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가 사랑한 모든_공간들 [요가원_2]
도저히 홈트를 다시 할 자신은 없어(사실 매트도 집에 사놨지만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전적은 잠시 묻어두고) 이번에는 너와 나 모두 선망한다는 필라테스에 도전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쁘지 않았다.
앞서 나의 운동 인생을 말했던 것처럼 현대 무용까지 경험한 덕에 내 몸에 대한 이해는 남들보다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유연성도 금방 돌아와 동작은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근력이었지만. 그저 펜이나 들고 노트북이나 치는 나의 근력으로는 도저히 땅땅한 속근육을 가진 강사분을 따라가기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나와 달리 본투비 근육러이 신 것 같은 강사분이 나의 온 힘을 다한 팔운동에 대해 대충 한다고 평가하는 것에 나의 여린 심장 근육이 상처를 입어 총 6개월의 필라테스도 막을 내린다.
그때쯤 또다시 허리는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운동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를 입버릇 삼아 다니며 6개월 정도를 쉬고 나니, 일하던 도중 계속 꿈틀거림이 시작되었다. 이놈의 허리는, 왜 이렇게 약해 빠져 가지고는.
그때 내가 선택한 게 바로 요가원이다. 사실 요가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나에게 그때까지의 요가란 필라테스의 오리지널 버전 정도. 엄마도 했고 친구도 한, 필라테스의 근육 운동보다는 릴랙스와 스트레칭에 특화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아무것도 몰랐다!
대체로 필라테스와 요가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실제로 비슷한 맥락이기는 한 것 같다. 어찌 되었건, 관절을 풀고 정렬을 잡고 근육을 단련하니까. (이건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인가? 하여튼.) 그런데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약간의 스탠스 차이랄까? 처음 요가원으로 상담을 받았을 때 원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언제 시간대 수업 들으실 거예요? 저희 오전 수업도 있는데.” “아, 제가 아침잠이 많아서… 저녁에 올 것 같아요.” 멋쩍은 나의 대답에 원장님은 이해한다는 듯 웃으시면서도, “아~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오전에 오는 것도 또 하나의 스스로에 대한 도전일 수 있어요”
와- 나는 아직도 그 이해심 가득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는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내용은 또 어떠한가. 그전에 했던 필라테스는 태생부터가 재활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정말 ‘운동’이라는 느낌이었다면, 요가는 ‘자기’를 돌아보고 ‘릴랙스’를 중요시하며 일종의 ‘단련’이라고 하는 것을 직접 해보고 나서야 느꼈다. 괜히 요가’ 수련’이라는 말을 쓰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자세를 단련하고 나를 일깨우는 게 요가였던 것이다.
“나마스테”
요가 시작 전과 끝에 나누는 이 인사는 강사분께 하는 감사 인사이자 나에 대한 감사, 그리고 이 시간에 대한 감사이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나의 몸을 단련하고 마음을 보듬고 이 시간에 감사를 느낀다. 이렇게 되니 너무 요가 찬양이 되어버린 듯도 한데, 우선 나에게는 그랬다. 덕분에 3번의 회원권 연장을 거쳐 어느새 1년의 장기 회원이 되어버렸다. 요가를 하며 처음으로 ‘운동하고 싶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 번도 내 자의로 운동이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데…
늘 목적이 있는 운동을 해왔었다. 살을 빼기 위해 줄넘기를 하고, 허리가 아프니까 안 아프고 싶어서 필라테스를 나가고. 그런데 요가는 요가를 하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다. 마음이 지친 날에는 요가를 하며 마음을 비우고 싶고, 몸이 조금 찌뿌둥한 날에는 요가를 하며 풀고 싶고, 새로운 요가 강습이 있는 날에는 찾아가고 싶고, 초반에는 안 되던 자세들이 되는 날에는 너무 기쁘고 그 자체로 나에게 힘이 된다.
처음 요가에게 강렬하게 매료되었던 순간이라고 한다면 역시, 우르드바를 처음으로 성공했던 때이다. 우르드바란 몸을 뒤로 기울인 아치 상태에서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몸의 균형을 잡는 후굴 동작이다. 꽤나 고난도 동작에 속하는 이 동작을, 요가 시작 초반 강사님의 도움을 받아 성공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혼자 성공하지 못했다. 나의 어깨와 팔근육은 몸뚱이를 들어 올리기엔 너무나 존재감이 미미했던 것이다.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다면 오히려 반감이 되었을 텐데, 선생님도 그저 ‘안 되시는 분은 그냥 그 자세에서 머무셔도 돼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되는 선에서 조금만 더 하세요’라며 달랬는데, 오히려 그 말이 나를 더욱더 불타오르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홀로 연습을 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꽤나 긴 3개월이 흘렀을 때 왜인지 수업 내내 ‘안 될 것 같은데?’했던 동작들이 전부 다 너무나 수월하게 되어버린 날이었다. 어라? 어라라? 아방하게 동작을 따라가는 사이 수업은 끝났고, 어딘가 묘하게 체력이 남으면서 상기된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이대로 씻기는 아쉽다, 아쉬워… 하는 나의 눈에 집구석에 있는 요가 매트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걸 폈고, 엎드려 누웠고, 우르드바 자세를 했는데 웬걸, 그동안의 그 안간힘이 무색하게 너무 쉽게 들어 올려지는 거다.
이렇게 쉬운 거였어?
스스로도 이런 내가 꽤나 놀랍기는 한데, 또 즐겁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뭘 그렇게 음식을 가려서 먹나 했는데 지금의 내가 그러고 있다. 무언가를 먹을 때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생각하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적어도 나는, 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걸 원하게 되는 것 같다. 무언가를 성취해 본 사람만이 그것을 더 원하게 되는 게 아닐까? 성장을 위해서는 자잘한 실패와 확실한 성공을 겪어봐야 한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단련되고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도 그 경험은 두렵지 않게 만들어주니까.
그리고 체력은 분명한 기동력이 되어 준다. 할까? 말까? 할 때 하자!라고 밀어붙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 내가 생각했을 때 확실히 체력이다. 새벽 한 시 반이 다 된 지금, 40분짜리 플레이리스트가 끝난 시간 동안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타자를 치게 만들어주는 건 오늘 다녀온 만족스러웠던 한 시간의 요가 덕분일 테고,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며 쌍욕을 뱉던 내가 ‘미리 걱정하지 마! 굳이 부정적인 걸 소리 내지 마, 생각도 굳이 하지 마!’라고 바뀌게 된 건 보다 건강해진 육체에 담긴 소폭 건강해진 정신 때문일 테니.
나는 내일도 조금 더 건강해지고 싶어서 퇴근 후 또 요가원으로 향할 거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나는 향내를 맡으며 신발을 벗고, 번호를 누르며 데스크에 인사하고, 옷을 갈아입으며 오늘의 상태를 살피고, 또 나마스테-를 외치고 몸을 풀기 시작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