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년차 자취생이다

3. 내가 사랑한 모든 _공간들 [우리 집_자취방 2]

by 정담

막 유럽여행에서 복귀하여 복학을 알아보던 나는 그 문제적 역병으로 인해 기숙사 입사일이 밀렸음을 알게 되었다.


"음, 한 두 달 늦게 들어가면 되지."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 입사일은 한 두 달, 또다시 몇 주, 또다시 한 달이 밀리며 결국 1학기가 지나갔다. 4학년 정말 보람 있게 불태워야지!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 불 같은 열정이 식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절대적 평가는 수월했고 집에만 있는 건 적성에 생각보다 잘 맞았다. 점점 아파오는 허리는 문제였지만.


그렇게 또 여름 방학 2달도 지나고 다시 2학기, 막학기가 밝았지만 여전히 내 앞날은 어둠이었다. 그 역병 창궐의 시대에서도 꾸준히 시작되는 대외활동 덕에 조금은 괜찮았지만 여전히 어두운 나날들이었다.


더 이상 집에 있고 싶지 않았고, 문을 닫아도 들려오는 부모님의 대화가 없는 곳으로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한 학기가 지나고 졸업은 했지만 내가 갈 곳은 없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취직이 너무나 갈급했다. 알바로 모아놨던 돈은 점차 떨어지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취직 소식에 마음이 급해져만 갔다. 그 와중에 가고 싶은 직종은 TO가 좀처럼 나지 않았고, 내 서류는 읽음으로만 바뀐 채 혹은 바뀌지도 않은 채 시간이 지나 다시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어디든 취업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번에는 다른 회사에 지원을 했다. 운이 좋게도 채용 전환형 인턴을 시작할 수 있었고 또 운이 좋게도 정직원이 되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자존심도 자존감도 깎여가던 시점에서 들어간 회사는 너무나 감사했고,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너무나 소중했다. 퇴근을 하고 오면 정리도 매일 주말마다는 꼭 한 번씩 대청소도 할 정도였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꾸미기도 했다. 내 공간을 가지게 된다면 한쪽 구석을 내 굿즈들로, 또 한 구석은 친구들과의 사진으로, 또 한 벽면을 책들로 꾸미고 싶은 로망이 있다.


그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이미 완성했다. 그간 사 모은 뮤지컬 굿즈들(‘지킬 앤 하이드’ 깃털펜, ‘HOPE’ 포스터, ‘팬레터’ 대본집 등)을 한편에 장식해 일명 ‘오타쿠존’을 만들었고,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앞에 친구들과의 인생 네 컷과 유럽 여행에서 사 온 여러 엽서들로 ‘추억존’을 만들었다. 비록, 오타쿠존은 여러 곰팡이 이슈와 함께 사라졌지만.


식사도 자취생 치고 꽤나 잘 챙겨 먹는 편이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등 여러 찌개는 이미 섭렵했고 가락국수, 칼국수, 월남쌈, 전골 등 먹고 싶은 음식들은 곧잘 만들어 먹곤 하니까. 오죽하면 자취를 시작하며 엄마가 사준 가재도구 중 하나가 압력밥솥일 정도다. 전기밥솥 아니고, 진짜 불에 올려하는 압력밥솥.


본가에서 엄마가 늘 압력밥솥으로 밥을 해준 덕에 나에게는 익숙한데, 친구들에게 말할 때마다 놀라는 물건 중 하나이다. 다른 건 딱히 까다로운 입맛이 아닌데 즉석밥도 전기밥솥밥도 싫어하는 탓에 가장 처음으로 챙긴 물건 중 하나이다. 이미 2년 넘게 쓴 탓에 지금은 여기저기 생활감이 잔뜩 묻어난다.


이렇게까지 써놓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나는 꽤나 공간을 방치해 두는 편이다.


자취를 시작한 지 6개월 정도야 열심히 꾸미고 또 가꿨지만, 그 이후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미적 감각을 타고나질 못해서 편함과 실용성 위주로 물건을 구매하기도 하고 색감도 모던한 걸 좋아하기보다는 눈에 탁 튀는 색상을 좋아하는 탓에 그리 조화롭지 못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 월세집에 이미 들어와 있던 책상과 장롱이 당근색(그런데 누군가 채도를 잔뜩 올려놔버린)인 탓에 무얼 놔도 그리 조화롭지는 않았겠지만.


사실 이걸 핑계 삼아 눈감기도 한다. 내가 감각이 없어서라거나 귀찮아서가 아니야! 나는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도 안 하는 편이지~라는 상태로 대략 1년 반을 지냈다. 그냥 더러운 걸 치우고 눈에 거슬리는 게 없는 정도로. 그런데 앞에서 말 듯,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말은 즉,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자유도 없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가 집에 있을 때도 마음이 영 불편해졌다. 사실 이유는 안다. 회사에서의 내가 힘들어졌기 때문에 그 감정이 자꾸만 집 안까지 침범했다. 마음이 무거워지면 몸도 무거워졌고, 몸이 무거워지면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더욱 참기 힘들어졌지만 또 그걸 치울 힘은 여전히 없었다. 그래서 그걸 보면 마음이 더 무거워지고, 또 그 마음은 회사에서 더욱더 힘들어만 지고.


그 힘듦의 굴레를 벗어나야겠다 마음을 먹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집은, 오롯이 나에게만 몸을 맡기는 강아지 같다. 내가 가꾸지 않으면 털이 마구 엉키고 또 까매진다. 내가 치우지 않으면 그대로 악화되어 나를 짓누른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공을 들여 가꾸면 그만큼의 기쁨으로 나에게 온다. 더러운 방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겁다. 깨끗하게 정리된 방을 보면 마음이 가볍다. 당연한 전제이자 사실이지만 깨닫게 되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이건 지금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집안일은 눈 돌렸다 보면 다시 산처럼 불어나 있고 내 체력은 한계가 있고 여전히 회사일은 힘들고. 그래도 뭐, 나는 내 공간을 사랑하고 싶으니까. 내가 수많은 시간을 있어야 하는 이곳이 나는 좋으니까. 오늘도 또 공간을 치우고 가꾼다. 나에게 길들여진 이 공간이, 나에게만은 평화로운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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