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0분의 의미

이게 된다고?

by 씩씩한 클라이머

1.

처음 몇 회의 강습을 통해 첫 번째 강사님에게 인사이드 스텝과 아웃사이드 스텝, 벽과 볼륨 사용 등의 기본적인 기술을 다 배운 후로는 지구력벽의 연습 코스에서 그동안 배운 기술을 연습하고, 잘못된 자세와 안 좋은 습관을 교정하고, 정확한 발 사용 및 무게 중심 이동을 체득하는 데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수직벽에서 연습을 할 때는 괜찮았는데 벽이 바닥 쪽으로 어느 정도 기울어진 오버행벽에서 처음 연습을 했을 때는 강사님이 찍어주는 홀드를 손으로 잡고 발로 밟으면서 이동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벽이 기울어진 탓에 골반을 최대한 벽에 밀착시키면서 팔을 쭉 펴야 전완근 펌핑을 줄일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골반을 벽에 밀착시키는 게 어려워서 골반이 자꾸 벽과 멀어지는 탓에 체험 강습을 받았을 때처럼 홀드를 꽉 쥐고 팔로만 버텼더니 홀드를 몇 개 잡지도 않았는데 금방 전완근이 아파왔다...


연습 중에 손에 힘이 풀려서 매트로 떨어진 적도 있고, 팔이 아프니 발 홀드를 정확히 밟는 데 집중하지 못해서 발이 미끄러진 적도 있고, 몸이 너무 힘드니 자꾸 호흡을 참게 돼서 강사님이 숨을 좀 쉬라고 하신 적도 여러 번이었다. 연습 코스를 겨우 한 번 끝냈는데 마라톤이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리고 티셔츠는 땀범벅이었다. 게다가 연습에 쓰는 시간은 2-3분 정도였는데 5분 이상 쉬고 나서야 연습을 재개할 수 있었다.


2.

이제는 코어를 강화하고 심폐지구력을 더 높여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산소 운동의 강도를 높였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 기준으로 러닝 머신의 경사를 15로 설정하면 오버행벽에 매달려 있을 때처럼 몸이 살짝 뒤로 기울어져서 코어에 계속 힘을 주지 않으면 허리가 꺾이게 된다. 그래서 주 4-5회 이상 헬스장에서 러닝 머신의 경사를 15로 설정하고 속도는 5 정도로 유지하면서 10분 동안 걸었다. 그러면 10분 내내 심장이 계속 쿵쾅거렸는데, 지금 오버행벽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코어에 힘을 주고 호흡을 가다듬는 데 집중했다. 10분 동안 걷고 나면 경사를 낮추고 조금 뛰거나 사이클을 타는 게 내 루틴이었다.


가끔씩 강아지와 트래킹을 하러 산에 갈 때는 강아지를 안고 오르막길을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데 이전에는 늘 중간에 잠깐 멈춰서 쉬곤 했지만 심폐지구력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한 후로는 아무리 숨이 차고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3.

9회 차 강습 때는 강사님이 지구력벽 두 개를 왕복하는 걸 세 번 반복한 후에 본 연습을 할 거라고 하셨는데 본 연습이 뭘 말하는 건지는 연습이 다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건 바로... 지구력벽에서 10분 동안 계속 등반을 하는 거였다...!


미리 예고하신 대로 지구력벽 왕복 세 번을 마친 후에 잠시 쉬었다가 본 연습을 시작했다.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홀드를 잡아서 그런지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갈수록 힘이 쭉쭉 빠졌다. 분명히 한참 동안 홀드를 잡고 왔다 갔다 한 것 같은데도 강사님이 계속 새로운 홀드를 잡으라고 지정해 주시길래 이제 진짜 더는 못하겠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는데, 야속하게도 아직 내려오지 말고 계속 벽에 붙어있으라고 하셨다. 팔도 아프고 손바닥도 화끈거렸지만 강사님의 말을 무시하고 내려갈 수가 없어서 거의 홀드를 동아줄처럼 붙잡고 매달리다시피 한 상태로 팔을 털면서 버텼는데 어느 순간에 이제 내려와도 된다는 말이 들렸다.


다운 클라이밍을 할 기운이 없어서 매트로 뛰어내렸더니 강사님이 고생했다며 방금 벽에 몇 분이나 붙어있었는지 아냐고 물어보셨다.


막판에는 너무 힘들어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데 내가 벽에 붙어있던 시간이 10분이나 됐다고 한다.


나는 10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생전 처음 알았다. 내가 10분이나 계속 홀드를 잡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는 했지만... 사실은 어차피 몇 분 걸리지도 않는 볼더링과 지구력 연습만 할 건데 10분 동안 계속 벽에 붙어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때 강사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볼더링을 하든 아니면 지구력 연습을 하든 간에 10분 넘게 벽에 붙어있을 일은 거의 없는데 오늘 이렇게 10분을 버텼으니 앞으로는 뭘 하든 더 여유롭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제야 내가 더는 못하겠다고 해도 강사님이 응원도 해주고 등도 받쳐주면서 어떻게든 10분 동안 홀드를 잡고 버티게 하신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9개월이 넘은 지금은 손바닥에 굳은 살도 많이 생기고 악력도 좋아졌고 초반보다는 하체를 잘 쓰게 돼서 지구력벽에서 좋은 홀드만 잡으면 30분 가까이 버틸 수 있지만, 이 글을 처음 써놨던 때에는 혼자 연습을 하면 2-3분을 채우는 것도 힘들었던 나에게 10분 동안 홀드를 잡고 이동하는 건 정말로 "아니, 이게 된다고???" 싶은 일이었다.


혼자서 지구력 연습을 하다 보면 문득 처음으로 10분 동안 등반을 해 본 날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첫 번째 강사님이 아니었으면 해보지 못했을 특별하고 성취감 느껴지는 경험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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