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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노 Sep 21. 2024

EP 7. 현실과 부딪힌 세 번째 인턴쉽

대학원 시절 마지막 인턴쉽

두 번째 인턴쉽을 잘 마치고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먼 이국땅에서도 하면 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곧 나는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첫 번째 인턴쉽은 무료 인턴쉽이었고 어떤 식으로 보면 자원봉사자와 같은 것이었다. 두 번째 인턴쉽도 대학원이랑 기업들이 협약을 맺은 인턴쉽 프로그램으로 학점 받기 위한 프로그램이라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여태껏 내가 경험한 마케팅 인턴쉽들은 내가 무료로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일 자체가 어렵지 않았고 회사 직원들도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을 시키거나 싫은 소리를 안 했던 것이다. 호주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그 당시 나의 생각은 어느 나라에 여행만 가보고 살기 좋다고 하는 것과 똑같았다. 예를 들어 외국에 여행 가서 고객으로서 돈을 쓰기만 하며 지내는 것과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경쟁하며 돈을 벌면서 이민생활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두 번째 인턴쉽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생각에 취해서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두 번째 인턴쉽을 마치고 나는 돈을 받으면서 하는 인턴쉽이 하고 싶었다. 호주에 와서 냈던 비싼 대학원 등록비와 계속 들어가는 생활비 때문에 조금이나마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다시 학교 취업공고 사이트 및 호주의 대표 구인 광고 사이트인 seek.com.au 에 지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이미 두 번의 인턴쉽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돈을 받으면서 인턴쉽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채용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서류 전형의 요구 사항도 아니었던 추천서들도 지원서에 첨부했다. 추천서로는 호주 인턴쉽에서 받은 현지 추천서를 주로 사용했고, 필요에 따라서 한국에서 영어로 받아놓은 관련 있는 추천서들도 첨부했다. 그렇게 성심 성의껏 노력한 내 마음이 통했는지, Brigthcove라는 하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Brightcove는 온라인 비디오 플랫폼 회사로써 스타트업 회사로 부족한 마케팅 인력을 보충할 인턴을 구하고 있었다. 몇 번의 인터뷰 끝에 채용이 됐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Brightcove 회사의 인터뷰는 첫 번째, 두 번째 인턴쉽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쉬웠다. 이미 두 번의 마케팅 인턴쉽을 한 경력이 있었고 기존의 인턴쉽을 하기 위해 경험했던 인터뷰들이 좋은 연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뷰에서 기존 인턴십 경험과 관련된 질문들이 많았고 나는 기존 경험들을 잘 설명하면 되는 일이었다.




인턴십을 하게 되면 그 인턴쉽 근무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하게 대학원 수업시간표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Brigtcove에서는 기존에 했던 인턴쉽과는 다르게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Brightcove 근무시간 일정에 맞춰서 나의 수업계획표를 짰다. 이민 오고 나서 회사에서 돈을 받으면서 일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정말 가슴이 벅찼고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었다. 그 당시의 Brightcove는 작은 스타트업 회사였기 때문에 호주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수는 3명밖에 되질 않았다. 내가 일했던 기존의 인턴십 회사들은 중견기업 또는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스타트업 회사가 다소 생소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었다.


나의 첫날은 Mark라는 호주 매니저와 다른 두 직원과 인사를 나눴다. Mark는 영국사람이었고 다른 두 직원들은 호주 사람들이었다. 사무실은 요즘 많이 있는 공동 사무실에 방하나 세를 내서 사용하고 있었다. 모두들 남자 직원이었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아서 재밌게 인턴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첫 번째 받은 임무는 시드니 시내에서 Brightcove 제품 홍보를 위한 마케팅 콘퍼런스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영어로 전화통화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전화하는 걸 꺼려했었다. 사람을 보고 직접 대화하는 것은 얼굴 표정이랑 몸짓이 보여서 이해하기가 한결 쉬운데, 전화 같은 경우는 그런 것 없이 단순히 호주 영어만 듣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라 부담이 많이 됐다. 마케팅 이벤트를 준비하다 보면 이벤트 장소 관계자들과도 통화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배송업체들과 급하게 전화해서 일처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 영어를 못 들은 부분이 있으면 못 알아들었다고 얘기하고 다시 물어보면 되는데, 그때는 내가 영어를 못 들어서 물어보는 게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존 인턴쉽과 다르게 아무래도 돈을 받고 하는 인턴쉽이다 보니 혼자 책임을 지고 할 일들이 많이 할당받았고, 마케팅 콘퍼런스 이벤트도 내가 혼자 맡아서 준비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가 없어야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말 번거로웠지만 이벤트 관계자들과 통화하면서 이해가 잘되지 않았던 부분들은 꼭 전화통화가 끝나고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다시 확인을 했다. 글로 보는 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수고스럽고 시간이 많이 걸릴지라도 꼭 다시 글로 확인을 했다. 아마도 이 부분을 Brightcove 다른 직원들도 눈치챘을 것 같다. 이벤트 담당자들이 나의 매니저인 Mark 나 다른 직원들에게 얘기했을 수도 있고 내가 우연히 통화하는 걸 들으면 웬만한 눈치가 없지 않고서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사무실은 시끄럽다는 핑계를 되면서 사무실 밖 복도에서 거래처에 전화를 걸고는 했다. 혹시나 내가 전화를 받은 상대방 거래처의 말을 못 알아듣거나 내 영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Brightcove 직원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금에야 문자나 메시지를 나에게 보내면 오히려 내가 바로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고 확인해서 일처리가 쏜살같지만 그때는 호주에 온 지도 얼마 안 돼서 호주 영어 발음이 익숙하지 않았고 전화 통화를 하는 게 조금 두려웠다. 또 이런 의사소통의 문제는 회사의 현지인 직원들에게도 말 못 하는 나만의 고민이어서 혼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살도 빠지기도 했다. 그나마 그때 이벤트는 잘 끝났지만, 이런 이벤트를 한 번씩 할 때마다 나는 살이 1kg씩 빠지는 느낌이었다.


