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쉽지않네?"

10. 내가 사랑한 모든_말들 [쉽지 않네?]

by 정담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즐겨 봤던 유튜버가 있다.


뷰티를 주 종목(?)으로 하는 유튜버, ‘유트루’이다. 유트루님은 ‘뷰티’라는 말을 붙인 사람들의 흔한 이미지와 달리 얼굴에 트러블이 많았고 화장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러블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제품을 사용했을 때의 실제 느낌을 잘 보여준다는 점 + 어떤 제품이든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리뷰해 준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트러블이 얼굴에 많았던 나도 유트루님의 리뷰를 한 두 개 씩 보다 구독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화장을 잘하지 않는다. 회사에 갈 때는 선크림 하나, 그마저도 늦게 일어나는 날에는 사치일 정도로 얼굴에 큰 공을 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기껏해야 크림과 에센스를 신경 써서 바르는 정도랄까.


그마저도 예민한 피부 탓에 잘 바꾸지 않아 정착템인 로션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한 제품만 사용하고 있고 로션도 겨울용 로션은 반정착템이 있을 정도로 사실상 뷰티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있는 게 시간 낭비인 사람으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까지 유트루님의 영상을 즐겨 보는 이유는, 뷰티채널 때문이 아니라 ‘일상 브이로그’ 때문이다.


지금이야 직장인, 유학생, 대학생, 하물며 중-고등학생들까지 전 연령을 망라하고 인기 있는 분야라고는 하지만 내가 대학생 초반에는 그리 주류인 장르가 아니었다. 하물며 잠시 몸 담았던 기자단에서 토론 주제로 ‘일상 브이로그, 왜 보는가?’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나는 ‘일상 브이로그 왜 안 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지인의 일상 이야기를 공유하는 느낌으로 브이로그를 시청한다. 브이로거 중에는 금수저부터 정말 평범한 일반인까지, 집순이부터 에너자이저 인싸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일상은 천차만별이고 나는 그런 일상을 소설책 읽듯이 구경한다.


그중에서도 유트루님의 일상을 거의 십 년에 걸쳐 구경하고 있는 이유는 성격과 라이프 스타일 때문이다. 지금이야 나는 많이 무던해졌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정말 예민했다. 타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날카롭게 반응했고 속으로 평가하고 과민하게 굴었다. 그때는 그런 줄도 몰랐지만 지금에 와 되새겨 보면 그때의 어린 나는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핸드폰 속 유트루님은 많이 달랐다. 세심하면서도 무던하게 넘길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편안함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유트루님이 갑자기 부지불식간에 연애를 발표하고, 결혼을 하고, 지금은 아이까지 낳았다. 순식간 같으면서도 돌이켜보면 긴 시간이다. 남의 연애부터 출산, 육아까지를 구경할 수 있다니… 유트루님의 육아를 구경하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차치하고, 사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건 유트루님이 아니라 실버라인님의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 분의 일상을 재미나게 구경하고는 있지만 실버라인님이 만약 진짜 내 지인이라면 그리 친해지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MBTI로 사람을 따질 것은 못 되지만 대충의 가름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실버라인님의 MBTI는 INTJ, 내 주변에서 정-말로 찾아볼 수 없는 유형 중 하나이다.


그런데도, 그분이 하셨던 말 중 별안간 꽂혔던 말이 있다. 유트루님의 물음에 감정이 크게 실리지 않은 상태로, 하지만 무감하지 않게, 너무 실망하지도 지치지도 않은 목소리로


“아, 쉽지 않네?”


그 말이 영상을 보고 난 후에도 왜 인지 계속 맴돌았다. 내가 한창 힘들었던 때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정말 쉽지 않았고, 모든 게 어려워 계속 스스로 어려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지나치게 어려움을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나는 힘듦을 온전히, 그리고 쓸데없이 온몸으로 겪고 있었다. 그때 들린 ‘쉽지 않네?’라는 말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힘이 되었다. “쉽지 않네?” 하지만 “그래도 힘 내 봐야지.”라는 흐름으로.


힘들다, 내 마음을 이야기하는 건 좋다. 하지만 그 나의 힘든 상태에 스스로 잠식되는 걸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 나에겐 그 ‘쉽지 않네’였다.


그렇게 일을 하며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아, 쉽지 않네? 그래도 내가 해냄”의 자세로 일하던 날, 친구를 만났다. 나와 마찬가지로 사회 초년생으로서 쉽지 않음을 겪고 있던 친구에게 이 말을 전파했고,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된 또 다른 친구와 만나 저녁 식사를 위한 식당으로 향했다.


미리 알아간 식당이었건만, 안은 깜깜했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건만 그 주변에서 문 연 곳을 찾기는 어려웠고 우리는 차라리 택시를 타고 번화가로 나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기 전 미리 메뉴와 식당을 정하고 간 곳은, 웬걸? 또 한 번 굳건히 닫힌 식당 문을 봐야 했다. 여기 갈까? 저기 갈까? 어이 없어진 우리는 발이 이끄는 대로 향하다가 어느 횟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따뜻한 게 먹고 싶어 탕요리를 시킨 우리는 그저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인데, 뒤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걸 하게 취한 친척들끼리 싸움이 붙은 것이다. 나는, 정말로, 두 어른 남성이 메리야스 바람으로 몸싸움하는 걸 그날 처음 봤다. 그 와중에도 우리의 탕은 열심히 끓고 있었고 조금 잠잠해진 후 우리는 식사를 시작하는 찰나 다시 또 애써 떼어낸 한 분이 식당으로 다시 입장하며 2차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때 심정은 정말,


“쉽지 않네.”


하하하하하! 내 말을 들은 친구가 웃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후의 피곤과 탕요리의 따뜻함에 따른 약간의 나른함과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우리는 잠시간의 소란 이후 든든히 식사를 마쳤고 또 2번 만에 성공한 바에서 각자 좋아하는 하이볼도 마시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고진감래가 이런 것일까? 덕분에 이 일은 아직까지 그 친구들과 모일 때면 종종 안주거리가 되어주고 있다. 친구들과 만날 때가 아니더라도, 종종 힘들 때면 이 일이 떠오르고, 나는 ‘쉽지 않네! 하지만 해보자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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