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사랑한 모든_공간들 [강원도, 그리고 강릉]
나는 굳이 따지자면 여행과는 거리가 조금 먼 편이다.
해외는 지금까지 딱 세 번, 중학교 때 가족 여행으로 중국 2박 3일, 대학교 때 배낭여행으로 유럽 2주, 최근에 일본으로 3박 4일 간 것이 여태까지 나간 해외여행의 전부이다. 국내도 가본 데보다는 안 가본 데가 월-씬 많을 정도. 신종플루와 각종 사건으로 수학여행도 중학교 때 딱 한번, 그 덕에 경주 한 번을 못 가봤다. 심지어는 다들 간다는 제주도도 한 번을 못 가봤으니, 말 다 했다. 역마살의 반대선상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다.
우리 집은 워낙 여행을 잘 안 가,라고 말하기에는 또 막상 지금의 부모님은 두 분 이서도 친구들이랑도 꽤나 잘 놀려 다니시는 편에 속한다.(이번에는 친구들과 여행 모임으로 사이판을 다녀오신다고 한다.) 그럼 나는 뭐지? 생각해 보면 나는 그리 어딘가를 잘 다니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집순이라기보다는, 한 곳에 인을 박고 사는 편이랄까? 지금의 자취방도 동네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를 정도이니.
그랬던 내가 가장 처음으로 친구들과 떠난 여행지가 바로 강원도 속초이다. 21살, 아직 우리끼리 어딘가를 가는 게 낯설었던 나이다. 용돈을 모아 여름 방학 맞이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아침부터 마음이 부풀어 버스를 타러 나갔고,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안 된 숙소에 앉아 각자 화장하기 바빴다.
그다음으로는 숙소 주인분께서 추천해 주신 바다에 나가 물놀이를 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경기도와 달리 내릴 때 카드를 찍으면 안 된 다는 사실이 낯설어 망설이기도 했다. 저녁으로는 근처 시장에서 유명하다는 닭강정과 김밥을 사서 숙소에서 긴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고. 즐겁고 지친 우리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기절잠을 잤던 기억이 있다.
그다음으로의 강원도와 추억은 바로 그다음 해, 남자친구와 여행을 갔던 기억이다. 친구들과 갔을 때와 달리 물놀이는 없었고, 늦게 나가본 바다는 이미 어두워 구경도 별로 하지 못한 채 뒤를 돌아가야 했다. 그 대신 먼 길을 걸어 사 왔던 마늘빵과 블루베리 잼 빵이 굉장히 맛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그 빵들이 유튜브에 나올 때면 괜히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숙소 한 구석에서 빵을 올려놓고 나눠 먹던 기억이.
그러고 나서는 한동안 강원도와 연이 없었다.
딱히 여행을 갈 만한 여건도 되지 않았고, 가려고 한다면 어딘가 멀고 좋은 곳을 가야만 할 것 같아 마음을 쉽사리 먹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흘러 회사원이 된 후, 이상하게도 바다가 미친 듯이 보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 자신의 앞가림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버린 친구들과 쉽게 시간을 맞추기는 힘들었고 결국 처음으로 혼자 여행 가기를 마음먹는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주말 1박 2일, 그것도 차도 없고 뭣도 없는 내가 가기 그나마 만만한 곳이 바로 강원도였다. 그중에서도 왠지 익숙하고 또 괜찮아 보이는 강원도 강릉.
사실 전 남자친구와도, 학과 답사로도 왔던 강릉이라는 건 잊고 있었지만, 어쨌든 첫 혼자 여행인 만큼, 완벽하고 싶었다. 때문에 갈 때도 올 때도 KTX, 숙소는 1박에 10만 원이 넘는 호텔을 잡아 떠난 강릉은 꽤나 생각보다 즐거웠다. 도착하자마자 향한 순두부 집에서 밥을 먹고, 근처의 인생 네 컷에서 사진을 남기고, 커피를 사 먹고, 유적지를 둘러봤다.
어딘가 묘하게 익숙했던 그곳은, 흐릿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대학 시절 학과 답사지였다는 걸 떠올리며 혼자 실실 웃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학생회로 준비했던 곳인데 까먹어버리다니, ‘나도 참!’이라는 애니메이션 적인 상상에 잠시 빠지기도 하며 소나무 사이를 거닐다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비성수기의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유적지는 한산했고, 그 덕에 소나무 스치는 바람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여기, 되게 좋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아쉬워진 발걸음을 떼고 나온 나는, 또다시 걸어가 고민하던 젤라토를 사서 먹으며 바다로 향했다. 시야 모든 곳에 펼쳐져 있는 바다는 내 기억만큼 아름다웠고 혼자인 것이 오히려 좋았다.
바다멍-을 한 시간쯤 때렸을까, 점차 추워지는 바람에 숙소로 들어가 씻었을 뿐인데 이미 해가 모두 져 애써 돈을 더 주고 예약한 오션뷰는 온데간데없었다. 이건 말이 안 돼! 를 외치며 한 번이라도 바다를 더 보고 싶어 밖으로 나갔지만, 왜 이것만은 예전과 똑같은지, 또 한 번 어두움만이 가득한 바다에 지레 겁먹고 바로 돌아 들어와 아쉬움이 담긴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알람에 눈을 떴을 뿐인데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에 순간 당황했다. 뭐야, 뭔데 이렇게 멋있어? 그리고 다음 순간, 와 오션뷰 최고다… 일찍 일어났는데도 짜증이 나지 않았던 건 내 기억상으로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지, 나는 일어나 핸드폰으로 또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눈으로 감상하고 또 한 번 멍을 때리다, 로망을 실현하고자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었다. 정말, 너무나도 여유로워 벅찰 만큼 행복했지만, 체크아웃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탓에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아쉬웠던 시간이었다.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고 그랬다. 나에게 ‘혼자 여행=강원도=행복’을 자리매김한 탓에, 올해 사칙 변경으로 인해 얻게 된 2박 3일의 봄휴가 또한 당연지사 강원도로 결론 났다. 이번에는, 강릉이 아닌 속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