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생활은 전부 혜화였다

11. 내가 사랑한 모든_공간들 [혜화]

by 정담

나의 대학생활은 전부 혜화였다.


한 동네에서 19년을 살며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고, 그곳이 아닌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나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의 생활공간은 점차 넓어졌다. 다양한 곳을 경험해 보고 또 살아 봤지만, 추억의 장소라고 한다면 역시 ‘혜화’를 빼놓을 수 없다.


또 하나 아이러니이지만, 내가 대학교를 혜화에서 다닌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청춘과 통장을 불태운 많은 대학로 극장이 그곳에 있었고, 그 재가 되어 버린 통장을 다시 채우기 위한 아르바이트 장소가 혜화에 있었고, 또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만남들이 혜화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처음으로 인연, 이 시작된 건 21살 때였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2학년 3월, 혜화의 사거리 롭스에서 나의 알바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전, 1학년을 불태운 명동의 올리브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알바는 익숙한 만큼 딱히 어려운 건 없었다. 오히려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 프리한 느낌이었던 그곳에서, 동년배 알바 언니들과 일하며 시험 기간에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포스기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알바가 끝난 오후 4시쯤이면 바로 옆의 카페에서 2천 원을 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큰 사이즈를 시켜 기숙사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의 일상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왜 그리 그 아직은 쌀쌀한 늦봄의 햇살과 이제 곧 저물어 가는 하늘, 그리고 손에 들린 아메리카노가 기억에 콕 박혔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알바를 하면서 동시에 연극 연합 동아리에 속하기도 했다. 당시 수도권에 위치한 여러 대학교들이 연합하여 활동하였던 그 동아리에서 나는 기획단이었고, 때문에 일요일이면 롭스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공용 공간으로 회의를 하러 향했었다. 하루 6시간 넘게 서있으며 일한 탓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다리였지만, 막상 가면 또 신나게 떠들며 이야기하기 바빴다.


요즘 20대 초반 동생들(친구, 라 말할까 하다 너무나도 오글거려 수정했다.)을 만날 때면 그들의 활기와 생기에 놀랄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보면 그때 이기 때문에 발산할 수 있는 열기가 분명히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알바를 하고 또 회의를 나가기를 반년, 처음으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해보기도 하고 티켓도 팔고 연합 MT도 떠나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다, 또 새로운 연도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혜화는 나에게 가까웠다. 연합 동아리가 끝난 9월 즈음, 롭스를 그만둔 나는 이번엔 혜화 중앙에 위치하는 올리브영에서 또 한 번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거기는, 이번엔 또 꽤나 힘들었다.


이미 롭스의 프리함에 익숙해져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손님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월-씬 많았고 사칙이 다르니 당연히 분위기도 달랐다. 그곳에서 약 1년을 일했고. 가끔은 친구들이 놀러 왔고, 그곳에서 일한 돈으로 데이트도 하고, 많은 연극과 뮤지컬도 볼 수 있었다. 조금 아쉬운 거라면,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과 쉽게 멀어진 것이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힘듦을 같이 하며 친해지기도 했었는데, 나의 일상의 바쁨에 허덕이며 쉽게 인연이 끝났다. 지금에 와서도 종종 생각나는 걸 보면 조금 더 질척였어도 되었을 텐데.


많은 게 생략되어 버렸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던 올리브영 아르바이트도 바빠진 대학 생활로 인해 끝이 났지만 혜화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휴학 후, 나는 또다시 혜화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번엔 혜화에서 있었던 연극 축제의 청년 기획단이 되어. 일주일에 한 번, 하루 6시간을 꼬박 혜화의 한 회의실에서 보냈다.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에 맞게 변두리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또 선보이며. 그때의 나는 확실히, 연극인이 되기를 소망했다. 물론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가.


아직도 연극제 첫날을 기억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축제를 꾸미고 아르코 극장 맨 위에서 배너들이 촤르르 떨어지며 곡예가 펼쳐지던 순간을. “이게 혜화지! 이게 바로 연극이지!”를 외치며 소위 ‘연극뽕’에 찼던 우리들을. 그 벅참을 느끼려고 그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겨냈음을.


그렇게 벅찼던 한여름의 기쁨도 잠시, 코로나 19로 인해 극장의 문은 잠기고 나 또한 큰 어둠을 견디고 있었다. 코로나 블루와 대학교 졸업학기의 불안과 취업의 우울을 느끼면서도, 나는 또 한 번 혜화로 향했다. 두산에서 진행하는 극작 수업을 듣기 위하여.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작가를 희망했다. 그리고 마침내 눈에 띄었던 그 수업 공고가 바로 내 운명이 되어 주리라 잠시 믿기도 했다. 약 3달간 일주일에 2번 진행한 수업은 놀랍게도 너무나 즐거웠다. 같은 꿈을 향해 가는 친구들을 만나고 처음으로 내 글을 피드백받고 또 처음으로 누군가 함께 작품을 쓴다는 건 내 생각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었다.


그중에는 이미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사람도, 또 본인의 이름이 박힌 상업 소설이 출판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내심 그들과 함께한다는 게 기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짧지만 길었던 수업이 끝나고, 그들과 시작했던 연극 기획이 크나큰 힘듦과 함께 끝났지만, 나에게는 몇몇의 인연들이 아직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그 일을 끝으로 혜화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내 꿈과는 꽤나 많이 거리가 먼 곳에 취직을 해버렸고, 나의 이상향과 재능 또한 그만큼의 거리가 있다는 걸 애써 무시했던 시기를 지나 직면해 버린 나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저 혜화는 나에게 많은 추억과 약간의 인연들을 남겼을 뿐인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일까, 지금도 혜화에만 가면 마음 한 구석이 간질간질하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한 다음에도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 시간들과, 새로운 사람들과 같은 꿈을 향해 가던 그 공간들과, 아무것도 아닌 일상들마저 마음속에 박혀버린 기억들이 너무나 소중해져 버려서.


이걸 이제야 깨달아버린 나는, 이제 어느 한 공간도 섣불리 넘겨 버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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