Brightcove 마케팅 홍보 콘퍼런스 당시


마케팅 홍보 이벤트 말고 내가 했던 일은 Brightcove 호주지사의 소셜미디어 계정 관리 및 운영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Mark는 나한테 화가 많이 났었는데, 나는 우리 호주 지사 계정에 팔로워나 회원들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중요한 잠재고객을 늘리기보다는 아무나 초대해서 회원이 되도록 했다. 결국 전체 팔로워 수는 늘어났지만 질보단 양만 생각한 나의 행동에 아마도 Mark는 이때부터 내가 하는 일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작은 회사이다 보니, 한번 실수한 일은 모든 팀원들에게 알게 됐고 신입 인턴이었던 나는 쉽지 않은 인턴 생활을 하게 됐다. 지금은 하나의 에피소드이지만 되게 실망하며 화를 내던 Mark의 반응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호주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사람이다 보니 가끔 주말이 다가오는 금요일 같은 경우는 업무를 마치고 쉴 생각에 모두 기분이 들떠있다. 그러다 어떤 직원이 자신이 태국에 갔던 여행 얘기를 하다가 레이디보이 (Ladyboy) 얘기가 나오게 됐다. 그 당시에 레이디보이가 무슨 뜻인지 나는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영어의 '레이디' 그리고 '보이'라는 단어들을 듣고 구글에 찾아볼 생각을 못하고 나는 레이디보이가 단순히 여자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매너가 좋은 남자를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직원들과 얘기하던 중에 조금이라도 대화에 껴보려고 농담을 한답시고 "나도 레이디보이가 될 수 있어, 왜 내가 못해, 하면 되지."라는 말을 해서 사무실 전체에 정적이 흐르게 만들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레이디보이는 남자인데 여자가 되고 싶어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을 칭하는 말이다. 당연히 내가 트랜스젠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나 혼자 스스럼없이 했으니 사무실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은 쉽게 웃고 떠들면서 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됐지만, 이런 일은 내가 그 당시 얼마나 호주에서 문화적으로 잘 섞이지 못하고 좌충우돌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어디 가나 똑같겠지만 회사생활을 잘하려면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팀원들과 의사소통이 잘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일하기도 쉽고 인정도 받고 나중에 승진하기도 편하다. 현재는 호주 문화 및 호주 영어기능이 아주 잘 탑재돼서 가끔 한글말 단어도 까먹을 정도의 나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한국 문화를 모르고 한국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 근로자가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에서 언급했던 어려운 점들은 대부분이 내가 호주영어(또는 일반영어)를 아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의 문화나 일업무 에티켓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대학교 대표로 영어스피치 대회도 나가고 회사에서 주한미군 및 주한미국대사관의 미국 담당자들을 만나며 영업을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현지인들만 살고 있는 호주에서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한국에서 만나는 영어권 외국인들은 이미 한국이라는 곳에서 한국사람들의 영어에 익숙해져 있거나 한국 사람의 영어에 큰 기대가 없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한국 사람들의 영어를 들어준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살고 있는 영어권 외국인들만 상대했던 나는 내가 정말 영어를 잘하는구나 라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정말 현지인들만 사는 현지에 가면 한국식 영어발음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자신들에게 돈을 제공하는 고객이 아니고서야 어색한 한국식 발음이 섞인 영어를 이해하려는 인내심을 갖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현지 회사에서 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은 정말 내가 호주라는 사회와 현실을 고객으로서가 아닌 진정한 호주사회 한 명의 일원으로서 맞부딪히고 발디딤을 하게 해 준 값진 계기가 되었다.


Brightcove 호주 지사 직원들과 점심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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