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필요하세요?

6. 내가 사랑한 모든_공간들 [동네 책방]

by 정담

나름 문과에서도 가장 책이랑 친하다는 국문과를 졸업했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을 사서 읽는 일이 드문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책을 사기보다는 도서실에서 빌려 읽는 쪽이었고 대학교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금전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었다. 대학교 때 용돈은 한 달에 25만 원, 적은 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직접 돈을 버는 지금 한 달에 25만 원이 꼬박 누군가에게 가야 한다고 한다면…) 한 달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돈이라고도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 돈의 대부분은 먹을 거, 마실 거, 교통비, 때때로 노는 데에 쓰일 뿐 그 이상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물론 알바를 해서 충당하긴 했지만, 그 돈은 배달을 조금 더 덜 고민하고 친구들과의 약속에서 아메리카노가 아닌 바닐라 라테를 마시고 사이드 메뉴를 시키는 정도의 돈일뿐이었다. 그 안에 책을 살 돈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준을 하던 무렵, 코로나가 터졌고 더 이상 먹을 것도 마실 것도 교통비도 딱히 들지 않는 시기가 오게 되었다. 그때 알바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용돈은 여전히 받고 있었으므로 (엄마… 사랑해!) 생각지 못한 여윳돈이 생겼다. 극강의 J인 탓에 그 돈을 다 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한 달에 책 한 권 정도는 살 수 있는 돈이.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 서점을 한 달에 한 번 고심하며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었다. 이 돈으로, 가장 큰 재미를 얻으면서, 또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책은 과연 무엇일까? 리뷰를 높은 평점순으로 한 번, 낮은 평점순으로 한 번 보고 재밌게 읽은 책의 연관 도서를 살펴보고 좋아하는 출판사의 신간도 한 번 보고 그렇게 한 달에 한 두 권 고심 끝에 책을 시켰었다. 그때 읽은 책 중에 나의 인생책으로 남은 책들이 대다수니, 적어도 헛된 노력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런 나에게 오프라인 서점은 사치였다. 인터넷 서점으로 사면 리뷰도 한 번에, 10% 할인도 해주고 포인트도 쌓이고 가끔은 할인 쿠폰도 주는데, 그것도 무겁지도 않게 배달까지 해주는데 오프라인 서점 뭐 하러 가? 당연히 동네 책방도 나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애초에 집 주변에 그런 올망졸망하고 아기자기한 무언가가 있을 만한 동네에서 자라지 않았을뿐더러, 있었다고 한들 그 풍요를 누릴 만한 상태는 아니었으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생각이 바뀌게 된 건 불과 1-2년 전.

직접 돈을 벌고, 돈의 무서움도 알았지만 동시에 돈의 여유로움도 알아버렸다. 하루에 9시간, 대부분 그 이상의 시간을 회사에서 앉아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하지만 주말에는 혹은 휴일에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배달음식을 시킬 수 있고 커피 정도는 고민 없이 시킬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에서도 한 끼에 2-3만 원짜리 음식을 큰 망설임 없이 시킬 수 있게 되었고 혼자 여행도 다닐 만한,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은 생긴 그런 어른.


그때 내 주변에는 이미 동네 책방을 애정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덕에 나 또한 한 두 군데를 다녀보았지만 영- 큰 매력은 못 느꼈었다. 굳이, 여길 다시? 한 번 왔으니 되었다,라는 정도의 감상.


그래도 새로운 동네에 가게 되면 한 번씩은 들리는 일종의 유흥 개념으로 삼고 있었는데, 망원 한강 공원을 간 김에, 집에 가기 아쉬워 마지막으로 들른 책방이 내게 터닝 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들어가자마자 한눈에 서점 안을 모두 훑을 수 있는 작은 책방, 직사각형의 구조로 출입구 맞은편에서 바로 계산대가 보이는 그곳은 양옆의 책장과 가운데의 테이블에 책들이 빼곡히, 하지만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내 방보다 작은 것 같은 공간 이곳저곳에는 책방 지기분의 추천 책 코너와 북커버 같은 소품들, 화분과 노트까지 있었지만 그게 전혀 너저분해 보이는 게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감상을 준다.


여기까지는 다른 책방도 으레 가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내가 처음으로 설렌 것은 책방 지기분이었다. 그때껏 다녀봤던 책방들은, 책을 모두 고르고 계산대에 갔을 때에야 처음으로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얼마입니다, 봉투 필요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같은 친절하지만 흔하고 사무적인 말들. 당연히 여기도 그러겠거니 생각하며 책을 고르던 내게. 책방지기 분은 선뜻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혹시 책 추천 필요하세요?”

“아, 네 부탁드릴게요.”
“평소에 재미있게 읽으셨거나 좋아하는 작품이나 작가분 있으세요?”
“어… 저는 정세랑 작가님 좋아하고, [잠옷을 입으렴]이나 아니면 달러구트 꿈백화점 좋아해요!”
“그러면 이런 책은 어떠세요?”


책방지기분이 바로 꺼내 보여주신 책은,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책을 설명해 주시던 눈빛만 기억이 난다. 너무 즐거운 것을 나누고 싶을 때 반짝반짝 애정으로 빛나는 눈. 그리고 목소리. 그 사랑스러움이 좋아서 나는 그날 책 3권을 결제하고 나와버렸다. 그때 구매했던 책들이 엄청나게 재미있었다거나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다음에도 그 다다음에도 그 책방으로 향했다. 책방에 들어선 후 들려올 책방 지기 분의 “책 추천 필요하세요?”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그리고 어떤 책을 추천해 줄지, 그 설렘을 느끼고 싶어서. 동네 책방이 줄 수 있는 묘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 설렘이 담긴 책을 받아 들며 나 홀로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다짐한다. 다음에는 꼭, 여기서 친구의 책 선물을 사야지. 그 친구의 평소 취향을 말하고, 추천을 받고, 그 책이 마음에 들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계산대에서 책을 받을 친구의 이름을 말해야지.



PS. 1

처음 이 책방에 갔던 날 추천받은 책 중 한 권인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13회’는 알고 보니 집에 이미 있던 책이었다. 책을 읽은 지 반년이 흐른 후에야 동네책방 에디션 표지를 본 탓에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새로 구매했다는 슬픈 소식이다.


PS. 2

동네 책방이라고 하면 사실 정말 내가 사는 동네여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위에서 소개한 이곳은 나의 본가와도 자취방과도 전혀 가깝지 않다. 자취방에서 한 시간 정도 대중교통을 타고 가야 나오는 탓에 자주 갈 수 없는 게 한탄스럽다. 심지어는, 이곳 때문에 이 동네로 이사 올 결심을 했을 정도.


지금 사는 동네에서 갈 만한 오프라인 책방이 없는 탓에 그 결심은 정말 현실화되기 10보 정도 직전이었다. 월세 가격을 보고 조용히 핸드폰을 닫았지만… 정말 이 근처에 살았다면 책값으로 생활비가 잔뜩 불어났을 테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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