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투자기간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나와 내 여동생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기 위해 많은 빚을 지며 강남 8 학군(서초동)에서 우리들을 낳고 키우셨다. 서초동에는 정말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부모님들처럼 무리해서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강남 8 학군에서 자녀들을 키우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았다. 어쨌든 나는 항상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수많은 긍정적인 기회들에 노출될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아졌고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봤으며 넉넉하지 못한 환경 때문에 집안의 장남으로써 일찍 철이 들어 해이해지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되었다.
첫 번째 인턴쉽은 안타깝게도 무급이었기 때문에 인턴쉽을 통해서 벌 수 있는 돈은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국제 학생으로 분류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있었다 (호주는 국내, 국제 대학생 분류에 따라 일주일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건 비자와 관련해서 생기는 규정이긴 하지만 학교 측에서도 학생들이 과도하게 많은 일을 해서 학업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을 우려했다). 그래서 나는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시급이 높은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예전에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왔을 때 사무실 청소 및 이삿짐센터 일을 했었다. 처음에는 그 일들을 다시 해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사무실 청소는 시간에 비해 돈이 별로 되지 않았고 가끔 돈을 아예 안 주거나 돈을 제 때 안주는 청소업체 사장님들이 있어서 웬만하면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국분들이 하는 청소업체들이 많았고 직원들이 거의 다 한국분들이었기 때문에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건 이삿짐센터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삿짐센터일은 아침부터 저녁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자정까지 늦게 일을 해주고 와야 하는 경우가 있었고 무엇보다 몸이 많이 상했다. 피아노나 드럼세탁기 또는 냉장고를 나르고 할 때는 팔에 상처나 멍이 드는 건 기본이었고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서 한번 일하고 나면 며칠은 쉬어야 원래의 몸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한 육체적으로 많이 피곤해질 수 있다 보니 아무래도 대학원을 다니면서 하기에는 이상적인 아르바이트는 아니었다.
대학원 구인 광고 및 호주에서 유명한 취업사이트인 seek.com.au에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다가 당시 Pure Commerce라고 하는 호주 파이낸스 서비스 회사의 통번역을 하는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일단 시간에 비해 보수가 좋았고, 영어 실력을 더 늘리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석 이조의 일이었다. 이삿짐센터 일처럼 육체적인 노동이 아니라 피곤하지 않아서 공부하는데도 지장이 적었다. 당시 Pure Commerce는 외환은행(현재는 하나은행과 합병)과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중요한 회의를 시드니에서 가질 예정이었다. 외환은행은 Pure Commerce의 중요한 고객이었고 Pure Commerce는 외환은행의 주요 인사들을 호주 시드니로 초청해서 다시 한번 서비스 제품을 설명하고 계약을 체결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외환은행의 주요 인사들은 직급이 높은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Pure Commerce 측에서는 단순히 영어 통번역만 해주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한국 회사의 문화나 한국 사람들의 성향 그리고 비즈니스 매너를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3년 넘게 했었고, 한국에서 주한 미군과 주한 미국대사관 영업관리를 했기 때문에 나에게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부분들을 면접 시 충분히 어필했다. 사실 내가 중요한 계약 관련 회의 통역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했지만 일단 하고 보자는 나의 담담한 성격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 주었다.
