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가 사랑한 모든_공간들 [강원도, 그리고 속초_1]
이번 속초는 2박 3일, 게다가 슥 보니 강릉보다 둘러볼 거리가 훨씬 많아 보였다.
여기서 나의 여행 스타일을 말해보자면, 대체로 3가지(관광지 – 휴양지 – 액티비티) 정도로 구분할 수 있는 스타일 중에서도 나는 ‘관광지’파다. 미술관, 박물관, 아니면 공연을 보든 쇼핑을 다니든 사람들이 추천하는 웬만한 건 다 해보고 싶어하는 편이며, 하루 종일 빨빨빨 열심히 돌아다니다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 뻗어서 잠들어야 “아, 나 여행 좀 열심히 했다”라고 생각하며 뿌듯하게 잠드는 편이다.
그러니 남들의 간섭이 없는 혼여행의 스케줄은, 어떠하겠는가? 호수부터 바다, 주요 포인트, 가게들까지 알차게 넣은 스케줄표를 머리에 꼭 넣어놓고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향했다.
나를 태우고 출발한 버스는, 내 예상과 달리 도착 시간을 넘어 늦게 달리고 있었다. 아… 이 시간에도 차가 밀려…? 뚜벅이의 뒤늦은 깨달음을 뒤로 하고 늦은 점심에서야 강원도에 근접할 수 있었는데, 또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존재가 있었으니 창 너머로 보이는 알 수 없는 안개들이었다.
저 멀리 높은 빌딩들이 위로 갈수록 점차 그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두터운 안개 때문에. “…어라?” 싶었지만, 얼른 확인해본 날씨표에서는 1-2시간 후면 안개가 사라진다고 했으니 그걸 믿고 우선 밥을 먹으러 갔다. 예전에도 가본 적이 있는 물회집에서 처음 먹어보는 찌개를 시켜 열심히 먹은 나는, 창문 너머에 점차 짙어지는 안개를 애써 무시하며 식사를 마쳤고 그저 화장실을 한 번 들렸다 나왔을 뿐인데 자리의 짐이 사라져 있었다.
뭐지? 싶던 내게 다가온 직원은, 식당을 나간 줄 알고 직원들이 짐을 치웠다며 아래층에서 가져다 주겠다고 말했다. 이 정도야, 뭐! 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짐을 가져온 직원의 웃음이 너무나 해맑고 멋쩍어 오히려 즐거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밥을 먹고 바로 영금정으로 향하는 것이었으나, 이 안개로는 어림도 없음을 느낀 나는 그 근처의 호숫가로 향했다. 호수, 라고 하면 대체로 나는 석촌호수를 떠올리는 편이다. 대기업의 자본력이 들어간 서울의 명소 석촌호수, 나도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석촌호수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곳의 호수에 비하면 비할 게 못되는구나를 그때야 깨달았다.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호숫가의 신비함을 더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몇 안 되는 그 곳은, 그렇게 사용하기에 편리할 정도로 꾸며놓은 것도 아니면서 딱 정돈이 잘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이 있으면서도 무언가 신비로운 존재가 등장할 것만 같은 그 아름다움은 내가 여태까지 느껴본 적은 없는 무언가였다. 그 다음에 향했던 또 다른 호수가 마치 산책로와 같은 느낌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곳은 오히려 사람의 손이 덜 타 아름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으로 향한 전망대에서 안개 때문에 놀랍게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나는, 이번에는 미리 찾아 두었던 서점으로 향했다. 새로운 곳을 가면 그곳의 서점을 한번씩은 가보려고 하는 편인데, 그곳의 서점은 또 한 번 놀랍게도 너무나 재밌었다. 재미, 라고 말하는 게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겠지만 나는 내 예상과 다른 감상을 주었을 때 재미를 느낀다.
2층으로 된 서점은 잘 정돈된 덕에 책을 구경하기 편했고, 구석에는 지역 작가존도 있어 여행지에 온 보람도 있었으며, 깔깔거리며 서점에서 산 학습지를 푸는 학생들 덕에 정겨움까지 느꼈다. 특히나 좋았던 건, 1층 입구 근처 여행자들의 글들로 이루어진 방명록이었다. 한시간 가량 서점을 구경한 탓에 다리가 아팠던 나는, 그저 눈이 닿는 대로 벽의 글을 읽다 한 곳에 멈췄다. 그 시간과 장소, 그 글이 주는 멈춤이 너무 좋았기에 아래 함께 남긴다.
[서울에서 속초를 오는 버스 안에서 깊은 잠을 잤습니다. 속초 수산 시장에서 파는 고구마가 맛있어보여 계산을 하려고 보니, 지갑이 없었습니다. 신용카드 조회를 해보니, 마지막으로 카드를 사용한 곳은… 화양강 휴게소 소떡소떡을 사서 케첩을 뿌릴 때 옆에 놓고, 그대로 버스에 오른 것입니다. 무일푼으로 속초에 도착했습니다. 동해안으로 태풍이 오고 있다고 하네요. 문우당서림에서 잘 쉬다 갑니다.
Ps. 엄마는 지금 그냥 서울로 오라고 하네요. 개고생하지 말고…
-박혜수 / 2019.06.06 ]
이 분은 과연 어떤 여행을 하게 되었을까?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냥 집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잠시간의 쉼을 에너지삼아 다른 곳으로 향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