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1. 내가 사랑한 모든_공간들 [할머니집]

by 정담

30년이 약간 안 된 시간, 연마다 적으면 1번에서 많으면 3-4번. 남단 끝쪽에 위치한 시골로 향한다. 아빠의 차 조수석 뒷자리, 나의 지정 좌석에서 때론 잔잔한 - 대체로 죽을 듯한 멀미를 몇 시간 이겨내다 보면 어느새 눈에 익은 골목길에 들어선다. 하모니 마트를 지나 구리구리한 냄새가 풍겨올 때쯤 좁은 골목길로 몇 번 꺾어 들어가면 보이는 청록색 대문집.


언젠가는 개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언젠가는 닭 소리가 들리기도 했으며 또 어느 때는 감들이 주렁주렁 열리기도 했던, 우리 친할머니집. 엄마가 먼저 내려 그 청록색 대문을 활짝 열면 아빠의 차가 미끄러지듯 들어가고, 그 앞으로는 버선발로 반겨주는 등이 굽은 할머니 뒤로 한 발 늦은 흰 러닝셔츠 차림의 할아버지가 있다.


정겨운 묘사가 가득한 것과는 달리, 나는 지난 몇십 년 동안 그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카카오맵은커녕 내비게이션 하나 없이 엄마의 손에 들린 지도 한 장으로 한반도를 횡단해야 했던 그때, 자그마치 편도 12시간이 걸려야만 도착할 수 있던 때가 있었다.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딱 반나절. 그 시간 동안 멀미가 유독 심한 나는 검은 봉투를 손에 쥐고 더 이상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려 애를 쓰고 휴게소에 들르자며 떼를 써야 했다.


단순히 멀미가 싫어서 가기 싫었던 거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우리 친할머니집은 읍-면-리 중에서도 '리'에 속하는 굉장한 시골이다. 지금에야 여러 시공을 거쳐 나름 현대화가 이루어진 그 집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을 벗어나 문을 열고 스무 발자국은 넘게 걸어야 비로소 대문 근처에 자리한 푸세식 화장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 검정 고무신을 본 적이 있다면, 혹은 '똥떡'이라는 책을 읽은 동년배가 있다면 알 수 있을 바로 그 푸세식 화장실. 문을 열기 전부터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너무나도 싫어, 어린 날에는 밤마다 할머니가 요강을 거실에 둬주시기도 하셨다.


이 덕분에 단 한 번도 먼저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 본 적이 없다. 가자 해도 안 갈 때가 태반, 사실 나이를 웬만큼 먹은 최근까지도 그랬다. 이 생각이 바뀐 건 정말 최근, 명절맞이 효도차 내려간 할머니집은 첫인상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도 내려가는 길이 많이 막히지 않은 덕에 컨디션은 평타, 다음 날 바로 이모네 집 (= 도시의 아파트)에 간다는 말을 들어 기분도 나쁘지 않은, 오히려 예전보다 많이 짧아진 일정에 아쉬움도 드는. 그래서일까? 올해 유독 큰 보름달을 구경한다는 핑계로 엄마랑 산책을 나갔다.


어느새 시원해진 바람을 맞으며 나간 산책은 어째선지 죄다 낯선 풍경들이었다. 낮은 단독 주택들 사이 골목길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엄마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길은 새로웠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 사이로 들리는 개들의 짖는 소리는 괜한 웃음을 만들었다. "저기가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는 논이었는데, 벌써 저런 큰 식당이 들어섰네." 웃음들 사이로 이곳저곳을 설명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다정함이 서려 있었다.

"엄마도 나중에는 저런 예쁜 집 짓고 여기서 살까 봐." 같은, 달밤 아래에서 어제와 내일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흘렀고, 큰 나무와 구름들을 지나 돌아오는 길은 약간의 아쉬움이 맴돌았다.


다음 날, 할머니집을 떠나기 전 짐을 챙기는 엄마 아빠를 뒤로 하고 홀로 또 한 번의 산책을 나섰다. 지난밤과 달리 나를 끌어주는 이가 없어 주변을 맴돌 뿐이었지만, 걸음걸음마다 애정이 하나씩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서처럼 소음을 막아주는 에어팟이 없이도 충분한 풀들이 부딪히며 내는 시원함과 그 사이로 섞인 벌레 소리, 그 안에 있는 나의 발걸음 소리. 벼가 잔뜩 자란 논 사이 길을 쭉 걷다 보면 큰 논 앞에 도착한다. 좌-우 섣불리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나의 발걸음은 거기서 멈췄지만, 저 멀리 산에서부터 전해지는 바람 덕에 심심할 틈은 없었다. 곧 아빠가 날 부를 시간이 아니었다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몇십 분이고 멍 때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평화로움과 여유로움.


어쩌면, 내가 여태껏 싫어한다고 믿은 것들은 할머니집의 불편함이지 그 공간 자체는 아니었나 보다.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몇 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내가 평화로운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만일 내가 완전한 타인이었다면 그 시골의 구석구석을 눈에 저장하고 핸드폰으로 찍기 바빴을 사람이라는 것까지, 이제야 비로소 깨달은 어느 날의 한낮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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