외환은행 직원분들이 시드니를 방문하기 전에 나는 Pure Commerce 쪽에 계약하는 서비스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여러 번 문의를 했었고 Pure Commerce가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도 웹사이트나 회사 자료를 통해 공부를 많이 했다. 내가 제대로 통역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Pure Commerce의 직원이 됐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성격상 무슨 일이든 대충 하지 못했던 나는 정말 통역을 잘해서 Pure Commerce가 계약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드디어 회의 날짜날이 되었다. 한국 외환은행에서는 총 두 분이 오셨고 회의는 바로 시작됐다. 통역 미팅은 몇 시간 동안 지속됐다. 중요한 회의이다 보니 길어졌고 중간에 몇 번 쉬는 시간도 갖었다. 회의는 회의 참석자 소개로 시작됐다. 나는 한국식으로 깎듯이 외환은행 분들에게 나의 소개를 했고 아무래도 회의에 한국 사람이 있고 통역해 줄 사람이 있다 보니 좋아하시는 눈치셨다. 소개가 끝나자 Pure Commerce 측에서는 계약을 위한 서비스 제품 설명을 하였고 나의 통역은 계속 바쁘게 진행됐다. 간혹 제품의 어려운 용어가 나와서 미리 숙지를 못한 경우에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Pure Commerce 측에 물어봐서 내가 정확하게 이해를 한 후에 통역으로 외환은행 분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통역을 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논의를 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회의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계속 사무실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가면서 써야 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지만 이전에도 한국에서 통역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다행히 서비스 제품 설명은 잘 이루어졌고 외환은행 측을 위한 질의응답 세션도 잘 진행이 되었다. 여러 시간 통역을 하다 보니 한국 외환은행 분들과도 친해지고 쉬는 시간에는 어떻게 이민을 오게 됐는지 소소한 잡담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관계를 이렇게 좋게 형성하다 보면 일을 하기에 훨씬 수월해진다. 한국에서 법인 영업관리를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고, 어떤 경험이든 나중에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지 모르니 뭐든 대충 하기보다는 무슨 일이든 100% 이상으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가 끝나자 외환은행 분들은 제품에 만족을 하셨고 다행히도 Pure Commerce는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다음 날 Pure Commerce 측에서는 시드니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Hunter Valley라고 하는 와인이 유명한 지역으로 외환은행 직원분들을 초대했다. 외환은행 쪽의 요청으로 나도 초대돼서 계속 통역도 하면서 휴양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Pure Commerce에서 나는 회의 통역도 했지만 한국어 계약서 번역도 추가적으로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했던 번역 건은 Pure Commerce가 한국의 롯데카드 회사랑 체결했던 계약서 번역이었다. 나의 일은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는 것이었는데, 내가 영어로 번역을 하면 Pure Commerce 법무팀에서 그 번역을 가지고 검토를 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통역을 선호한다. 내가 전문 통변역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의 대화를 즉각적으로 연결하는 회사 회의 통역이 나에게 더 잘 맞았다. 반면에 번역은 그냥 혼자 하는 일이었다. 통역처럼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미리 준비를 한 후에 통역을 하는 게 아니라, 번역은 혼자서 자기가 시간 관리를 하며 번역 마감날짜를 맞춰야 했다. 거의 대부분의 계약서 번역은 한 번에 끝마칠 수 있는 게 아니라 항상 밀린 학교 숙제를 하듯 해야 했고 끝날 때까지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항상 쫓기는 느낌이 들었고, 번역은 한번 번역을 하면 통역과 다르게 글로 남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Pure Commerce의 통번역 일은 쉽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됐다. 적은 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영어 실력도 더 늘게 되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들이 더 나은 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항상 배우는 부분들이 있고 그 배움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Pure commerce CEO분이 나에게 보내준 추천서이다. 호주에서 직장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인턴쉽을 통해서 받은 추천서 말고도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통한 추천서도 차곡차곡 모았고 인맥도 쌓았다. 이런 추천서들은 나중에 호주에서 취업 시 유용하게 쓰였는데, 이는 현지에서 좋은 업무평가를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든 단기간에 쉽게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호주나 해외에서 취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무슨 일을 하던 좋은 평가를 받고 꼭 추천서를 받기를 권유한다. 추천서도 복리효과가 있다. 처음 추천서를 받을 때는 어렵지만 나중에는 추천서를 받는 일들이 쉬워지고, 그 추천서들이 내가 어떤 곳으로 가서 일하든 추천서들을 써주신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다음이야기... “나의 인턴쉽 성공사례가 호주 대학원 웹사이트에 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