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사랑한 모든_물건들 [얼음틀]
친구한테 얼음틀을 선물 받았다. 하리보 정품로고가 박힌 실리콘 몰드.
처음 메신저로 선물을 확인했을 때 든 생각은 ‘아, 귀엽다’, 그다음은 ‘이건 얼마 정도일까? 소소한 선물이겠지?‘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와 먹었던 비용을 내가 부담하고, 그에 대한 소소한 보답으로 받은 선물이기에, 게다가 ’ 얼음틀‘이기에 나는 대충 만원 내외, 아니 사실 몇 천 원 정도를 예상했다. 왜냐하면, ’ 얼음틀‘이지 않은가. 그저 얼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그 이상의 이하의 의미도 가지기는 힘든.
그런데 우연찮게 보게 된 그 제품의 가격은 ’만 오천 원‘이었다.
아니, 엥? 정말? 내가 원래 쓰고 있던 얼음틀은 다이소의 천 원짜리 제품이었다. 플라스틱 재질의 겉이 파란. 음료를 시원하게 만들기 위한 기능의 얼음틀이 무려 열다섯 배나 차이가 날 이유가 있을까? 좀, 내 돈 주고는 못 샀겠다!라는 게 나의 감상이었다.
이런 마음 때문인지, 기대를 별로 안 해서인지 배송이 온 후에도 사실 하루쯤 늦게 택배를 뜯었다. 심신이 피로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데 웬 걸? 첫눈에 너무 마음에 들어버린 거다. 딱 보자마자 ‘아, 너무 귀여워!!‘라는 말과 함께 사진을 찍게 만드는 퀄리티였달까.
사용하기 위해 설거지를 하면서 면밀히 관찰해 본 결과, 애초에 제빵용 몰드로도 사용 가능하다고 된 만큼 실리콘이 두껍지만 말랑말랑하고, 하리보 모양은 너무나 귀엽고, 위의 뚜껑도 튼튼하고 꽤나 견고해 보였다. 이런 꽤나 큰 감상 때문인지 심지어 겉 플라스틱 포장지도 아직 안 버렸다.
원래 생필품에, 아니 사실은 대체로 입고 사용하고 하는 모든 것에 물욕이 없는 편이다. 더불어 싼 게 있는데, 굳이 왜 더 큰돈을 들여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기도 했고. 그런데 내 원래의 얼음틀과 선물 받은 얼음틀을 딱 보고 있자니, 후자의 만족감이 생각보다 너무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런 물건들이, 우리 집 곳곳에 눈 닿는 데마다 있다면?
지금의 우리 집은, 나의 평균보다 조금 밑도는 미감에 더하여 꽤나, 어딘가 부족한 형상이다. 쇼핑을 하면서 최저가 순으로 먼저 보는 버릇 때문일 수도, 위의 나의 금전에 대한 감각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가다 문득, 잠에서 깨 멍을 때리다 결심을 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나는 이제, 하나를 사더라도 조금 좋은 걸 사야겠어. 물건을 오래 쓰기도 오래 쓰는 사람이라 한 번 사면 몇 년은 금방인데, 그래서 몇만 원 정도 차이는 그렇게 큰 차이도 아닌데, 그 조금씩 모자란 조금씩 밑도는 것들이 나를 구성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슬퍼지니까. 이제부터는 ’이 정도면 괜찮아 ‘가 아니라 ’ 이거는 갖고 싶다 ‘라는 것들로 나를 구성해볼까 한다.
물론, 그래도 만오천 원짜리 얼음틀을 내 돈 주고 사기는 사실, 조금 망설여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