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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 미립자 Mar 15. 2022

치고 빠질 줄 아는 고양이

istp 유형의 고양이

고양이도 사람처럼 각자의 성격이 있다. 종의 특색이 있기도 하고 저마다 타고난 성격도 있을 것이다. 나의 길고양이 ‘냥이’의 경우 내게 먼저 말을 걸었던 것으로 봐서는 호기심과 사회성이 발달한 인싸인가 싶다가도 늘 일정한 선을 두는 걸 보면 아싸의 면모도 보인다. mbti로 보면 내향성과 외향성을 적절히 가진 고양이랄까? 굳이 적용해보자면 istp 정도인 것 같다. 실제 동물 타입으로 16유형을 설명할때 istp가 고양이라고 한다!


* istp 특성 *

말수가 적어 과묵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성과 호기심으로 인생을 관찰하고 상황을 파악한다.




2년 정도 우리 ‘냥이’를 봐 오며 대견하게 느낀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영역을 꾸준히 지키는 것이다. 고양이들은 영역 동물이라 자신의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때로는 더 힘이 센 녀석이 나타나면 밀려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영역을 기웃거리다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 ‘냥이’는 몸집이 작은 암컷인데 2년 넘는 시간동안안 꿋꿋이 밥자리가 있는 이 공원에서 버티고 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종종 힘 센 녀석의 공격도 보았다. 언젠가 얌전히 밥 먹는 냥이에게 어디선가 휙 날아오듯 (<닥터 스트레인지>의 공간 이동 못지않게 갑자기! 순식간에! 느닷없이!) 나타나 밥 먹던 냥이를 공격하는게 아닌가. 그럼 냥이는 깜짝 놀라 날아가듯 총알처럼 도망간다. 난 두 마리가 작은 맹수가 쫓고 쫓기는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 길고양이들에겐 선전포고란 없는걸까. 한 녀석은 그냥 냅다 날라와서 덮치고, 한 녀석은 동시에 날라가듯 도망가는데 이 모든 과정은 내 느낌상 1.5초 정도에 불과하다.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처음 이런 일을 겪었을 땐 공격받은 냥이 못지않게 나도 놀라고, 혹시 다친건 아닌가 걱정돼 찾으러도 다녔는데 이젠 안다. 곧 돌아온다. 밥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오래지 않아 힘없이 저벅저벅 걸어오곤 했다. 힘없는 소리고 "야옹~" 하며.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고~ 깜짝 놀랐다옹. 죽을듯이 도망갔다 왔더니 기운이 없다옹~

그럼 나는 이렇게 위로해주곤 한다.

    

냥아~ 놀랐지? 어서 밥 마저 먹어. 어구어구 어째. 어서 먹어.     


이렇게 다짜고짜 덤비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태연하게 원래 자기 자리인냥 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보통은 덩치 큰 숫놈일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우리 냥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기다린다. 섣불리 덤비거나 옆에 다가가지 않는다. 한쪽 구석에 숨어 지켜보다 덩치냥이 밥을 다 드신 후 느릿느릿 뒤돌아 가면 슬금슬금 나와 밥그릇에 코를 박곤 한다.      



우리 ‘냥이’가 힘이 센 녀석의 공격을 당하는 모습은 종종 봐 왔지만 다른 고양이를 공격하는 모습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있었다. 보통은 밥자리에 낯선 길고양이가 나타나면 서로 눈싸움을 하듯 한참을 노려보며 견제를 하곤 하는데, 대개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고(?) 슬슬 뒷걸음질치며 사라지는 것으로 대결은 끝난다. 길고양이들은 몸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조용히 눈싸움만으로 기선 제압을 하기도 하는 듯. 그러던 어느날, 우리 냥이가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낯선 길고양이 한마리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서로를 발견한 두 고양이가 한참을 서로 노려보는데 그 기싸움의 기세가 어찌나 팽팽한지.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 ‘냥이’가 홱 몸을 날려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놀란 상대 고양이가 얼른 도망가자 다시 밥자리로 돌아오는 냥이.      



늘 쭈구리로만 생각했던 ‘냥이’에게도 이런 용맹스러움이 있었다니?! 외유내강형인가? 생존경쟁을 해야하는 길 동물의 본능이 발동한 건가? 아무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놀랐던 날이었다.


‘그래, 우리 냥이는 치고 빠질 줄 아는 유연한 고양이였구나! 다른 이를 공격하는 사나움은 없지만,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이에겐 단호하게 경고를 날릴 줄 아는 고양이!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멋진 고양이! 세상 사는 법을 아는 현명한 고양이! ‘



때로 누군가에게 상처받고서 분노하며 두고두고 마음 아파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 준 나를 합리화하면서도 못난 내 모습에 씁쓸해했던 내가 ‘냥이’와 대비가 됐다. 어떤 상황이든 늘 복잡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했던 나에게, 상처를 받든 상처를 주든 ‘생존’의 문제로 심플하게 대처하는 냥이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 인생의 한 수를 배운 느낌. 길고양이 한마리에게서도 이렇게 인생을 배울 수 있다니, 역시 고양이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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