졌고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신경 쓰고 긴장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두렵고 걱정이 많아서 긴장을 무척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지만, 예상대로 나의 보고서는 빨리 나아지지 않았다. 글쓰기라는 것이 갑자기 좋아지기가 힘들었고 또 고급스러운 영어표현들이나 단어들은 하루아침에 익혀지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그리고 Cam의 냉정한 피드백은 계속됐다. Cam도 계속 피드백을 주는 게 짜증이 났는지 가끔 화도 내고 사무실에서 큰소리로 나의 보고서가 형편없다고 말하기도 해서 주변 사람들 보기에 너무 민망했다. 그때의 기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한국에 있을걸. 내가 괜히 왜 이 코쟁이한테 이런 말까지 들으면서 여기 있어야 할까? 내가 한국사람인데 어떻게 갑자기 영어 신문 기자들처럼 글을 쓰라고 하는 거야 라며 속으로 불만과, 내 결정에 대한 원망,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그렇게 빨간펜 학습지 선생님 같았던 나의 매니저 덕분일까, 일한 지 10개월 정도가 지나자 보고서의 비슷한 글쓰기 패턴을 익히게 됐고 고급스러운 영어 표현들도 호주 신문이나 다른 직원들의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보면서 숙지하게 되었다. 1년이 거의 다 돼 갈 때쯤 나의 보고서 글쓰기와 영어표현들은 상상 이상으로 좋아졌고 글을 쓰는 속도도 엄청 빨라졌다. 나중에는 Cam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됐고 꾸준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나에게 어느 정도 마음도 열어주고 나를 팀원으로 많이 챙겨줬다. 




그렇게 1년 Reprise Media에서 일을 하면서 정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서 10 개월동안 7-8kg씩 살이 빠지고, 사직서를 쓰는 법도 알아보고 정말 그만둘까를 수십 번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은 나에게 현재의 나를 있게 해 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자양분이었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호주에서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일들은 단순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에게 너무 잘했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수고했어, 그리고 잘 참고 끝까지 버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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