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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 미립자 Dec 30. 2021

2021 냥이 베스트 어워즈 (ft 단짠)

12월이 되면 한해를 정리하면서 새해를 준비한다. 그래서 이번달 들어서며 다이어리를 새로 구입해 중요 일정을 적어두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자료들도 정리해 파일링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 내 나이가 몇인지 새삼 확인도 해 뒀다. 혹시 누가 물어보면 엄.. 엄.. 버벅대지 않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대답하려고.




라떼는 해마다 이맘때면 방송사마다 경쟁적으로 하는 연말 가요제, 방송 대상  각종 시상식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요즘엔 예전과 같은 기대와 재미진 느낌이 없다. 나이 탓인가? 아무튼 새해를  이틀 남긴 오늘.  익은 김치 볶아 두부와 함께 와인이나 한잔 할까 하다가 올해 마지막 술은 내일로 미루고 우리 냥이와의 베스트 어워즈를 펼쳐본다사실 그 어떤 것보다 첫 만남의 순간이 최고의 장면이겠지만 그건 이미 브런치에 소개했으므로 (지난 글 <나의 그녀, ‘냥이’를 소개합니다>) 제외한다.  




<2021 냥이 베스트 어워즈> 첫번째

처음 부비부비를 한 순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알못이었던 난 부비부비를 비롯한 고양이들의 감정 표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연히 만지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공원 밥자리에서 쭈그리고 앉아 냥이가 밥 먹는 모습을 다 지켜보고 비닐 봉지를 치운 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당시 냥이는 나에게 아는 척도 하고 내가 주는 밥도 먹지만 항상 일정 거리는 유지하며 선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냥이가 갑자기 쓱 다가오더니 (이 찰나의 순간부터 난 놀라고 있었다!) 내 다리에 머리를 부비는 것이다.


아악~!!!


정말 예상치 못했던 순간이었고, 그 어떤 고양이와도 접촉을 해 본 적이 없던 난 정말 깜짝 놀랐다. 냥이의 머리가 내 다리에 닿는 순간 외마디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나며 오도방정을 떨었고 냥이도 덩달아 놀라 펄쩍 뛰었더랬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냥이의 경계가 한풀 꺾이는 순간이자, 나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라 믿는다)을 표현한 운명의 시간이었다.


냥이와의 만남을 매일 기록하지만 미천한 솜씨.




<2021 냥이 베스트 어워즈> 두번째

일명 ‘포크레인 위 냥이’다. 내가 냥이를 만나는 공원이 올 초 새 단장을 했다. 큰 나무가 없어지기도 하고,  나무도 새로 심고, 헌 울타리가 없어지고 새 울타리가 생기는 등 공원에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마 모르긴 해도 공원에 밥자리를 둔 고양이들 모두가 흥미를 가지고 공사 과정을 지켜봤을 것 같다. 그 무렵 조그만 포크레인 한대가 낮에는 공사 현장에서 열일하고, 저녁 땐 풀 밭에 세워져 있었다. 이렇게 조그만 포크레인도 있구나 싶어서 눈길이 갔는데, 아니! 우리 냥이가 떡하니 포크레인에 앉아있는게 아닌가! 그 천연덕스러운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사진 한장을 남겨놓았다.


포크레인냥이라옹~ 편안하다옹~


<2021 냥이 베스트 어워즈> 세번째

낯선 우리 냥이의 모습이다. 항상 동네 공원 밥자리에서 우리 냥이를 만나왔기에 그곳에서 밥 먹고 노는 모습만 봤었다. 하지만 평소에 늘 생각하고 궁금하고 걱정스러운 것이 있었는데.


우리 냥이는 밤에는 어디서 자며,
비 올땐 어디서 비를 피하고,
눈 올땐 어디서 추위를 견딜까


그래서 그날따라 밥을 다 먹고 곧장 주택가 쪽으로 가는 냥이를 한번 따라가보고 싶었다. 내가 따라가는 걸 한번씩 힐끔거리며 보던 냥이가 주택가 골목을 따라 종종종 걸어가더니 어느 2층 주택의 낮은 벽을 타고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하고, 어느집 조그만 텃밭에 놓인 페인트 통에 든 물을 할짝거리며 마시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는게 아닌가. 그러다 마지막엔 어느 빌라의 오픈된 1층 주차장으로 가더니 자전거가 여러대 세워져있는 구석으로 쑥 들어가 자리를 잡는거다. 자전거들은 커다란 천막으로 덮어놓아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는 한 고양이 한마리쯤 들어가 있어도 모를 것 같긴 했다.


‘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여기인가..?’


비교적 사람들의 드나듬이 적을 것 같은 어두운 곳, 천막으로 덮여있는 주차장 구석의 자전거 거치대가 우리 냥이의 거처 중 하나였던 것이다. 천막을 살짝 들춰 “냥아~ 오늘 여기서 잘거야?” 하니 아무말없이 엎드린 채 얼굴을 두 앞발에 콕 묻어버리는 냥이. 그날 냥이에게 인사하고 돌아설 때 그 안쓰럽고 짠했던 마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어디까지 냥이의 삶에 개입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깊이와 밀도가 우리 둘 다 행복한 만남일까도 진지하게 생각한 날이었다.



나름 우리 냥이와의 추억을 베스트 어워즈로 3개를 꼽아봤는데, 자연스럽게 단짠 어워즈가 된 것 같다.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단맛과 애틋한 안쓰러움이 가득한 짠맛까지 녹아있는 순간들. 언제나 달콤함만 있다면 그건 진정한 인생, 묘생이 아니겠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 오늘 만남을 소중히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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