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내가 사랑한 모든_공간들 [강원도, 그리고 속초_2]
서점에서부터 여러 가지 궁금증을 마음에 안은 채로 책을 꼭 안은 채 밖을 나간 나는 또 다른 호수가를 넘어 바다에 도착했지만, 바다는 볼 수가 없었다.
기대했던 수평선은 어디로 가고 찰싹이는 바다를 눈에 담을라 하면 1미터도 못 가 안개가 잠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걸은 탓에, 그리고 밀려드는 실망감에 그 자리에서 20분쯤 버티다 결국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애써 잡은 오션뷰지만 캄캄한 창문만을 남겨둔 채로. 그 이후 일정이라고 한다면 바다에 온 만큼 회를 시켜 먹고 편히 쉬다 자는 게 끝이었다. 그랬는데, 웬걸. 만족과 실망의 연속 끝에 맞이한 저녁이 이리도 즐거운 일일까? 편한 퀸사이즈 베드에서 나 홀로 뒹굴거리며 TV로 유튜브를 보는 밤은 너무나도 행복한 여행의 연장선이었다는 걸 그때 완연히 깨달았다.
아, 그저 쉬는 게 다가 아니네?라는 당연하지만 새로웠던 즐거움. 내일도 안개가 껴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일단 접어 두고.
그다음 날은 다행히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강릉과 달리 풀오션뷰가 아닌 데다가 근처에서 공사를 하고 있어 창밖의 뷰는 그리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그 날 향했던 바다는 정말 만족을 넘어서 행복이었다. 낮 즈음, 넘어간 바다에서 나는 “바다에서 돗자리 깔고 누워있으니까 세상 행복하던데요”라고 말했던 동기의 말을 동료 삼아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워 바다를 구경했다. 적당히 많은 사람들의 웃는 소리들과 찰랑이는 파도 소리와 따땃한 햇빛에 감길랑 말랑한 눈을 애써 이기려 하지 않으며 즐기는 여유란, 상상보다 더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몇십 분쯤, 얼굴로 와닿는 햇빛이 뜨겁다 생각될 때쯤 일어나 가던 중 마침 비어 있는 벤치에서 또 몇십 분을 앉아 있었다. 멀리서 보는 바다와 파도처럼 움직이는 흔들의자를 만끽하던 내 앞으로 어떤 20대 초반의 남자 학생들이 저희들끼리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먼저 바지를 걷어 올리며 바다에 들어가, “너 정말 안 들어온다고? 진짜 이거 참는다고?”라며 친구들을 부르자 2명 정도의 친구들이 덩달아 열심히 바지를 걷어 올리며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나에게 너무나도 아름답게, 마치 한 편의 청춘 만화처럼 느껴졌다. 드물게도 욕 하나 섞이지 않는 말들에 서로 함께 하는 시간들이 바다의 아름다움과 섞이며 그 자체로 마음을 부풀게 만들었다.
그다음에 처음 타본 관람차도, 또 그다음에 찾아간 카페도 말 그대로 유유자적- 혼자 여행에서 즐길 수 있는 완벽한 완연한 여유로움이었다. 강릉이 보다 고즈넉한 여유라면, 속초는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활기 속 잔잔함이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강릉의 택시 기사 분들과 달리, 시장에서 숙소로 향하는 나에게 “강원도 왜 와요! 나는 서울에서 해물 뷔페 가는데!”라며 TMI를 날려 주시던 택시 기사 분이 나를 웃게 한 것처럼.
이번에도 다음 주에 다시 속초로 갈 여행 계획을 짜는 중이다. 이번에는 정말 휴식을 목적으로 가는 만큼 아무것도 안 하고, 그때의 즐거웠던 여유를 다시 한번 느낄 생각이다.